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04 13:33최종 업데이트 22.10.0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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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편집자말]
정치인들의 욕설 같은 말실수와 망언은 나라를 막론하고 흔하다. 이유야 많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정치인들이 매일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동시에 계속 언론을 통해 공공에 노출되어 있는 극한 직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즉, 정치인도 인간이기 때문에 가끔 말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또 오히려 그것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측면도 있다.

이런 욕설의 역설은 모욕연구(maledictology)에서도 검증된다. 즉, 가끔 가벼운 욕설을 섞어서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정직하고 진정성이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예의만 지키지 않고 자기의 솔직한 마음도 드러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역설은 정치인의 욕설에도 해당된다. 정치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정치인이 욕설을 사용하면 그 언어의 비공식성에 대해 일반인들의 인식이 높아져서 그 정치인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가끔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실수도 하는 정치인에 대해 (일부) 국민들은 '그도 역시 사람이구나' 하며 친근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유명세의 비결이기도 하다. 

독일에서는 요슈카 피셔가 정치인들 중 욕쟁이로 유명하다. 그는 1980년대 초 진보적인 녹색당 연방의원으로 원내 진출을 했다.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과 날카로운 언사로 악명(?)이 높았다. 1984년 의회에서 뜨거운 논쟁을 하다가 피셔가 의장을 보고 '송구스럽지만, 당신은 OO이십니다!' 라고 말한 것은 전설적인 사례로 꼽힌다.

격식을 엄격히 지켜야 하는 독일 연방의회 분위기에서 대대적인 스캔들이었지만 피셔는 오히려 유명세를 탔다. 그는 나중에 부총리 겸 외무장관까지 역임했으며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거물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물론 욕이나 망언이 도가 넘으면 정치인에게 독이 된다. 얼마 전 독일 니더작센주 의회 선거 운동 때 보수적인 기민당 프리드리히 메르츠 의원이 했던 망언도 그렇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독일로 피신한 난민들 중 일부가 독일과 우크라이나를 왕래하는 것을 두고 '복지관광객(Sozialtouristen)'이라고 폄훼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도망 나와서 독일에 오면 복지 혜택을 받게 되는데, 독일에서 이런 혜택을 누리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놀러간다는 심한 왜곡이었다.

메르츠는 즉각 걷잡을 수 없는 비판을 받았다. 곧 사과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메르츠는 평소의 행동과 태도 때문에 일반인들의 고통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정치인으로 이미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있는 정치인의 말실수

기민당 대표였던 아르민 라셰트 의원의 잘못된 태도도 치명적이었다. 그가 작년 여름 역사적인 홍수 현장을 찾았을 때 농담을 주고받으며 폭소를 터뜨린 것이 화근이 됐다. 그는 프랑크-왈타 슈타인마이어 연방대통령의 연설을 촬영하는 TV 카메라 앵글에 자신의 모습이 잡히는지도 몰랐다.

부적절한 웃음바다의 도화선은 다름이 아니라 슈타인마이어와 라셰트의 비교적 작은 키에 대한 농담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라셰트 의원은 사과도 했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고, 결국 3개 월 뒤에 치러진 연방의회 선거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폭소 논란이 낙선의 주 원인은 아니었지만 라셰트가 이전부터 많이 받아왔던 '총리답지 못한 정치인'이라는 혹평에 딱 들어맞는 듯한 행태로 평가됐다. 그리고 이것이 선거에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욕설이나 불경스러운 행태가 정치인의 기존 이미지와 일치할수록 그 이미지와 욕설의 효과가 상호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잠정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정치인들 중에도 욕설과 부적절한 태도를 보인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비슷해 보여도 위의 독일 사례와는 차원이 조금 다르다. 올 여름 홍수 때 국민의힘 김성원 국회의원이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는 너무나 속이 보이는 망언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자기의 편협한 이해관계만 관심이 있고 홍수 피해자들의 고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MBC는 윤석열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행사장을 나오면서 발언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 MBC NEWS Youtube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노인들이 투표하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을 때는 보다 더 심각한 경우다. 왜냐하면, 민주헌법에 의해 보장된, 아니 어떻게 보면 요구되는 국민들의 선거권 행사를 일부 사회집단에 한해서 부인하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공직으로 뽑아 달라는 정치인의 입에서.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물론 나 안찍을 사람은 (투표장에) 안와도 괜찮지만..."이라고 한 유세 발언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나중에 그가 했던 의회정치 그 자체를 무시하는 듯할 수도 있는 이른바 '탈여의도 정치' 발언이 더 많이 알려져 있기는 하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최근에 논란이 된 윤석열 대통령의 말실수는 국민들의 눈살을 또 다시 찌푸리게 했다. 절대 다수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뉴욕에서 감염병 퇴치를 위한 '글로벌펀드 재정공약' 행사에 참석하고 나온 윤 대통령이 한국 외교단 구성원들을 향해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했다.

