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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후에 안 가도 후에?

[후에 2편] 도시의 얽힌 역사 알고 가면 재밌는 관광지

등록 2022.10.06 08:51수정 2022.10.0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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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꾸며진 뜨득황제릉 흐엉강을 따라 등장하는 첫번째 뜨득황제릉은 제위기간 중간에 완성되었고, 뜨득황제가 수시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 운민


베트남을 대표하는 고도, 후에를 가리켜 한국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다.
'가도 후에, 안 가도 후에'라는 이야기로 후에를 가리켜 가도 후회하고, 안 가도 후회라는 말을 돌려 일컫는 뜻이다. 서양 여행자들에게는 동양적인 오리엔탈리즘을 충족시키는 여행지로 후에가 충분히 매력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한국사람들에게 굳이 아까운 시간을 들여 갈 만한 곳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후에의 유적지를 차분히 살펴본다면 우리의 역사 이상으로 화려했던 응우옌 왕조의 문화를 압축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응우옌 왕조의 역사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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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무사원의 팔각구층탑 티엔무사원은 후에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으로 탑뿐만 아니라 틱광득스님이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졌다. ⓒ 운민

 
응우옌 왕조의 왕궁을 지나 후에의 남북으로 가르는 흐엉강을 따라 서쪽으로 간다면 제법 높은 팔각형의 탑이 우리를 마주하고 있다. 이곳이 후에의 대표적인 사찰 티엔무 사원이다. 1601년에 건설된 이 사원은 '하늘의 신비한 여인'이라는 뜻인 티엔무(天姥)라 불렸으며 응우옌 왕조의 건국과 연관이 높은 왕실사원이다.

우리의 사찰과 달리 베트남의 사원은 보통 탑을 절 앞에 배치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이 사원의 탑 자체도 큰 볼거리지만 나에게는 절 한편에 전시된 낡은 하늘색 오스틴 자동차에 더 눈길이 갔다. 부패한 남베트남 정권에 항의했던 틱꽝득 스님이 사이공으로 향할 때 탑승했던 차라고 한다.

베트남에 전운이 감돌던 1963년 남베트남에서는 초대 대통령 응오 딘 지엠이 무자비한 독재를 휘둘리고 있었다. 그는 독립운동가 출신이고 호찌민 못지않게 명망이 있었지만 정권을 잡고 나서 많은 관료들을 자기의 친인척으로 채웠고, 농지개혁 등의 정책 실패로 갈수록 인기가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천주교를 옹호했던 대통령은 시위에 참여한 승려를 사살할 정도로 종교탄압이 극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틱꽝득 스님은 사이공으로 내려가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지르는 분신 공양을 감행했다. 그 사진과 영상이 베트남은 물론 전 세계로 퍼지면서 응오 딘 지엠 정권은 몰락하게 되었고,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명분도 사라졌다.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는 티엔무 사원을 나와 역사를 거슬러 강을 따라 가보기로 하자.

이 강가에는 7명의 응우옌 왕조의 황제가 저마다 개성 넘치는 능역을 건설했다. 그중 민망, 뜨득, 카이딘 황제의 릉이 답사객들 사이에서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유적으로 알려졌다. 가장 초입에는 뜨득 황제의 릉을 만나게 된다. 겸릉이라고 불린 이 황제의 릉은 숲과 호수가 어우러져 왕릉보단 또 하나의 궁전에 온 것 같은 기분을 자아낸다. 

응우옌 왕조의 4대 황제인 뜨득 황제는 제위기간이 36년으로 가장 길었다. 그러나 그의 제위기간 중 프랑스의 침략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는 속수무책으로 식민지로 전락해가는 베트남을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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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양식을 하고 있는 민망황제릉 응우옌왕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민망황제의 릉은 규칙적이고 일직선의 형태를 띠고 있다. ⓒ 운민


그는 제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왕릉을 조성하기 시작했고 무덤이 완성되고도 16년을 더 살았다. 황제는 완성된 무덤을 찾아 뱃놀이를 즐기거나 시를 쓰고, 왕비 들고 궁중연회를 펼치기도 했으며 왕실 극장까지 만들어 연회를 즐기기도 했다. 

뜨득 황제릉은 전면의 호수를 중심으로 하는 휴식공간과 사당, 그리고 봉분의 구역으로 구분된다. 봉분은 높이 2.5미터에 둘레 300미터의 크기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실제 무덤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한다. 도굴을 우려한 황제는 자신이 묻힌 곳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다. 공사에 참여한 200명의 인부는 완공 후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겉으론 화려해 보이는 뜨득 황제릉이지만 곳곳에서 망국의 쓸쓸함이 엿 보이는 듯하다. 

후에 와도 후회하지 않아요

그 다음으로 갈 곳은 왕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민망 황제릉이다. 중국 풍수지리 사상에 따른 전형적인 베트남 황제의 무덤으로 석상, 공덕비, 사당, 누각, 무덤이 일직선으로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건축물 곳곳에서 힘찬 기상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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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무관과 문관이 서있는 카이딘황제릉 카이딘황제릉은 서양식과 베트남 고유의 건축양식이 공존한다. 베트남의 문신상이 황제릉앞에 도열하고 있다. ⓒ 운민


그러나 건축물 곳곳에서 전쟁으로 인한 상흔의 흔적은 물론 바닥에는 잡초만 무성한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언젠가 베트남에서 문화재 보호에 대한 인식이 하루빨리 올라오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찾을 왕릉은 카이딘 황제릉이다. 다른 왕릉과 다르게 중국, 베트남, 유럽의 양식이 결합된 어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눈길을 끄는 기묘한 건축물은 후에를 찾는 여행객들이라면 반드시 찾아야 하는 그런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무덤의 주인 카이딘 황제는 제위기간 내내 프랑스의 꼭두각시였다. 쫓겨난 다른 황제와 달리 프랑스의 지침을 충실히 따른 덕분에 호화스러운 왕릉에 묻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기묘한 양식의 천정궁을 들어가면 형형색색의 도자기와 유리를 이용한 모자이크 공예로 꾸민 내부의 모습에 눈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바닥은 꽃으로 장식했고, 천장엔 9마리의 용이 구름을 휘감고 있다. 정면의 카이딘 황제의 동상 아래에 그의 관이 안치되어 있는데 카이딘 황제의 모습은 당당한 군주의 모습이라기보다 나약하고 힘없는 유약한 왕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황제의 능역을 찾고 셔터를 누르는 관광객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후에에 오면 분 보 후에 말고도 먹어야 할 독특한 음식이 가득하다. 사탕수수 줄기에 다진 돼지고기를 둥글게 뭉쳐 숯불에 구워 먹는 넴루이, 반쎄오보다 작고 두툼한 반코 아이, 흐엉강에 채취한 가막조개를 넣어 먹는 비빔밥 껌헨까지 이 고장만의 먹거리가 가득하다. 유적지의 이미지가 강해 한국사람들에게 애매한 도시로만 알려졌던 후에, 이 도시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알고 방문한다면 정말 풍성한 기억과 추억을 안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경기별곡 2편)가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절찬리 판매 중입니다. 경기도 각 도시의 여행, 문화, 역사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강연, 기고, 기타문의 ugz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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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저자. kbs 경인 <시사인사이드> 경인방송 <책과 사람들>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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