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반도, 아름다움에 취하면 '여기' 갇힐수도 있습니다

변산반도 국립공원 서쪽 격포항 찾아가니... 가을맞이 절경 '눈길'

등록 2022.10.03 15:33수정 2022.10.0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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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포항 방파제. 610m 길이의 격포 방파제는 서해를 향해 시원하게 열려 있다. ⓒ 노시경


지난 격포해수욕장에 이어, 오늘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맨 서쪽에 자리한 격포항을 찾아가기로 했다. 격포항은 조선시대 때에 격포진(格浦鎭)이 있던 수군의 근거지였고, 지금도 서해안 해상교통의 중심지인 곳이다. 격포항은 해양수산부에서 지정한 아름다운 어촌 100곳 중의 중 한 곳으로 뽑힐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나는 숙소에서 걸어 우선 격포의 북방파제로 나가보았다. 

610m 길이의 격포 방파제는 서해를 향해 시원하게 열려 있었고, 방파제 위에는 부안의 명물들이 여행객을 반기는 듯 여기저기에 그려져 있었다. 위도와 격포 해수욕장을 바라보며 걸어가니 그 끝에 하얀 등대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위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북방파제와 남방파제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었고, 방파제의 내항 쪽 테트라포드 석축에는 강태공들이 우럭과 숭어를 잡으며 세월을 낚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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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행 여객선. 위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북방파제와 남방파제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다. ⓒ 노시경

 
방파제 북쪽으로는 수천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한 채석강의 기암절벽들과 함께 어제 가보지 못했던 해식동굴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 세월동안 파도가 퇴적암을 침식하여 만들어진 해식동굴이 장관이다. 인공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자연산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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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강. 방파제 북쪽으로 수천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한 채석강 기암절벽들이 이어진다. ⓒ 노시경

 
이 해안 절경은 전북 서해안 지질공원이 시작하는 입구에서 들어가야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바다와 만나는 채석강의 해변 바위는 미끄럽기 때문에 조심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이암과 사암으로 이루어진 퇴적암의 멋진 층리가 마치 조각작품처럼 눈 앞에 나타났다. 색상과 크기가 다른 퇴적물이 시루떡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 너무나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 장엄한 지질명소는 자연의 힘에 만들어진 것이니 다시 한번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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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식동굴 입구. 해식동굴 앞은 인생사진을 남기려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 노시경

 
이 해식동굴 앞은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해식동굴 안에 들어가 바다 쪽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명암 대비가 확실한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를 홀로 모시고 온 한 청년이 동굴 안에 머무르는 시간을 여유 있게 기다려 준 후, 이들이 나오자 찬찬히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동굴 안에서 보니, 바다 쪽에서 들어오는 빛은 한줄기 희망처럼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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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식동굴. 해식동굴 안에서 바다 쪽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명암 대비가 확실한 작품이 나온다. ⓒ 노시경

 
그런데 이 절경을 즐기려면 매일 바뀌는 서해안의 물때를 사전에 확인하고 들어가야 한다. 해식동굴은 만조 시간이 되면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해식동굴을 구경하느라 안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다가 밖으로 나와보니, 동굴 입구 바로 아래에는 이미 바닷물이 가득 들어와 있었다. 하마터면 갇힐 뻔했다.

지질공원 입구 쪽으로 큰 바위를 다시 내려가려고 보니 바닷물이 발목까지는 찰 것같이 보였다. 산 지 얼마되지 않은 운동화도 바닷물에 젖을 것 같았다. 나는 별 생각없이 채석강 앞바다의 물 때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해식동굴 안으로 들어섰던 것이었다. 

머리 속으로 잠깐 갈등을 겪고 있는데 슬리퍼 신고 온 아저씨가 망설임 없이 해식동굴 입구의 젖은 바위 아래로 내려간다. 나도 그 아저씨를 따라 내려갔다가 운동화가 그만 미끄러져 버렸다. 바위 위의 안전줄을 잡아서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몸이 휘청거렸다.

