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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에게 선물로 받은 게 이렇게나 많습니다

성격이 달라도 우리는 가족, 반려견에게 배운 것

등록 2022.11.18 10:44수정 2022.11.1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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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반강제로 개를 키우게 된 우울증 환자가 개로 인해 웃고 울며 개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 [편집자말]
개들 역시 사람만큼이나 성격이 다르다. 품종에 따라 경향성은 보이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동양인은 수학을 잘해, 흑인은 운동을 잘하지, 같은 일반화는 오류가 많다. 개 역시 그렇다. 개들 성격은 말 그대로 '개 바이(by) 개'다. '종특'은 그저 옵션일 뿐이다.

복주와 해탈, 이렇게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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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복주 우해탈. ⓒ 이선민


복주(사진 왼쪽)는 내향적인 친구다. 낯을 가리고 친구를 많이 사귀지 않는다. 가족 중심적 관계를 선호한다.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 하는 걸 싫어한다. 상대가 아무리 다정하게 눈 맞추며 손을 내밀어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른 데로 가 버린다. 이때마다 허공에 남겨진 손의 주인과 나는 동시에 머쓱해진다.


반면에 복주는 가족에게 관대하다. 조카는 복주를 종일 끌어안고 쓰다듬는데도  싫다는 내색 한 번 하지 않는다. 백 번을 불러도 백 번 다 간다. 해탈이라는 털동생도 잘 챙긴다. 어쩌다 집에서 한 번씩 내가 해탈이를 혼내면 복주가 나서서 말린다. 내 손에 자기 머리를 들이밀며 만져 달라고 애교를 피우며 중재를 요청한다. 영리하고 헌신적이며 인내심이 강한 편이다.

해탈이(사진 오른쪽)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이다. 사람은 사람대로 개는 개대로 다 좋아한다. 산책하다 말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바짓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밀어 넣고 인사한다. 특히 잘 생기고 예쁜 사람에게 관심받는 걸 즐긴다. 덕분에 이 친구는 서울 경기 서남부 지역 반려견 커뮤니티에서 나름 유명하다.

생긴 것도 특이하고 하는 짓도 유별난데 이름까지 독특하니 사람들이 더러 알아본다. 하지만 집에서는 딴판이다. 용건 없이 부르면 절대로 오지 않고, 잘 때 만지면 손을 확 물어버리고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간다. 먹을 게 앞에 있으면 예민해지고, 빗질을 싫어한다. 엄살이 심하고 성격이 급하다.

아마 해탈이는 지금보다 더 맛있는 사료와 많은 산책 기회가 약속된다면 가족 구성원이 바뀌어도 잘 살 거다. 하지만 복주는 얘기가 다르다. 복주는 본인이 생각하는 가족(나, 작은오빠, 조카2호) 없이는 살 수 없다. 아마 아무리 좋은 사료와 공간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프리즌 브레이크>(감옥을 탈출하는 드라마)를 찍을 아이다.

둘의 성격은 확연하게 다르다. 개들 입장에서 어느 편이 삶의 만족도가 더 높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꼬리 흔드는 횟수를 기준으로 보면 확실히 해탈이 쪽이 행복한 감정을 자주 느끼는 편이다.


알기 쉽게 이들의 행동을 낚시로 비유해본다. 복주는 세상을 향해 드리우는 낚싯대가 3개라 자주 기쁘지 않지만 해탈이는 직접 물가로 나가 그물을 던지고 살아 수시로 기뻐한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내 생각이다. 두 녀석 모두 말을 하지 않으므로(한다고 해도 못 알아 듣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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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믹스 복주와 허스키 해탈 ⓒ 이선민


그보다도 놀라웠던 점은 이들의 철저한 개별성이었다. 일반적인 개의 성격이라고 여겨지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러고 보면 일반화는 얼마나 폭력적인 관찰자의 시선인가.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여자는 이래, 남자는 이렇지, 하는 식의 구분은 구시대적인 사고다. 우리는 모두 철저하게 독립적이며 개별적이니까. 개들 역시 철저하게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고, 그들과 성격이 잘 맞아야 함께 오래 살 수 있다.

솔직히 내게 해탈이는 버겁다. 모르는 사람들하고 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밖에 나가면 해탈이가 오만 사람한테 가서 예쁨을 받으니 자꾸 사람들과 이런 저런 말을 해야 한다. '얘가 사람을 좋아해요', '죄송해요', '착해요. 물지는 않아요' 등의 말들.

