남원 요천에서 장수 수분치를 찾아가다

섬진강 상류 요천의 금강 상류 하천쟁탈 현장 답사

등록 2022.09.30 08:28수정 2022.09.3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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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제일의 누각(樓閣)인 전북 남원의 광한루는 고전 소설 춘향전의 무대다. 광한루의 넓은 연못에는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상징하는 세 섬이 있어 호연지기까지 느껴진다. 이 연못은 광한루 앞을 흐르는 섬진강 상류 요천(蓼川)의 물길을 끌어들여 하늘의 은하수 삼아 오작교(烏鵲橋)를 놓았다. 요천은 여뀌가 많은 냇가라는 의미다.

여뀌는 쌍떡잎식물 마디풀과 한해살이풀이다. 좁쌀 매달린 듯 분홍색 여뀌꽃은 참 아름답다. 이 꽃의 꽃말 '날 생각해주렴'은 춘향전의 주제가 연상된다. 춘향이의 마음이 여뀌 꽃망울에 조롱조롱 맺힌 듯하다. 남원 광한루 앞 무대를 이루는 요천은 백두대간 자락의 운봉고원과 장수고원 방향에서 흘러내린다.


20km 거리로 가까운 운봉고원과 장수고원은 6세기 전후의 시대에 가야 세력의 거점 지역이었다. 백두대간 산록의 동쪽과 서쪽에 있는 이 두 고원 지역에,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계(分水界)를 이루는 장수군의 수분치와 섬진강과 낙동강의 분수계를 이루는 남원시 주천면의 구룡폭포 지역이 하천 쟁탈 지형이란 공통점이 있어 흥미롭다.

백두대간 동편의 낙동강 수계인 남원시 운봉고원은 지리산 산록으로 분지 평탄지인데 남서쪽은 급경사로 낮아지는 언덕을 이루어 섬진강 수계를 이룬다. 장수군 수분치는 금강 수계에서 섬진강 수계로, 남원시 구룡폭포는 낙동강 수계에서 섬진강 수계로 물길의 흐름을 바꾼 하천 쟁탈의 생생한 현장을 살펴볼 수 있다. 운봉고원의 외벽을 넘어서 구룡천이 요천으로 흐르고, 장수고원의 외벽을 넘어서 교동천이 요천으로 흐른다.

남원 광한루에서 동북 방향으로 약 35km 거리에 장수군 수분치가 있다. 수분치는 장수분지 외곽의 외륜산 낮은 안부를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개는 계곡이 산줄기의 능선인 마루금을 만나는 곳이다. 고개는 대체로 대칭되는 경사의 계곡이 마주 보며 서로 만난다.

고개가 한쪽이 급한 경사면이고 다른 쪽은 고원의 평탄지 지형이면, 급한 경사면의 하천이 고원의 평탄지 토사를 아래로 깎아내는 침식이 강해져 결국 하천 쟁탈이 진행된다.

물은 급한 경사를 만나면 뛰어내리기 좋아한다. 거의 수직 절벽을 만나면 하늘을 날듯이 폭포가 된다. 수분치와 구룡폭포 지형은 이와 같은 원리에 의해 형성된 지형이다. 구룡폭포 지형에 비하면 수분치는 협소한 지역이어서 지형이 한눈에 관찰된다.


9월 말 아침 이슬이 제법 차갑게 느껴지는 계절에 장수군 수분치를 찾아갔다. 부산대 손일 교수의 '전북 장수군 수분치 하천쟁탈 연구(2013년, 대한지리학회지)' 논문을 참조하였고 이 지역의 지형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장수군 수분재의 옛날 길은 교동천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한 고갯길이었을 것이다. 신작로가 나고, 산기슭을 깎아 도로를 조성하고, 2차선 포장도로가 생기고 곧 직선화 되고 고갯마루는 또다시 4차선으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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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마루 도로의 아래로 계곡 물이 수로암거로 흐른다. ⓒ 이완우

    
해발고도 539m의 수분치는 장수군 번암면 방향으로 흐르는 교동천이 수로암거(水路暗渠)로 수분치 고갯마루의 지하를 횡단하고 있다. 고갯마루의 도로가 곡중(谷中) 분수계인 계곡을 건너가는 셈이니 특이한 지형이다. 수로암거는 계곡이 험준하고 녹음이 깊어 접근하기 위험했다.

