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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이 정말... 이태원 참사에서 5.18을 떠올리다

[말하기 거시기한 이슈] 무책임한 정보가 만드는 집단트라우마

등록 2022.11.09 11:10수정 2022.11.0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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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성된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 유성호

 
이태원 참사를 보며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습니다. 다시 마주한 수많은 젊은 생명의 죽음 앞에서 한국 사회는 갈 곳을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표류하는 대한민국호 안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사건의 직접적인 '원흉'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혹자들은 '마녀'를 찾아 나서고, 무분별한 정보의 홍수에 배가 잠겨버릴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많은 유튜버들이 이태원 참사 범인 찾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각시탈을 쓴 누군가가 고의로 사고를 냈다는 의혹 제기가 대표적입니다.

참사 당일, 사고 현장은 수많은 인파가 붐비는 곳이어서 사진과 영상 기록이 다수 존재합니다. 무차별적인 의혹 제기 과정에서 유튜버들은 단편적 기록의 조각에 자의적 해석을 덧붙입니다. 처음 들었을 땐 일견 그럴듯하지만 검증이나 교차확인 없는 정보가 확대 재생산될 우려가 큽니다.

의혹 제기 대상으로 지목된 시민이 "공교롭게도 특정 지역 말투를 쓴다"는 황당한 근거도 제시됩니다. 아직도 '지역주의' '지역혐오'라는 망령이 우리 주변에서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번 사건과 특정 지역은 어떤 상관관계도 없습니다. 실제 경찰은 "혐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헤어스타일과 두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특정인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사진이 흐려 명확하게 식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오는 문제 제기입니다. 이러한 루머들은 급기야 포털사이트 뉴스 검색에도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펜엔드마이크>의 "이태원 참사 원인에 대한 '충격적 제보' 잇따라, 경찰 수사에서 진실 밝혀야", <파이낸스투데이>의 "이태원참사, '테러 가능성' 유튜버의 분석 영상...경찰은 봤을까?"는 유튜버들의 의혹 제기를 검증 없이 그대로 기사화하면서 '기획 테러'라는 표현을 쓰거나 근거 없이 특정 집단을 사고와 연관시키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무책임한 정보,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

이러한 혼란 속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유언비어들을 떠올립니다.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해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북한군 개입설'의 근거로 지만원씨가 제시한 근거가 위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선명도가 떨어져 구별이 어려운 사진을 가져다 놓고 마치 전문적인 분석을 통해 유사성을 밝힌 것처럼 꾸며낸 그의 주장은 명백한 허위 사실과 유언비어로 밝혀졌지만, 아직도 살아남아서 댓글 등을 통해 유포됩니다. 또 1980년대 5.18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낙인찍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왜곡이 이뤄졌다는 사실도 진상조사 과정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참사를 접한 시민들은 트라우마를 겪게 됩니다. '죄책감'은 생존자와 목격자들이 공유하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왜 살아남았는지 묻고 물으며 자책합니다.

관련 연구들은 5.18의 경우 사실의 부인과 부족한 진상규명, 계속되는 왜곡 상황 등이 생존자와 목격자들의 도덕적 갈등과 정체성 훼손, 집단 트라우마 패턴을 가져왔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들은 이미 쓰라린 상처가 나을 새도 없이 더 깊고 치유하기 어려운 생채기들을 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시민 72만여 명. 직간접적으로 5.18을 마주한 목격자들, 전국에 학생운동 참여자들에다 엄마 아빠, 이모 삼촌에게 참상을 전해 듣는 다음 세대까지 모두가 5.18의 '목격자'입니다.

그래서 광주엔 우리나라 최초의 트라우마 치유기관인 광주트라우마센터가 2012년 문을 열고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은 오월어머니회, 오월어머니집으로 모여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계십니다.

광주시민들은 5월이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그날을 기념합니다. 민주주의를 염원하고, 희생자를 기리고, 진실을 공유합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광주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서서히 치유해왔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어른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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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참사' 국가 애도기간이 끝난 7일 오후 광주시청 합동분향소가 운영 종료되고 추모공간이 새로 마련돼 있다. ⓒ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의 직간접적 목격자는 몇 명일까요? 그리고 실제로 이태원 참사의 책임자는 누구일까요? 토끼머리띠부터 시작해서 핼로윈, 놀러 간 젊은이, 마약, 각시탈까지 우리는 트라우마를 이겨낼 탈출구로 손쉽게 마녀사냥을 선택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진실을 찾을 때까지 참사는 현재 진행형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광주의 오월은 진상규명과 건강한 공론장 회복, 사회적 연대로 트라우마를 이겨냈다고 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를 너무나 힘겹게 읽었습니다. 그는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내 자신이 징그러웠다"고 표현합니다. 실제로 그 사건을 직면한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생존자인 저는, 내년에도 이태원에 갈 겁니다"라는 글에서 그는 묻습니다.

"사회의 역할이 뭔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지, 우리는 왜 혐오사회로 가는지, 그렇게 만드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인지, 본질을 파악하고 맥락을 짚어주는 어른이어야 되는 거 아닐까요."

우리 사회는 이제 어른이어야 합니다.
#말하기거시기한이슈 #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 #이태원참사 #5.18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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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지역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해왔습니다. 현재는 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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