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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발언과 장제원의 성토, 우연일까

[주장] 국민들은 목숨을 잃었고, 그들은 자신의 직에 목숨을 건다

등록 2022.11.09 18:31수정 2022.11.0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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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두고 간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있다. ⓒ 유성호

 
꽃 같은 젊은 목숨 156명이 희생된 지 열흘이 지났고, 우리의 애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특히나 용산구민인 필자에게 이 참사는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은 또 냉엄하게 흘러 이제는 책임을 가리고 재발 방지를 다짐해야 할 시간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오전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의 공개발언에서 희생자와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취임 후 6개월간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이슈들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분노한 국민에게 사과를 한 적 없는 그의 스타일을 고려한다면, 이번 참사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늦게라도 여러 차례 사과의 뜻을 전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본다.  

모든 책임은 '일선 경찰'에 있다?

윤 대통령이 사과와 함께 강조한 것은 '책임'이었다. 그는 거의 전적으로 경찰의 책임에 대해 성토했고, 더욱 구체적으로는 현장의 일선 경찰들을 향했다. 그의 질타는 이랬다.

"안전사고를 예방할 책임이 어디에 있나? 경찰에 있다" "사람이 많이 몰릴 것 같다는 정보를 일선 용산(경찰)서가 모른다는 것은 상식 밖이라 생각한다" "정보 역량도 뛰어난데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나?"

물론, 경찰의 잘못이 있다.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공개된 이 발언들은 마치 이 모든 책임을 일선 경찰에게 돌리라는, 혹은 그들을 최우선 수사하라는 가이드라인으로 들린다.

필자의 오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오해 같은 염려는 같은 날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의 분위기에서 재차 확인됐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매우 구체적인 자료들을 제시하며 이임제 전 용산경찰서장을 당장 체포하고 구속수사 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물론 대통령의 발언과 장제원 의원의 발언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으나, 드러나는 현상은 일선 경찰들에게 책임을 몰고 간다는 것이다.  


상식적 비전문가의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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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지난달 31일 이후 엿새 연속으로 조문했다. 국가애도기간 마지막 날인 이날 조문에는 한덕수 국무총리,박진 외교부 장관, 조규홍 복지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대기 비서실장,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김은혜 홍보수석, 안보실2차장, 김용현 경호처장, 김일범 의전비서관, 천효정 부대변인이 함께 조문했다. ⓒ 유성호

 
문득, 지난 11월 1일 한덕수 총리의 외신 브리핑이 떠오른다. 이태원 참사 당시 누군가 밀었다는 의혹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한 총리는 이렇게 답했다. 

"큰 길 두 개를 연결하는 조그만 골목길이 세 가지가 있었는데 왜 그 중간에서는 참사가 일어나고, 양쪽 유사한 좁은 골목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는지 '상식적 비전문가'가 가지는 궁금증이 있다."

필자는 그의 '상식적 비전문가'라는 표현이 참 적절한 말이었다고 공감한다.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는 측에서는 얼마든지 고려해야 할 타당한 궁금증이다. 그래서 '상식적 비전문가'인 필자도 묻지 않을 수 없다.
 
156명의 희생자 가족들, 200여 명에 달하는 부상자들, 그곳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 그리고 그 참혹한 현장의 충격 속에 국가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국민들이 이 참사의 책임이 현장 경찰의 대응 부실로 결론 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선 경찰 몇 명의 직을 박탈하고, 죄값을 묻는 것으로 우리는 국가의 재난안전관리 시스템의 성공적 재건을 기약할 수 있을까? 

전 용산경찰서장의 인신을 구속하고, 보란듯이 미디어 앞에 내세우며, 모든 돌팔매를 맞게 하면 과연 국민들이 원하는 국가 책임의 정의가 실현될 수 있을까? 

상식적 비전문가인 필자는 정말 궁금하다.

책임의 시작과 끝

국가의 책임임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의 수준을 보여야 한다. 전 용산경찰서장은 그 시작일 뿐, 그 끝으로 가는 길에 책임자는 여럿이다. 하지만 모두가 말뿐인 책임, 허울 좋은 '마음의 참담함'을 호소할 뿐 누구도 제 스스로 자신의 직을 내려놓는 책임을 보이지 않는다. 국민은 목숨을 잃었건만, 그들은 자신의 직을 목숨 걸고 지키려는 모양새다.

우선,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장 사퇴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 7일 국회 행안위 현안질의에서 "언제 참사를 처음 알았느냐"는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주민으로부터 (오후) 10시 51분에 문자를 받았다"고 답했다. 

이후 어떤 책임을 지겠냐는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엔 "큰 희생이 난 것에 대한 제 마음의 책임이며 죄인의 심정"이라고 답했다. 마음의 책임? 그런 말장난 같은 이야기로 순간을 모면하려는 박희영 구청장의 태도를 보니 이번 참사는 예견된 인재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그녀는 지자체 수장의 자격이 없다.

전 용산경찰서장과 함께 서울경찰청장, 윤희근 경찰청장까지 경찰 수뇌부 전체가 경질돼야 한다. 사전 대응의 실패, 사후 보고의 실패, 타 기관과의 유기적 연계 대응 실패의 책임은 말단 서장이 아닌 해당 보고 라인 전체가 함께 지는 것이 마땅하니까.

책임의 끝자락엔 반드시 이상민 행안부장관이 있어야 한다. 그의 참사 직후 실언 그리고 뒤늦은 해명은 조직관리에 대한 무능함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판단의 무능까지 여실히 드러냈다. 그는 10월 31일 이태원 참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경찰·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개인적인 판단이었다"고 해명했다. 재난안전의 컨트롤 타워인 행안부장관이 참사 하루가 지난 기자회견에서 개인의 생각을 마치 객관적인 근거있는 정보인양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사 열흘이 지나도록 당사자와 대통령실 모두 경질이나 사퇴의 뜻이 없음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온당치 않은 처사다. 지금이라도 엄중한 책임을 지시라.

일반 기업에게 요구하는 수준만큼이라도 책임을 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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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두고 간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있다. ⓒ 유성호

 
올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경영자에 대한 처벌의 수위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법의 취지는 자연인이 아닌 법인에 대한 처벌만으로는 현장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기초로 경영자가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는 강력한 처벌을 시사함으로써 조직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경영자가 현장의 안전에 세밀한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업의 안전에 대해서도 이렇게 강력한 책임을 묻는 선진국가인 대한민국의 정부가 국가적 참사의 책임을 일선 경찰들에 대한 처벌로만 무마하려 한다면 이번과 같은 참사의 재발을 막기 어렵다고 본다. 참고로 중대재해처벌법엔 '중대시민재해'라는 개념이 명시돼 있다. 다만, 참사 현장을 '공중이용시설로 볼 수 없다' '행사 주최가 없어서 책임 소재를 묻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동시에 "중대시민재해에 대한 법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구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

최상위권자에게 책임을 물어 본을 보이고 기강을 확립해야만 한다. 156명의 국민들이 길에서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당신들은 언제까지 그 직을 목숨처럼 지키려 하는가.
#책임 #이태원참사 #재발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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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분쟁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 변호사입니다. 반려견 두 마리, 다정한 남편과 함께 매일 초심으로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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