핵폭탄급 비속어 논란이 터진 거다. 더군다나 외교의 국제무대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더욱 심각했다. 외교는 해당국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국제무대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외교도 포함한다. 공공외교의 대상은 다른 나라 국민뿐만 아니라 자국 국민들도 역시 중요한 청중이기 때문이다. 

이후 일어난 소모적인 정쟁들을 다 차치하고 대통령의 이번 말실수는 두 가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욕설의 대상이 결국 미국 의회 의원이었든 한국 국회의 의원이었든 윤 대통령의 무의식에서라도 민주주의의 근간인 의회라는 제도에 대한 인식이 섬뜩해 보인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예전에 '이 XX, 저 XX'라는 불경 언사, '전두환이 정치를 잘했다', '박정희식 국정운영을 배우겠다', '박근혜의 명예회복 하겠다'는 발언들은 일정한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즉, 그동안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민주주의 운영에 대해 막연한 걱정만으로 존재했던 것들이 갑자기 현실화할 수도 있는 구체적인 우려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두번째 주요 관점은 사후 대응방식이다. 정치심리학 연구를 보면 정치인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는 전술은 4가지가 있다. 변명과 남 탓하기, 정당화와 물타기, 고발인의 신뢰성 떨어뜨리기,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고 자진 고백과 용서구하기이다. 각 전술의 신뢰회복 효과는 사고가 일어난 상황과 사고를 친 정치인의 성별에 따라 다른데, 보편적으로 가장 잘 통하는 것은 역시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선동정치의 각본 그대로 답습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대통령실과 대통령 그리고 여당이 채택한 수습전술은 안타깝게도 진정한 사과만 빼고 나머지 방식을 모두 동원했다. 처음에는 대통령실에서 뒷부분을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 했고, 나중에는 앞부분을 '이 XX들이'가 아니라 '사람들이'라고 했다. 대통령 본인은 아예 기억상실의 변명까지 대며 잘못을 절대 부인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사와 국민들은 이런 해명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으로 보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반응은 싸늘했고 이미 낮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저로 하락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윤석열 정부의 이 'XX 외교참사'를 계기로 바로 대통령과 외교부장관에게 비판과 비난을 퍼부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욕설, 비속어 논란 책임전가 규탄 현업 언론단체 긴급 공동기자회견’이 9월 2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그러자 대통령과 여당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사건을 괜히 키웠다. 특히, 그렇게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애용하는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막말을 가장 먼저 보도한 MBC라는 '메신저'에게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을 덮어씌우려고 한다. '고발인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전술을 통해 위험천만한 선동정치의 각본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것이 의아하기 짝이 없다.

모든 정치적 문제마저 죄와 벌로 판단하려는 검찰공화국에 대한 우려가 우려로만 끝나지 않으리라는 염려를 자아낸다. 더군다나 해외 언론에서 더 이상 문제로 삼지 않으려던 찰나에 대통령 쪽에서 이렇게 누워서 침 뱉듯 국내에서 불필요하게 문제를 확대시키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언론자유를 침해한다는 등의 비판을 국제적으로 자처하고 말았다.

이번 XX 외교참사는 쉽게 피할 수 있었는데 결국 현 시점에서 더욱 중요한 현안들을 삼킨 블랙홀의 시국파탄까지 가게 됐다. 실은 이런 비속어 논란에 뒤따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굳이 별도로 연구에 의지하지 않고 상식만으로도 언제든지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행동을 경계하고 삼간다는 '신독(愼獨)'의 경지까지 오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세계도시 뉴욕 한복판에서 개최된 온 세상이 주목한 국제행사에서, 대통령의 북미 순방을 공식적으로 취재하는 풀 취재단의 카메라 앞에서라도 절제하고 자신을 규율할 줄 알아야 했다. 이런 기대는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의 원수'에게 과한 것인가? 

* 이 글은 모두 필자가 한글로 작성했으며 편집자가 약간의 교정·교열만 했음을 밝힙니다.
 

하네스 모슬러 /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교수(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하네스 모슬러

 
   

필자소개: 이 글을 쓴 하네스 모슬러는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University of Duisburg-Essen) 정치학과와 동아시아연구소(IN-EAST) 교수이며,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입니다. 관심 분야는 한국정치와 사회이고 최근의 연구주제는 선거제도, 개헌, 기억의 정치, 시민교육, 포퓰리즘 등입니다. 최근 저서로는 <Politics of Memory in Korea>(편저), <South Korea's Democracy Challenge>(편저), <The Quality of Democracy in Korea>(공편저)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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