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의 침로인 'ESG'가 거대한 전환을 만들고 있다. ESG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의 앞자를 딴 말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세계 시민의 분투를 대표하는 가치 담론이다. 삶에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사람과 조직을 만나 그들이 여는 미래를 탐방한다.[기자말] |
▲ 카카오 농장에서 아동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 ENDEVR
지난 2020년 네슬레와 허쉬 등 초콜릿을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에서 벌어진 아동 노동 착취를 묵인한 혐의로 집단 소송을 당했다. 이 소송은 인권 단체인 국제권리변호사회(IRA)에 의해 미국 워싱턴 연방법원에 제기됐다.
집단 소송에 참여한 8명의 원고는 모두 아동 노동자 출신으로 서아프리카 말리 국적이다. 이들은 16세 미만의 어린 나이에 인신매매 당해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농장으로 끌려가 노예 노동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보호장구가 없어 살충제와 제초제에 노출된 채로 위험한 노동을 했고, 그 기간에 임금은 물론 충분한 식사조차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글로벌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아동 불법 노예 노동이 지속되도록 방조했다고 비판했다. 농가가 적절한 보호 장비를 갖춘 성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아동에게 불법 노동을 시킬 때 낮은 공급가가 유지되기 때문이다.[1] 카카오 농장에서 해방된 한 아동 노동자는 "사람들이 초콜릿을 먹으면 내 살을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2]
카카오 농장의 아동 강제 노동은 심각하고 고질적인 문제다.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를 비롯한 서아프리카에서 카카오는 수출용으로 재배되는 대표적 상품 작물로[3] 현재 서아프리카에서 전 세계 카카오의 약 70%가 재배되고 있다.[4] 노동력이 저렴한 곳에서 작물을 재배해 조달하는 글로벌 초콜릿 회사들 때문이다.[5] 글로벌 기업에 값싸게 카카오를 공급하기 위해 2013~2017년 가나의 카카오 농장에서 1만4000여 명의 어린이가 강제 노동에 투입된 게 확인됐다.[6]
▲ 카카오 농장에서 아동 노동자들이 마체테를 사용하고 있다. ⓒ ENDEVR
작업 환경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한 부모는 거리낌 없이 농장주에게 아이들을 넘겼고, 아동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카카오 농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험한 장시간의 무급 노동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인신매매범들은 속임수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을 직접 납치해 카카오 농장에 팔기도 한다.[7]
카카오 농장에서 아동은 하루에 최대 14시간까지 일하며 전기톱을 사용해 숲을 청소하거나, 카카오나무 위에 올라가 칼로 콩알을 깎는 등 위험한 노동을 한다. 국제 시민단체 워크프리에 의하면 카카오 강제 노동에 종사하는 아동 중 90%에 해당하는 약 63만여 명이 위험한 작업을 수행한다.[8]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동자가 사용하는 칼인 마체테는 국제 노동법과 아동 노동 근절에 관한 유엔 협약을 위반하는 위험한 도구다. 마체테를 휘두를 때마다 아동들은 살이 잘릴 위험에 노출된다. 실제로 많은 아동이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몸에 흉터를 얻었다.
강제 노동을 하는 동안 아동들은 농약에 노출된다.[9]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등 카카오 열매를 생산하는 열대 지역에서는 곤충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열매 꼬투리에 다량의 농약을 분사한다. 보호복을 착용하지 않은 아동이 이 작업을 하곤 한다.
2018년 기준으로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장에서 농약에 노출된 어린이 비중은 약 50%로 10년 전 15%에서 큰 폭으로 상승했다.[10] 일부 아동들은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구타당하고, 노동이 끝난 뒤에는 깨끗한 물이나 위생적인 욕실은커녕 창문조차 없는 건물의 나무판자 위에서 불편한 잠을 청한다.
공염불이 된 하킨-엥겔 협약
▲ '슬레이브 프리 초콜릿' 홈페이지 ⓒ 슬레이브 프리 초콜릿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동 반대 운동을 벌여온 '슬레이브 프리 초콜릿' 설립자인 앤 릭스는 "초콜릿 회사들이 20년 전에 아동 노동을 없애겠다고 약속했으나, 아동 노동이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약속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11]
실제로 21년 전인 2001년 9월 19일 세계 카카오 산업의 당사자들은 아동 노동을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2000년 9월 B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시작으로 카카오 산업에 만연한 아동 노동 실태를 고발하는 언론 보도가 잇달았다.[12] 초콜릿 회사들은 아동 노동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그럴수록 소비자들의 비난은 점점 더 강해졌다.[13]
미국 민주당 엘리엇 엥겔 하원의원과 톰 하킨 상원의원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초콜릿 제품에 대한 '아동 노예 금지' 라벨 개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입법 수정안을 도입했다.[14] 이들은 아동 노동으로 생산되지 않은 초콜릿에 인증 라벨을 붙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초콜릿제조업자협회는 입법 수정안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인증 라벨은 서아프리카의 모든 카카오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아 서아프리카 경제에 피해를 줄 것이고, 초콜릿 회사는 카카오 농장 통제권이 없기 때문에 아동 노동에 책임을 질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15]
이러한 논란 속에 아동 노동을 근절하기 위한 금지 및 즉각적인 조치에 관한 지침이자 카카오 산업계의 아동 노동을 철폐하기 위한 협약인 하킨-엥겔 협약이 도출됐다. 모종의 타협으로 이뤄진 협약은 21년이 지난 현재의 평가론 허울뿐인 협약이 됐다.[16]
199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인신매매, 부채를 통한 속박과 노예와 유사한 관행으로 아동을 모집해 강제 노동에 이용하는 것과 아동에게 건강, 안전 또는 도덕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작업을 시키는 것 등을 최악의 아동 노동이라 정의했다.[17] 이를 금지하기 위한 협약이 당시 국제 사회에 비준돼 각국이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이 됐다.
