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온 세상에 시를 수놓고 갑니다

[포토] 강화도 교동 봉소리 오지마을의 가을 풍경

등록 2022.10.04 10:05수정 2022.10.0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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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가을비에 움츠렸던 세상의 문이 열리는 순간 ⓒ 이정민


또 한 번의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번잡한 도심을 떠나 시골로 발길을 옮깁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의 시간의 무게는 너무 다릅니다. 도심과 시골이라는 정감의 차이처럼 말이죠.

단 한 시간도 녹슨 쇠처럼 무겁게만 느껴지는 곳이 저곳 도심이고요. 단 한 순간도, 빛난 금처럼 가볍게만 녹아드는 곳이 이곳 시골입니다. 도심과 시골을 오가는 일상 중에 더 없이 행복을 주는 곳이, 바로 시골이 품고 있는 은은한 향기입니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서로 다투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모두 포용해주는 숲속의 자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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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물안개로 가득한 시골마을의 황금들판 ⓒ 이정민


어느덧 시월의 첫날 밤, 가을비가 퍼부었습니다. 가을비답지 않은, 마치 장맛비 같은 매서움에 놀랐습니다. 참 요란하게 가을을 맞이하고 싶었구나, 하는 조바심도 느꼈습니다.

밤새 잠을 뒤척이다 문득 귀를 간지럽히는 귀뚜라미 향연에 놀라 잠을 깨고 황토방 창문을 모두 열었습니다. 세상이 온통 짙은 물안개로 물감을 뿌려놓은 듯 합니다. 감탄사가 절로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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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를 흠뻑 머금은 흰 거미의 휜 거미줄의 아름다움 ⓒ 이정민


머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토록 적막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냥 시선이 옮겨가는 대로, 그대와 내가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 화두를 던집니다. 저 숙연한 황금들판처럼.

가만히 창가에 서서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나뭇가지에, 새초롬한 이슬비에 녹아드는 여린 꽃잎들을 보며, 자연의 위대함과 시골의 찬란함에, 다시 한 번 경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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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우수로 짙게 물든 한갓진 철책마을의 고독한 오두막 하나. ⓒ 이정민


아무도 없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아무 방해도 없는, 이 온전한 고독이 이렇게나 좋을 수 있을까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책 <월든>에서 나오는 절대고독과 순수한 침묵의 의미를 오롯이 느낄 듯 합니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벌레 요정들은 한참을 그렇게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떠나는 가을비를 위로합니다. 온 산하를 물들인 새하얀 수묵화는 어느새 대지 앞까지 서성이다 고개를 떨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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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마리 겨울 철새들의 마지막 가을 만찬. ⓒ 이정민


그렇게 한참을 집 앞 풍경을 바라보다, 더는 참지 못하고 이슬비를 맞으며 풍경 속으로 스며듭니다. 수줍은 꼬꼬마 청개구리가 꿈속을 거닐다가 칭얼거리고 어느새 손 등 위에서 잠을 다시 청합니다. 시골만 오면 항상 이 작은 친구는 내 몸 이곳 저곳에 둥지를 틀곤 합니다.

타박타박 한 걸음 한 걸음 가을의 우수를 밟아가는 느낌이 따스합니다. 논두렁과 작은 숲속이 마치 '어서 오라'며 새하얀 안개 옷을 입고 수줍게 손짓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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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을 가득 채운 벼이삭의 황금씨앗은 바로 이 작은 수로에서 담아내는 지하수의 사랑이라는. ⓒ 이정민


가을비가 촉촉하게 스며드는 한적한 숲길은 그야말로 신들이 그려낸 예술 작품 같습니다. 이런 소소한 자연의 미학을 알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살아있음에 감사를 전합니다.

아무렇게나 핀 작은 들꽃마저도 아름답고, 이제 막 수확을 기다리는 마지막 벼이삭들의 애처로움도 참 눈이 부십니다. 그 황금들판을 가로지르며 배를 채우는 철새들의 환호성은 귀를 찌릅니다. 왜 저렇게 성나게 울어 대는지, 왜 그렇게 매섭게 떼를 지어 날아오르는지 모를 일입니다.

층층 계단, 작은 수로 위로 엉켜진 흰 거미들의, 촘촘하게 휘어진 거미줄로 투명한 이슬방울이 촉촉하게 눈망울을 떨굽니다. 가을의 잔향들이 거미줄 위에서 바람의 숨결을 마십니다.

항상 지나다니던 포도밭의 휑하고 쓸쓸한 그림자가 이제 막 수확을 끝낸, 그 자리의 아쉬움을 대신합니다. 신기하게도 벽돌과 벽돌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진분홍 수국이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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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잎 네잎 크로버의 수줍은 속삭임이 들리시나요. ⓒ 이정민


한갓진 오두막과 수로와 수로 사이를 겹쳐 흐르는 적막강산의 외로움이 한 편의 서정시 같습니다. 갈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물결의 속삭임도 그 자체로 예술로 승화됩니다.

남과 북을 갈라놓은 철책선 숲속 밑에서 한껏 새벽이슬로 치장한 네잎크로버의 숨결이 하늘거리고, 가을비에 수척해진 고독한 갈대들의 처연함이 사뭇 마음 언저리를 지그시 누릅니다.

가을만 같았으면, 이토록 아름답고 신비로운 가을의 아침만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을처럼 살고 싶습니다. 가을을 닮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가을은 아마도 사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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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를 흠뻑 머금은 외로운 갈대의 마음을 그 누가 알 수 있을까요.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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