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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도자기는 최고의 한류다"

[인터뷰] 불이 연출한 자연적인 아름다움, 김진현 도예가

등록 2022.10.02 16:55수정 2022.10.03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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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요 김진현 도예가 ⓒ 김희정

 
"우리나라 전통도자기는 세계시장에서도 가장 존귀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그 가운데 장작가마에서 구운 도자기는 미(美)의 정수이다. 최고의 한류이다. 1300도 넘은 뜨거운 가마 안에서 불이 일으킨 예술성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자연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예술품이기 때문이다."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에 있는 심천요(深泉窯)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가끔 처음 본 작품이 말을 건네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도 그랬다. 진사·분청·백자 등 다양한 도자기 작품이 저마다의 표정으로 말했다. 전통과 현대와 미래가 공존하면서 품격이 느껴졌다.

'우주'를 표현한 작품을 보며 '어린왕자는 저 광활한 우주 어디쯤 살고 있을까'라는 상상력도 발동했다. 누가 말했던가. '진정한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라고. 김진현(64, 심천요) 도예가의 작품을 향한 열정과 집념, 실험정신이 궁금했다. 전통도예 작가가 점점 줄어드는 이 시대에 전통도예의 맥을 잇고 있는 사연도 듣고 싶었다. 

제36회 이천도자기축제가 한창인 지난 9월 24일, 예스파크(이천도자예술마을)의 도자기전시판매 부스에서 김 작가를 다시 만났다. 이천도자기축제는 10월 3일까지 주말과 공휴일에 예스파크에서 열린다.

기본에 충실하고 내실을 다지는 도예

- 도자기축제장에 나오니까 어떤가.

"감회가 새롭다. 이천도자기축제는 2회 때부터 25년간 참여했다. 그 후 10여 년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다시 참여했는데, 예전에 봤던 분들이 저를 기억하고 찾아오시고 기쁘게 반겨주셔서 감사했다."

- 도자기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도자기 제작은 저의 선친(先親)인 김경종님께 배웠다. 197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아버님은 신둔면 수광리에 위치한 광주요(廣州窯)에 근무하시며 장작가마에 불 때는 일도 하셨다. 아버님께서 밤늦도록 가마에 불을 때는 날이면 우리 형제들은 음료수나 간단한 간식을 챙겨서 아버지한테 갖다 드렸다. 나는 그 일을 다른 형제들보다 더 여러 번 했다. 그렇게 자주 가다보니 아버님이 작업하시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게 됐다.

아버지는 캄캄한 곳에서 가마에 불을 때시며 어린 나에게 가마 옆으로 오라고 하시고는 불빛의 변화에 따른 불의 온도를 알려주셨다. 흙 수비하는 방법, 흙 꼬박을 미는 방법, 흙 성형(물레에 흙덩이를 올려놓고 기물을 만드는 것), 장작을 깨끗하게 다듬는 방법 등 전통 도자기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1978년부터는 물레를 돌리며 기물을 만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흙을 좋아하고 손으로 만들기를 좋아하여 도자성형을 빠르게 터득했다."

- 요장에 가면 대부분 토련기와 흙덩이가 있다. 그런데 흙 수비와 꼬박밀기는 새롭다.

"흙 수비는 흙 원자재를 가져와 수비통(커다란 고무통)에 흙물을 풀고 채로 4번 정도 거른 후 그 앙금물을 광목천에 붓고 햇빛에 자연 건조를 시킨다. 약간 꼬득꼬득하게 마르면 그 흙을 떼어다가 하나하나 비닐로 덮어서 숙성시킨다. 꼬박밀기는 흙이 필요할 때면 필요한 만큼 가져와 맨발로 밟는 과정을 말한다. 발로 잘 밟은 흙을 추석에 송편 빚을 때 반죽하듯이 반죽한 뒤 물레에 올려놓고 기물을 만드는 것을 성형이라고 하고. 

사실 이러한 기법은 아버지만의 특별한 방식은 아니었다. 1970년대까지 이천의 도예가들 대부분은 그런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도자기업계에 기계가 상용화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우리 작업장은 그때 하던 방식과 별반 달라진 점이 없다.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서 작업하기 때문이다. 아버님의 호가 심천(深泉)인데, 그 호를 내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깊을 심, 샘 천, 기본에 충실하면서 뿌리를 깊게 내리며 가자는 뜻이 담겨있는데, 그 뜻대로 기본에 충실하고 내실을 다지려고 한다." 

- 가마솥에 밥을 짓거나 달걀 프라이를 해본 사람은 한 번쯤 그것을 태운 적이 있을 것이다. 장작가마를 사용하면서 어땠나?

"28세 때부터 지금까지 장작가마로 작업하는 동안 딱 한 번 실수한 적이 있다. 어느 해 11월 하순이었다. 작품 44점을 초벌구이 했는데 2점만 괜찮았고 나머지는 모두 소각했다. 원인은 흙을 만드는 과정에서 점토에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평소처럼 불을 땐 데에 있었다. 그 후부터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 흙부터 불 때기까지 꼼꼼하게 체크하고 면밀하게 살핀다. 특히 불을 때는 날에는 형제들과 같이 한다. 형제들은 우리 가마에 불 때는 방식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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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요 김진현 도예가는 진사, 백자, 분청, 천목다완 등 다양한 도자 작품을 장작가마에서 굽는다. ⓒ 김희정


- 현대가마의 편리함과 장작가마의 고단함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 같다.

