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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 우리 집 앞 '흉물 건물'... 이걸 어찌 할까요

충남·대전 안전조치 내역 한땀한땀 정보공개청구, 다른 지역 처리 확인... 그러나

등록 2022.10.05 10:12수정 2022.10.0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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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군 우리 아파트 앞에는 장기 방치 건축물이 있다. 건물 창틀에는 유치권 행사라는 현수막이 애처롭게 걸려있다. ⓒ 고봉찬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짓다가 팽개친 건물을 본 뒤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이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했더니 범죄가 더 확산된다는 내용으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으로 하여금 범죄의 온상이던 뉴욕 지하철 내의 낙서를 모두 지우도록 했다는 그 이론 말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지나다녔건만 왜 나는 우리 집(충남 홍성군 소재) 앞에 이런 '깨진 유리창'이 있는지 몰랐단 말인가. 뉴욕의 슬럼가처럼 금목걸이에 스냅백을 눌러쓴 덩치 큰 사람들이 랩을 하며 우리 아파트를 어슬렁거리는 상상이 오버랩 되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일단 법령을 검색해 봤다. 방치건축물정비법을 찾고 나서는 '철거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림막 정도는 설치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검색해 보니 충청남도가 공사 중단 방치 건물 실태조사까지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보는 충분했다. 검색을 마친 후 군민답게 군청에 전화를 걸었다. 허가건축과 담당 공무원에게 여차저차 설명을 하고 당장 가림막으로 저 흉물을 둘러쌀 것을 제안했다. 가능하다면 가림막에 홍성군청이 그토록 사랑하는 마늘 사진도 넣자는 건의도 덧붙였다(홍성에 산 지 20년이 넘었지만 마늘이 홍성 특산품이라는 건 최근에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유튜브 송출 사건 기사를 보고 알게 됐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의 답변은 '복지부동'과 같았다. 사실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필자가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으면 건축주에게 가림막 설치를 권고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답변은 이미 예상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공무원이 통화 말미에 한 말 "다른 시·군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은 내게도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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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내 모든 시, 군과 대전광역시에 “방치건축물정비법에 따른 공사 중단 위험 건축물에 대한 조치내역”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 고봉찬

 
다른 시·군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충청남도 내 모든 시·군과 대전광역시에 '방치건축물정비법에 따른 공사 중단 위험 건축물에 대한 조치내역'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예상대로 홍성군을 비롯해 대부분 시·군에서 부존재 답변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의외였다. 충남도내 가장 규모 작은 지자체인 청양군이 2018년도부터 방치 건축물에 대해 나름 꾸준히 '안전조치(안전펜스 등) 및 접근금지 조치'를 하고 있었다. 예산군도 2021년도에 '출입 금지 조치(펜스 조치)'를 했고, 안전조치 조치계획서를 요구했다.

주변 군에서 조치를 하고 있으니 이번에는 홍성군 차례라고 생각했다. 먼저 저 건물이 왜 저기 저렇게 짓다가 말았는지 궁금해졌다. 홍성군에 우리 집 앞의 방치 건축물에 대한 건축 허가 관련 자료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결과는 비공개 결정이었다. 건물 건축 허가 관련 자료는 개인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된다는 게 답변이었다. 담당 공무원은 도면 같은 경우에는 저작권법 위반의 문제도 있다고 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은 자료를 가지고 정보공개 청구소송으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우리 아파트 앞 건물이지만 나아가 홍성군 전체의 장기 방치 건축물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는 군민의 '충복' 군의원의 도움을 빌려보자. 일단 의원들은 친절했다. 다만, 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지는 않았다. 의원들은 바빠 보였고 홍성군 전체에 대한 장기 방치 건축물 대책이라는 주제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결국 우리 아파트 앞 방치 건축물에 대한 민원쯤으로 이야기가 끝났다.

"내버려 둬... 누군가는 처리해"  

평상시 내 일에 관심이 없는 배우자였지만, 사람들과 통화하는 것을 들었나 보다. 아내는 간단히 상황을 정리했다. 우리 아파트 '앞이 보기 흉하고 밤에는 무섭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내버려 두면 누군가 언젠가는 정리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강조했다. 여기서 '누군가'는 그 건물이 필요한 누군가이지 당신은 아니라고...

원래는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걸고 장기 방치 건축물 정비조례 입법 청원을 하거나 감사 청구를 할 생각이었지만, 아내를 믿기로 했다. 오지랖을 떨어서 일을 만들지 말라는 아내의 준엄한 경고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세상살이에 나보다 밝은 모습을 보여 왔으니 말이다.

오늘도 방치된 건물 앞을 지나면서 생각한다. 아들에게 자랑할 무용담이 하나 사라진 건 아닌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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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에 사는 변호사 고봉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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