ILO 기준을 따르는 하킨-엥겔 협약에는 총 8개 대기업, 2명의 미국 상원의원, 1명의 미국 하원의원, 코트디부아르 대사, 소수의 NGO 및 산업 연합 대표가 서명했다.[18] 정부, 글로벌 카카오 산업, 카카오 생산자, 비정부 기구가 모두 협력한 자발적 협약이다.[19]
2002년에는 협약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단체인 국제코코아재단이 출범했다.[20] 재단은 시민 사회, 카카오 산업, 국제기구, 농업협동조합,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아동 노동과 강제 노동을 방지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단체다.[21]
결론적으로 협약은 공염불이 됐다. 글로벌 초콜릿 기업들은 2001년 당시 향후 4년 안으로 아동 노동을 종식하겠다고 말한 것과 달리, 충분한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22] 협약에 합의된 목표는 본래 기한을 넘기고 2005년과 2008년, 2010년으로 점차 연기되었다.[23] 2010년에는 2005년의 목표를 수정해 2020년까지 서아프리카의 카카오 농장에서 가장 나쁜 형태의 아동 노동을 기존에 비해 70% 이상 줄이겠다고 발표했으나, 이 또한 달성되지 않았다.[24]
글로벌 초콜릿 기업들이 아동 강제 노동으로 수확된 카카오를 제품에 사용했는지를 표시하려고 한 미국 연방 인증 시스템 제정을 회피한 결과가 하킨-엥겔 협약이라는 지적도 나온다.[25] 협약에 따라 연방 규제 기관은 초콜릿 회사들의 카카오 공급을 모니터링할 수 없게 됐다. 초콜릿 산업에서 아동 노동을 종식할 책임과 권한은 초콜릿 회사가 오롯이 쥐게 되었다.[26]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동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
▲ 아동 노동
ⓒ 유니세프
그러나 초콜릿 산업은 아동 노동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유의미한 노력을 보이지 않았고, 많은 회사는 여전히 카카오 출처 정보의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27] 협약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초콜릿 기업들은 아동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하는 대신 그들의 미미한 노력을 과장해 홍보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네슬레, 허쉬, 마스 등이 참여한 세계 카카오 재단의 문서가 유출돼 업계가 아동 노동과 노예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일부 성과를 공중에 전달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이 폭로되었다.[28]
2010년 이후로도 아동 노동을 근절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이 이행되었으나, 2020년까지 아동 노동을 줄이겠다는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다. 오히려 ILO의 2021년 6월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 노동자는 2016~2020년 사이 840만 명 증가한 1억 6000만 명으로 집계됐다. 그중 절반이 5~11세 아동 노동자이며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29]
7900만 명의 아동은 지금도 건강과 안전, 도덕 발달을 위협하는 위험한 작업에 종사한다. 2020년 ILO와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은 아동노동에 반대하는 인류의 노력이 2016년 이후 차질을 빚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동 노동 인구가 늘어난 원인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아동 노동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태평양, 라틴 아메리카,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2008년 이후 아동 노동 인구가 꾸준히 줄어들었다. 그중 태평양 지역에서는 아동 노동에 종사하는 수가 6490만 명 감소했다.[30] 그러나 가나와 코트디부아르가 포함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노동인구가 늘어났음에도 2008~2020년 사이 아동 노동자 또한 2150만 명 늘었다.[31]
코로나19는 상황을 더욱 빠르게 악화시켰다. 팬데믹 영향으로 카카오 생산국의 경제 상황이 나빠져 농부의 소득이 줄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학교가 폐쇄되어서이다.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가격 하락으로 농가 소득이 10% 감소하면 아동 노동이 5%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32]
▲ 세계 아동노동 추이 ⓒ 유니세프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동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농부들의 빈곤과 불안정한 카카오 가격 때문이다.[33] 카카오 농부들은 코트디부아르에서 하루 약 50센트, 가나에서 하루 약 84센트를 벌어들인다. 극빈층으로 규정되는 기준금액인 하루 1.25달러보다 훨씬 낮은 수입이다.[34] 농부들은 노동 비용을 절감해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더욱이 대부분의 카카오는 독립적인 소규모 자작농에게서 재배된다.[35] 또한 아동 노동에 관한 모니터링이 없는 상황이 농부들로 하여금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아동을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하게 만든다. 교통수단이 거의 없는 외딴 지역에서는 경찰과 사법 시스템에 접근하기 힘들어 착취에 대한 기소가 어렵다.[36]
교육의 부재로 카카오 농부와 지역 주민은 미숙련 상태로 남고 이는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이다. 아동 노동의 근절을 위해서는 농촌 환경 개선과 정당한 임금 지급, 지역 사회의 생활 개선이 필수적이다.
글: 안치용 ESG코리아 철학대표, 김유승·이주현 바람저널리스트, 이윤진 ESG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