또 심심한 걸 참지 못하는 친구라 따로 상대해줘야 하는 시간이 복주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안 그러면 집 안에서 조용히 사고를 친다. 아마 나는 두 마리가 전부 천방지축 해탈이 같았어도 두 마리가 전부 예민의 여왕 복주 같았어도 함께 못 키웠을 것 같다. 나를 포함해 셋이 모두 다르기에 서로 어울려 사는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감사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혹여라도 반려견 입양을 고려하신다면 외모보다 중요한 건 개의 건강 상태와 성격이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함께 십 수년을 살아야 하는 가족이다. 개나 사람이나 예쁜 건 얼마 못 가고 성격 좋은 게 최고다, 이런 의미에서 강조하는 거다.

나는 그래서 번식장에서 교배시켜 나오는 개들 사지 말라고 한다. 개도 생명이라 자연 상태에서 스트레스 없이 태어난 개들이 건강하고 성격도 좋다. 물론 우리 개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개를 키우면서 보이게 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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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좋은 해탈과 복주 ⓒ 이선민


사람들이 간혹 우리 개들이 행복해 보인다며 훈련을 어떻게 시키신 거냐 묻는데, 그때마다 나는 '내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개들이 행복할까 고민했어요' 한다. 가끔 남에게 개는 죽지 않을 정도로 패야 말을 듣는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개와 함께 산다는 건 내 말을 받드는 다른 생명을 집 안에 들이는 게 아니다. 우리집 개들은 내 말을 안 듣는다. 다들 자기 멋대로다.

하지만 여태 나는 개들에게 폭력을 써 본 적 없다. 경험에 근거해 봐도 폭력은 생각보다 힘이 약하다. 나는 우리 개들에게 공포를 심어서 얌전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나는 우리 개들이 세상과 어울려 사는 데 있어 중요한 규칙 몇 가지만 인지했으면 좋겠다.

현자들이 말하길, 인생을 바꾸기 힘들거든 성격을 바꾸고 성격을 바꾸는 게 힘들거든 환경을 바꾸라고 한다. 맞다. 나 역시 개와 살면서 환경에 변화를 주니 생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일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가서 걷다 보니 피곤해서 저녁에 먹는 정신과 약이 많이 줄어들었다. 또 개들하고 같이 산으로 들로 싸돌아다니다 보니 계절을 전보다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예컨대 꽃이 피고 잎이 지는 순서, 해와 바람과 비가 하는 일들. 예전엔 잘 몰랐다. 관심도 없었다.

시멘트 블록 안에서 자고 일어나 아스팔트를 걸어 콘크리트로 된 건물에 들어가 공부하거나 일하고 들어오는 삶에 익숙했다. 계절과 풍경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 여겼다. 이런 상황에서 생태적 감각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개를 통해 확실히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요즘은 비가 오면 다음날 숲의 냄새가 바뀐다는 것도 안다. 요즘 내 상태는 내가 개인지 개가 나인지 헷갈릴 정도다.

요즘 개를 돌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내게 한 친구는 "개는 어디까지나 개"라고 한다. 물론 동의한다. 사람은 사람이고 개는 개다.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우리 집 개와 다른 집 아이가 동시에 물에 빠지면 난 다른 집 아이를 먼저 구할 거다. 인간이 개보다 우월하다 여겨서 하는 게 아니다. 내가 개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태어났기에 하는 행동일 뿐이다.

무엇보다 공동체에 존재하는 책임과 의무를 따라할 것이다. 어른이란 내 개를 잃어버리는 슬픔과 타인이 아이를 잃어버리는 아픔을 양팔 저울에 달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할 것이다. 내 개도 이만큼 예쁜데 자기 속으로 낳아 기르는 자식은 얼마나 예쁠까를 생각해야 하니 말이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개를 키우며 겪지 않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남의 마음이란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가닿지 못한다고 믿는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는 그래서 내내 타인의 마음에 다가가는 공부를 하고 있다. 요즘 나는 지붕 한 쪽을 내어준 대가로 이 친구들에게 되려 참 많은 것을 선물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덕분에 오늘도 난 개들에게 감사하다.
#유기견 #우울증환자 #반려견 #사지말고입양하세요 #진도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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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라는 게시글 하나로 글쓰기 인생을 살고 있는 [산만언니] 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마음이 기웁니다. 재난재해 생존자에게 애정이 깊습니다. 특히 세월호에 깊은 연대의식을 느낍니다. 반려견 두 마리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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