"수없이 갈등했다. 도자기의 완성은 불이라고 할 정도로 가마의 불 조절은 중요하다. 흙덩이가 도자기가 되려면 평균 16시간 이상을 1300도의 뜨거운 불 속에서 있어야 한다. 도자기는 흙이 뜨거운 불 속에서 견딘 후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2010년 G20 정상회담시 소개된 '한국의 멋' 영상 홍보 자료를 만들기 위해 72시간 동안 장작가마에 불을 땐 적도 있다.

72시간이면 3일인데 그동안 불을 때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보람도 있고 의미도 크지만, 힘들어서 갈등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장작가마 소성은 끝없는 인내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 현대가마가 있어도 도자기 한 작품을 만들려면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시간과 수고를 더 많이 들이는 전통도자기법과 장작가마를 고수한 이유가 궁금하다.

"장작가마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이 연출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나는 이 작업을 일찍이 포기했을 것이다. 그 아름다운 매력 때문에 지난한 수고와 노동이 따르고 시간이 많이 소요될지라도 가장 한국적인 도예기법을 고수한다. 아울러 누군가가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만의 독보적인 도자예술로 종을 울려야 하는데, 꿈을 접지 않고 우리만의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계기와 동기를 부여해주는 사람이 내가 되고 싶다. 장작가마 소성을 계속 지켜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도자기 작업을 하면서 행복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행복한 순간보다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아버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아버님은 소천하시기 전에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셨다. 하루는 주치의로부터 아버님한테 남은 삶이 1년 정도라고 들었다. 아버님은 그 사실을 모르시고 당신이 오래 사실 거라고 믿고 계셨다. 당시 나는 전통도자기법을 어느 정도 습득했는데, 마지막 단계인 장작가마 소성법은 익히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한테 가마에 불 때는 작업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드리면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남은 생을 짐작할 거라는 생각에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다. 그렇게 수일을 고민한 끝에 아버지한테 '가마에 불 때는 작업을 배우고 싶다'라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아주 잠깐 가만히 계시더니 '이 녀석아, 왜 이러고 앉아 있어. 빨리 가서 작업하자'라고 야단을 치셨다. 그렇게 아버지와 같이 처음으로 불 때는 작업을 했다. 이후 아버지와 같이 한 번 더 불 때는 작업을 했고 아버님은 1987년 소천하셨다. 정말 뼈아픈 기억이다. 아버지 소천 이후 작품전시회 때 이십 대 청년이 장작가마에서 구운 작품이라고 믿기 어렵다는 칭찬을 들었다."

"외국인들이 열광하던 한국 도자기의 힘, 지금도 유효"

- 해외인들에게 반응이 뜨겁다고 하던데.

"미국, 유럽, 남미 등 저명한 대학의 교수, 갤러리, 도예가 등 세계 곳곳에 팬이 많다. 페이스북 등 sns로 연결된 그 친구들은 한국 고유의 전통방식으로 빚은 도자기 작품의 가치와 우수성을 인정하고 그것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장작가마에 불을 때서 작품이 나오는 장면을 보고 공감하고 감동한다. 우리 전통도자는 세계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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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도예가의 달항아리 ⓒ 김희정

 
인생에서 도자기란 어떤 의미인가.

"도자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내 삶이자 내가 죽을 때까지 같이 가는 것이다. 아직도 흙으로 만들고 싶은 게 너무 많다."

- 후배 도예가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가라, 그 과정에서 끝없는 아픔을 겪더라도 절대 그것에 굴하지 말고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를 끊임없이 갈고 닦으며 앞으로 나가라 라고 말해주고 싶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고 해외인들과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을 갖춰놓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 기성 도예인들이 다음세대 도예인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들은.

"1960~1970년대 우리나라 청자는 가마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일본인들이 가져갈 정도였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그만큼 실력이 탁월하다는 반증이다. 그 힘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천시에는 도자기에 대한 뛰어난 DNA를 물려받고 그 재능을 밑거름 삼아 치열하게 작업하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 기성세대는 도자기 작품의 아름다움에 대해 더 고민해서, 한국적인 미학에 미래지향적인 주제를 녹인 우리 고유의 도자예술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다음 세대가 그것을 토대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이고 새로운 창작품, 세계적인 도자기 명품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앞으로는 우리나라 각 분야의 공예인들과 작가들의 시대가 오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잠재력이 풍부한 도예인을 비롯해 공예인들을 시나 도, 국가 차원에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해주면 큰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한편, 김진현 도예가는 이천시 수광리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고 김경종(심천도예연구소 설립 1980) 도예가에 이어 가업을 잇고 있다. 한양미술작가협회 국제예술대회전 금상 및 특선 수상(1988), 대한민국 도예공모전 금상(2015) 수상 외 다수 수상, 2010년 G20 정상회담 시 소개된 '한국의 멋' 도자기 부문 대표 작가, 제6회 한중일관광장관회의 기여 작가 도자휘호퍼포먼스(2011, 문화체육관광부),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를 대표한 청와대 출품 작가,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대사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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