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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을 부동산 '재앙의 해'로 만들지 않으려면

[주장] 깡통전세, 역전세 속출... 전세가 '서민주거 안정'에 기여한다는 허상 버려야

등록 2022.10.27 17:10수정 2022.10.2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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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8개월만에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 6억 아래로 계속되는 금리 인상 충격에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이 6억원 이하로 떨어진 가운데 25일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세 매물 정보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전세제도와 원자력발전(아래 원전)은 닮은 구석이 적지 않다. 한국의 가계지출 대비 주거비 지출 비율은 17.6%로 OCED 평균(2019년 기준)인 22.2%에 비해 낮다. 많은 전문가들은 OECD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주거비 지출이 낮은 이유로 한국의 전세제도를 꼽는다. 전세는 매월 돈이 나가는 월세와 달리 일시에 목돈을 맡겨두고 임대료를 내지 않는다. 이러한 전세주택 거래가 임대차 계약의 40~50%를 차지하면서 한국의 주거비 지출 수준을 월세 주택이 보편적인 여타 선진국에 비해 대폭 낮추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서민들의 살림살이의 숨통을 틔워준 고마운 전세주택이다.

비용계산의 논란이 있지만 원전 역시 발전 단가가 낮고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여 국민들의 에너지 비용 지출을 상당히 줄여준다. 특히 탄소배출을 대폭 줄여야 하는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에 대한 주목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둘이 가진 단점을 떠올려보면 비슷한 구석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측정되지 않은 위험 비용이 크다는 점은 상당히 닮아 있다. 원료비도 저렴하고 탄소배출도 없는 원자력을 대다수가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원전 폐기물 처리에 대한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 후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에선 생명에 매우 유해한 방사능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현재는 이를 해결할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세제도 역시 대한민국의 주거비를 대폭 낮추어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상당한 기여를 했지만 측정되지 않는 위험비용이 존재하고, 그것이 현실화됐을 때 주로 서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측면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전세 위험 비용 ① : 상승기 주택가격 급등 불쏘시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면서 주택매매수요가 줄어들고 임차수요는 늘어나면서 전세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전세시장의 불안을 가져왔다. 전세주택은 대표적인 서민주거 유형이라는 인식 하에 2008년부터 공기업인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은행의 전세자금대출에 보증을 서주는 구조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세자금대출은 2008년 10조 원에서 2022년 200조 원을 넘었다는 추산이 나올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전세자금대출은 서민주거안정에 기여했을까? 목돈이 없는 세입자도 저리의 전세자금대출로 전세주택에 들어갈 수 있어 주거비 지출을 낮추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전세자금대출로 인해 주택시장으로 흘러들어간 유동성이 전세가격을 높이고,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한 임대인들의 갭투자가 집값을 자극해 서민들의 내집마련을 더욱 어렵게 했다는 점에서는 서민주거안정에 부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시장이 과열될 때는 정부는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돈을 줄여 시장을 안정시킨다. 문재인정부 시절 LTV, DTI 비율 축소와 같은 대출규제를 강화했지만 전세자금대출이라는 구멍으로 부동산시장으로 끊임없이 돈이 흘러들어가면서 정부의 대출규제정책을 무력화시키고 부동산시장의 과열을 진정시키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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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파트 매매가격지수, 전세자금대출, 주택담보대출 비교 그래프 자료 :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 이성영

 

서울아파트 매매가격지수와 전세자금대출 잔액, 주택담보대출 잔액 규모를 비교해보면 서울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2017년 이후 주택담보대출 잔액 규모는 완만하게 상승하지만 전세자금대출 잔액 규모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전세자금대출이라는 구멍으로 주택시장으로 흘러들어간 유동성이 문재인정부 시기 집값 급등의 마중물로 작용하며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집없는 사람들의 박탈감을 조성하였다는 점은 부동산 호황기에 발생하는 전세제도의 측정되지 않은 위험비용이라 할 수 있다.

전세 위험 비용 ② : 하락기 깡통전세, 전세사기

부동산 하락기에는 다른 방식으로 전세 위험비용이 발생한다. 최근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으로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면서 깡통전세, 역전세난, 전세사기와 같은 단어들이 뉴스에서 빈번하게 들린다. 전세자금대출, 전세보증보험 등 전세주택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코로나19 대처를 위한 초저금리 상황이 만나 전세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저층주거지의 다세대‧다가구주택이나 가격이 낮은 아파트에서는 전세가율(매매 대비 전세가격 비율) 90~100%인 사례들이 상당히 나타났다. 사실상 자기자본 없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만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무자본갭투기가 지난 몇 년간 급속도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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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분기 서울시 구별 연립?다세대주택 전세가율 자료 : 서울시 서울주거포털 전월세 정보몽땅 ⓒ 서울시

