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득 얻어온 고춧잎... 말려놓으니 든든합니다

가을이 오면 식재료를 말려두고 겨울에 먹습니다

등록 2022.10.02 13:03수정 2022.10.0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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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잎 밭에서 따온 고춧잎 ⓒ 이숙자

 
어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누구일까? 하고 전화를 받으니 시니어에서 함께 공부하는 어르신이다. 

"어르신 왜요?"
"나 텃밭에 나왔는데 지금 와서 고춧잎 따 가라고, 교회 앞에서 조금 내려오면 내 전동차 길거리에 있어."  


그 말을 듣고 남편과 나는 말해준 장소로 찾아갔다. 어르신이 말한 장소는 우리 집에서 얼마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다. 무슨 일을 하든 남편이 곁에서 같이 해 주니 마음이 든든하다.

남편과 같이 교회에서 조금 내려가니 날마다 보는 어르신 전동차가 길거리에 있다. 맨날 보던 전동차도 길거리에서 보니 반갑다. 어디 계시나 하고 전화를 하려는데 바로 옆 산 아래서 어르신이 "여기야" 하고 부른다. 항상 보는 사람도 다른 곳에서 만나니 또 반가웠다. 

남편도 차를 주차하고 밭이 그늘진 걸 보고 고추밭으로 들어온다. 아가씨도 아닌데 햇볕에 얼굴이 탄다고 싫어한다. 나이 든 남편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 아마도 얼굴에 난 검버섯 때문일 것이다. 때론 그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텃밭은 우리가 가끔 산책 다니는 은파 호수길 옆에 있었다. 작은 텃밭이라고 했는데, 제법 넓다. 고구마, 고추, 파, 당근, 가지, 도라지까지 여러 작물이 밭에 옹기종기 모여 정답게 자라고 있었다.

세상에 이 밭을 혼자 다 가꾸신다니. 그렇게 농사 지어 가끔 자녀들에게 택배를 보내고 자녀들 밥상에 오르게 한다. 참 대단한 분이시다. 절약이 몸에 습관이 되셔서 아주 검소한 생활을 하시는 어른이다.  

84세나 된 어르신은 나와 같이 시니어 클럽에서 붓글씨도 쓰시고  복지관에서 장구도 배운다. 귀가 좀 안 들릴 뿐 건강하시다. 나는 어르신 덕분에 가끔 가지도 상추도 호박잎도 얻어먹는다. 텃밭에 있는 야채들을 바라보니 친근하다. 나와 날마다 거의 만나는 분의 정성이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지금은 김장 배추와 무도 심어 놓아 잘 자라고 있다. 작업을 하면서도 늘 우리의 주제는 텃밭 이야기다.

고춧잎은 우리 셋째 딸이 좋아한다. 엄마는 자식들이 찾아오면  좋아하는 먹거리를 보낼 때 마음이 흐뭇하고 기쁘다. 고춧잎은 말려 무말랭이와 같이 무쳐 먹으면 꼬들꼬들하고 맛있다. 가을이 오기 시작하면서 주부들은 겨울에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준비한다. 대부분 나이 든 분들이 식재료를 말리신다.

여러 가지 나물들을 말려서 저장을 해 두고 겨울이 오면 먹는다. 제철에 나오는 나물 종류와 호박, 가지 말리지 않는 식품이 없을 정도로 말려서 저장해 놓고 겨울을 보내고 다음 해 까지 먹는다. 냉장고가 없는 때부터 그렇게 말려 먹는 식재료는 지금 까지 습관이 되어 왔다. 볕이 좋고 짧은 가을이 되면 무엇이든 말리고 싶다. 말려 저장해 놓고 겨울에 먹는 재미가 있다.
                        
남편과 고춧잎을 따서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 쏟아놓고 편한 자세로 고춧잎을 다듬는다. 남편은 집안일을 곧잘 도와주신다. 혼자보다 둘이 하는 일이 훨씬 속도가 빠르다. 고춧잎을 다듬고 인터넷으로 효능을 찾아보니 여러 가지 몸에 좋은 성분이 많다. 특히 당뇨에 좋다고 하니 당뇨가 있는 나는 관심을 가지고 먹어야 할 것 같다. 

아침부터 커다란 냄비에 소금 한 줌 넣고 끓는 물에 고춧잎을 넣어 살짝 삶아서 씻은 다음 물기를 꼭 짜서 채반에 펴서 말린다. 요즈음은 가을 햇살이 좋아 며칠이면 바삭하게 마른다. 말린 고춧잎은 양파망에 담아 그늘진 곳에 걸어두고 가을 무를 말려 겨울이면 무말랭이와 고춧잎을 김치 만들 듯 만들면 꼬들꼬들 맛있다.

양이 많으면 고춧잎 김치를 담그려 했는데 김치는 큰집에 있는 고춧잎을 따다가 담가야 할 듯하다. 말리는 걸 많이 말려서 겨울이 오면 볶아도 먹고 무말랭이랑 무쳐 먹고. 가을 햇살에 고춧잎을 삶아 말리니 엄마 마음이 된다. 

지금은 돈만 들고 슈퍼나 시장을 가면 무엇이든지 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예전 우리 어머니 세대는 부지런히 먹거리를 말려 저장해 놓고 겨울을 보냈다. 나도 나이 든 세대라서 그런지 엄마들이 살아왔던 삶을 보고 배워 습관처럼 가을이 되면 무엇이든 말린다. 

하늘은 맑고 햇살은 포근한 가을은 무엇을 말리든 말리기 좋은 날씨다. 작은 것이라도 먹는 걸 말려 놓으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모든 물가가 오르고 비싼 요즘, 되도록 소비를 줄이고 살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힘든 시절을 살아오면서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하는 어른이 곁에 계셔 삶의 지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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