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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대신 '광주문화방송'이라고 표기한 이유?

[주장] 방송사의 영어 약자 표기는 국적 잃은 방송 문화의 상징... 상시 표시의 계기 돼야

등록 2022.10.01 16:04수정 2022.10.0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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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광주MBC' 대신 '광주문화방송'으로 표기한 화면 ⓒ 광주문화방송


1일 '광주MBC'가 화면 오른쪽 위에 표시하는 회사 이름을 한글인 '광주문화방송'으로 바꿔 내보냈다. 한글날이 들어 있는 '문화의 달' 10월을 염두에 둔 것으로 영구적인 조치는 아니고 10월 한 달 동안 실시하는 한시적인 기획이라고 한다.

그래도 의미가 크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일이자 우리말에 대한 자존심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외국에서 수입되어 외국 것에 물들어 있는 한국방송 문화를 한국화하는 마중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광주문화방송뿐 아니라 문화방송 전체, 한국 방송계 전체가 한글 이름으로 고쳐 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실, 광주문화방송의 한글 회사명 표기 움직임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김상균 전 방송문화진흥재단 이사장이 광주문화방송 사장으로 있던 2005년에 첫 시도가 있었다. 김 전 사장의 문제 제기로 이런저런 방안을 고민하다가 '광주 MBC'란 영어 회사 이름 밑에 '문화수도 광주'라는 한글 문구를 화면에 병기하기로 했다. 이런 일은 2007년까지 김 전 사장이 재임했던 3년 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김 사장이 떠나자 이런 시도는 끝났다.

그리고 이런 시도에 자극을 받았는지, 아니면 한글날을 나름대로 경축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2018년 한글날, MBC 대신 문화방송 표기가 나갔고 이후 한국방송(KBS)과 교육방송(EBS) 등도 한글날에 한정해 한글 회사 이름을 표기했다.


한국방송사가 한글 이름 찾는 기폭제 되길

따지고 보면, 한국방송을 영어로 케이비에스(KBS), 문화방송을 엠비시(MBC)로, 교육방송을 이비에스(EBS)로 표기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좋은 예로 일본의 엔에치케이(NHK)는 엔에이치케이의 이름인 니폰호소쿄카이(日本放送協会, NIPPON HOSO KYOKAI)의 영어 발음의 머릿자를 딴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케이비에스(한국방송공사)는 '에이치비케이(HBK)'로 표기하는 게 맞다. 우연하게도 엠비시(문화방송주식회사)는 다행히 비(B)가 방송 또는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의 약자라고 할 수 있어 큰 문제가 없는 듯 보이지만, 표기의 구성 원리는 엔에치케이와 전혀 다르다.

방송사 이름 표기에 대한 문제 제기는 1970년대 순한글 가로쓰기 잡지 <뿌리깊은나무>를 창간하고 발행했던 한창기씨가 선구적으로 한 바 있다. 그는 1976년 이 잡지에 쓴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라는 글에서 "해방이 되자 조선총독부의 지배 아래 있던 우리나라의 방송 시설이 미 군정청의 감독을 받게 되었고 머릿글자들이 케이와 비와 에스로 된 한국 방송 조직이란 뜻의 영어 이름이 등장하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에서도 국립방송이 '엔에치케이'라는 영어 약자 이름을 쓰는데, 그까짓 이름 하나를 가지고 무슨 수선을 떠냐고들 하신다"며 "적어도 '엔에이치케이'는 일본 표현인 '니혼호쇼'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표기한 것의 약자이기나 하다는 것을"이라고 한탄했다.

이번 '광주문화방송'의 한글 사명 표기가 한국방송사 전체에 한글 이름을 찾는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세계 최고의 문화 발명품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도 크게 기뻐할 것이다.
#광주문화방송 #광주 MBC #방송사 이름 표기 #한글날 #한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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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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