겨우 중심을 잡았지만, 무릎을 바위에 찧는 바람에 무릎에 멍이 들었다. 바지가 젖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물 위를 총총 걸어 다시 방파제 위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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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강 갤러리. 부안군이 국내 최초의 석재 갤러리로 예쁘게 단장한 곳이다. ⓒ 노시경

 
수많은 어선들이 밀집되어 정박 중인 격포항 쪽으로 가니 바닷가 앞의 야외 전시공원, 채석강 갤러리가 보인다. 부안군이 국내 최초의 석재 갤러리로 예쁘게 단장한 곳이다. 병풍처럼 이어지는 곡선 문양의 대리석 양 옆으로 부안이 자랑하는 문화가 새겨져 있다. 대리석 표면을 파낸 곳에 조금씩 다른 대리석의 색상을 끼워 넣어서 마치 붓으로 그린 것처럼 그림과 글씨가 새겨져 있으니 보통 정성으로 만든 곳이 아니다. 

파도가 물결치는 듯한 대리석의 다양한 색상 속에 채석강과 변산반도 풍광이 담겨 있고, 아름다운 격포 바다의 풍경이 함께 새겨져 있다. 이 야외 전시관에는 부안을 사랑했던 문인들의 시와 문학작품이 자랑스럽게 남겨져 있다.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났던 부안의 명기(名妓) 매창(梅窓)의 시와 함께 부안 출신의 서정시인 신석정(辛夕汀)의 시가 격포항 입구에 새겨져 있다. 이 시들은 모두 문학 속에 피어난 변산반도와 채석강, 격포를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갤러리 앞에서 선인들의 시를 차분히 읽다 보니 그 시절의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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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포항. 수십 척에 이르는 어선들이 출어를 기다리며 정박 중이다. ⓒ 노시경

 
채석강 갤러리 옆으로는 수십 척에 이르는 어선들이 출어를 기다리며 정박 중이고, 격포항 안쪽의 건어물위판장, 활선어위판장 앞에는 생선 거래를 위해 모여든 차량들로 북적인다. 그 옆의 격포항 여객터미널에서는 위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격포항과 격포항 주변의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팔각정 위에 올라가 보았다. 마침 위도로 가는 여객선 한 척이 아침의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배 위에서 바다를 감상하는 사람들 뒤로 수많은 갈매기들이 배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배가 나아가는 방향 앞으로 마치 고슴도치 모양을 닮은 섬, 위도가 보였다. 팔각정의 기둥 사이로 보면 격포항과 격포방파제의 모습이 마치 액자 속에 담긴 한 폭의 그림같이 보인다. 

주변의 채석강교 일대는 중생대 때에 호수의 한 켠이었다. 채석강교 북쪽에는 중생대에 퇴적된 퇴적암층이 마치 적벽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채석강에서 이어지는 퇴적암층의 바위 절벽 아래에는 개천의 민물과 격포항의 바닷물이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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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포항의 왜가리. 10마리나 되는 왜가리들이 물 속의 물고기들을 잔뜩 노리고 있다. ⓒ 노시경

 
절벽 아래에는 10마리나 되는 왜가리들이 물 속의 물고기들을 잔뜩 노리고 있었다. 채석강교 아래 물살이 세지는 곳이 왜가리들 사이에서는 소문난 낚시터인 것이다. 물고기를 순간 포착하여 낚아채려는 왜가리 여러 마리가 정중동의 모습으로 물 속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곳의 생태계는 아직 잘 보존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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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공주. 격포 앞바다 석양이 진홍빛으로 물들면 은빛 비늘을 자랑하며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 노시경

 
숙소로 돌아오다가 보니 격포 해수욕장 바위 위에 인어상 같이 생긴 석상이 세워져 있다. 이 화강암 조각상의 이름은 노을공주. 격포 앞바다의 석양이 진홍빛으로 물들면 은빛 비늘을 자랑하며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 노을공주는 바다를 오가는 이들의 무사함도 기원하고 있다. 노을공주가 너무 건장하고 왕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석상에 담긴 아름다움과 바램이 다 잘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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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포해수욕장 갈매기. 갈매기들이 모래사장에서 점점 따뜻해지는 아침 시간을 즐기고 있다. ⓒ 노시경

 
아침 햇살 찬란한 격포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은 갈매기들의 차지가 되어있었다. 갈매기들은 파도의 가장자리에서 점점 따뜻해지는 아침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단지 사진만을 찍으려 접근했을 뿐이지만 갈매기들은 눈치챈 듯 슬금슬금 피했다. 갈매기들은 하나 둘씩 바다로 훨훨 날아갔다. 나도 갈매기들을 따라 날아가고 싶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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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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