수분치 가까운 곳에서 분수계 지형 변화의 흔적으로 유로가 변경되어 물이 흐르지 않아 건천처럼 남게 된 구하도(舊河道)를 추정할 수 있는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구하도 추정지 200m 구간은 농경지와 시설물이 위치하여 쉽게 구별은 안 된다. 금남호남정맥의 산맥이 수분치 지역에서 분수계의 혼선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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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수계로 향하는 급경사가 강한 하천 쟁탈의 힘을 유발한다 ⓒ 이완우

 
수분치의 하천 쟁탈 역사는 지질학적 사건이다. 수분치 하천 쟁탈 발생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1970년대에는 수분치 마루에서 도로가 U자형 계곡 산지 하천을 우회했었다. 1980년대에 수분치 도로를 직선화하고, 2012년 4차선으로 수분치 마루 도로를 확장했다. 수분치 수로암거(가로 2m, 세로2m, 길이 87.5m)는 수로 내에서 방향을 두 번 틀어 완만하게 계곡의 지형을 따라 진행된다.

수분치는 역사적으로 운봉고원의 가야 세력이 서북쪽의 백두대간 치재를 넘고 수분치를 넘어 장수고원의 가야 세력과 소통하는 중요한 통로에 위치한다. 마한과 백제, 신라가 서로 인적 물적 자원을 교류하는 소통의 고갯길이었을 것이다.

수분치의 계곡물은 이 고개의 서쪽 3km 거리의 신무산(897m) 기슭에서 발원한다. 이 신무산의 강태등골에는 천리 물길 395km에 이르는 금강의 발원지로 이름난 뜬봉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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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포장 농로를 경계로 왼쪽은 경사가 급한 섬진강 수계이고, 오른쪽은 농경지로 평탄한 금강 수계이다. ⓒ 이완우

 
수분치 고갯마루를 횡단하여 흐르는 교동천이 시작한 신무산 계곡에 원래 금강의 발원지가 있었을 수 있다. 그런데 하천 쟁탈이 발생하여 이곳의 물길이 섬진강 수계로 바뀌자 금강으로 흐르는 신무산의 옆 계곡의 뜬봉샘이 금강의 발원지가 되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된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줄기는 자연스레 수계의 경계가 된다. 엄밀한 의미로는 여느 고개도 수분재가 아닌 곳이 없다. 그런데 장수군 수분치 고개는 예로부터 하천 쟁탈로 형성된 이곳의 지형이 강하게 인상적이어서 수분치라는 보통명사 성격의 고유명사가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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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재 마루 도로 횡단 암거. 경사가 급하여 어둑하여 접근이 어렵다. ⓒ 이완우

 
조선 시대의 고지도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분현(水分峴)이라 표기가 보이고, 대동여지도에는 남천이라고 수분치에서 장수 방향으로 흐르는 하천이 표기되었다. 해동여지도에는 분수원(分水院)이 있어 이 수분치에 공무로 여행하는 관리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남원시 요천에서 장수군 수분치까지 섬진강 상류인 요천의 하천 쟁탈 현장을 찾아보는 여행은 소박하고 단조로왔다. 하천 침식이 진행되는 현장은 중력이 충실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곳을 답사하며 지형 변화의 생동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갈까? 이 계절에 산과 들 냇가 곳곳에 피어있는 여뀌꽃에 다음 여정을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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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요천의 꽃인 여뀌. 분홍색 꽃들이 어린 시절 추억의 꽃이다. ⓒ 이완우

 
수분치 사거리에서 동북쪽으로 200m 위치에 뜬봉샘사거리가 있다. 뜬봉샘사거리에 서쪽으로 가까이에 뜬봉샘생태공원이 있고, 2km 숲길을 올라가면 조선 태조의 건국 설화가 전해지는 금강 발원지 뜬봉샘이 있다. 뜬봉샘사거리에서 동쪽으로 4km 위치에는 힐링 여행이 가능한 방화동자연휴양림이 있다. 알알이 붉은 사과가 익어가는 사과의 고장 장수에 의암 논개 관광지와 장수가야 유적지도 찾아가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남원 요천 하천쟁탈 #장수 수분치 #남원 구룡폭포 #남원 요천 여뀌 #산자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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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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