 
최근의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인해 지난 몇년간의 초저금리가 만들어낸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의 거품이 꺼지면서 무자본갭투기의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시세차익을 기대하면서 세입자의 전세보증금만으로 집을 산 건물주들은 전세가격이 떨어지면 계약 만료시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온전히 돌려줄 수가 없다. 무자본갭투기 주택은 집이 경매에서 낙찰되더라도 전세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기가 어렵다. 특히 부동산 침체기에는 매매가격과 경매 낙찰가율이 동반하락하기에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손실 발생빈도과 규모가 급격히 커진다. 다행히 전세보증보험을 든 세입자는 손해를 보지 않겠지만 전세보증보험 가입비율이 10%에 불과한 상황에서 깡통전세로 인한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계속해서 터져나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사회초년생들이나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이들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채기 위해 중개사와 결탁하고 달려드는 전세사기꾼들은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과 신혼부부의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을 떼인다는 것은 단순히 재정적 손해를 본다는 차원을 넘어 경력을 쌓고 자기계발에 한창 집중해야 할 청년들의 삶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신뢰감을 훼손하는 측정되지 않는 막대한 손실을 발생시킨다.

전세보증보험을 제공하는 공기업인 주택도시보증공사 역시 전세보증금 미반환으로 인한 손실이 급격히 높아져 정부의 추가 출자 없이는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역전세와 깡통전세로 인한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사기는 부동산 하락기에 빈번히 나타나는 전세제도의 측정되지 않는 위험 비용이다

전세와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시간 

최근의 임대차시장 상황을 보면 전세로 인한 주거비 절감이라는 효과도 차츰 감소해가고 있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금리인상으로 인해 전세자금대출 이자가 월세보다 높아지다보니 전세가 아닌 보증금과 월세를 결합한 반전세 물량이 늘어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세제도는 경제성장률이 높고 금리가 높은 개발도상국 경제에서 경제성장률과 금리가 낮아지는 선진국 경제로 바뀌면 차츰 줄어들게 된다. 경제성장률과 금리가 높은 시절에는 집값상승과 목돈 운용이 유리하기에 임대인들이 선호하지만 성장률과 금리가 낮은 선진국형 경제구조로 바뀔수록 전세보다 월세가 임대인의 수익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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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점유 형태별 비중 변화 자료 : 통계청 인구총조사 ⓒ 이성영

   

1995년부터 꾸준히 하락하던 전세점유율이 2015년부터 하락이 멈추었던 원인 중 하나는 집값상승 기대심리가 커지면서 전세보증금을 활용한 갭투자 수요가 높아지고 임차인 역시 전세자금대출과 전세보증보험 등 전세주택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강화되면서 월세보다 전세주택 거주가 주거비를 낮추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전세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유리한 제도인 것처럼 보이지만 부동산 호황기와 침체기에 측정되지 않은 위험 비용을 감안하면 과연 전세제도가 서민주거안정에 효과적인 제도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전세제도는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국의 독특한 제도이다. 전세제도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도움이 되는 제도라면 K-주거라며 선진국에서도 따라하려는 흐름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흐름은 없다. 선진국 어느 국가에서도 일시에 목돈을 맡기면서 집을 빌리는 제도가 없는 이유는 선진국 경제에 맞지 않은 제도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선진국 경제구조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전세 점유비율이 높은 것은 정부의 전세지원 정책이 강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시장의 전망대로 2023년 미국의 기준금리가 5% 수준까지 올라간다면 2023년의 한국 부동산시장은 가히 재앙의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21년이 전세가격 정점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2023년은 역전세, 깡통전세로 전세세입자들의 자산 손실과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손실 규모는 우리의 상상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전세가 서민주거안정에 기여한다는 허상을 버리고 전세 지원 정책을 차츰 축소하고, 반전세, 월세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주택 점유 구조를 선진국형으로 바꿔가야 한다. 전세세입자를 보호하고 주거안정을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낮추고 매매가격을 상회하는 전세보증금까지 전세보증보험으로 보호해주겠다는 것은 전세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헤어질 때가 되었음에도 놓지 못하고 질척대는 것과 다름없다.

시민들도 당장의 주거비를 절감시켜준다는 이유로 주택가격에 근접한 목돈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인식하고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집이 경매에 나와도 손해보지 않을 수준의 보증금과 월세를 지불하는 것이 자산 손실과 주거불안을 막는 길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질척대지 않는 방식으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도록 전세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전세 #깡통전세 #전세보증보험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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