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았던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평야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한달 간의 조선 여행 소감을 토로하다

등록 2022.11.17 08:33수정 2022.11.1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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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지난 번 이야기에서 1884년 11월 17일 광주 가는 길에 보았던 남평 인상기를 빼놓은 것이 못내 아쉽군요. 그래서 남평에 대한 기억의 한 자락을 회상해 본 다음 이어가겠습니다.

그날 우리가 나주에서 나룻배를 타고 남평골로 들어간 것은 정오가 좀 넘은 시간이었지요. 들판을 적시며 구불구불 흐르는 강줄기  주위로 펼쳐져 있는 평야가 실로 장관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여행기에 이렇게 적었지요. 
 
"남평 일대는 굉장한magnificent 평야이다. 마루 바닥처럼 평평하고 잘 경작되어 있다. 전 지역이 끊긴 데 하나 없는 논이다. 정말 몹시 보기 좋다. 들판에는 수로가 이리저리 나있다.  평야 오른쪽 언덕 마을에는 100가호 정도의 인가가 자리잡고 있는데, 노거수great old tree 한 그루가 멋지게  서 있다. 평야를 가느다란 물줄기가 가로지르며 흐른다. 이곳이 조선에서 가장 큰 평야는 아니지만 여태 내가 보았던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평야이다.  논 밖으로는  내륙 작물이 그득하여 하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 할 만하다. 남평 읍내로 가는 모든 길이 이처럼 멋진 정원같은 평야이다. 토양은 황토 색깔인데 비옥하다. 무가 많은데 머리는 작고 뿌리는 크다." 

 
마침 남평에 장이 섰습니다. 장터는 읍내의 바로 북서쪽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족히 6천명은 되었지요. 장에는 없는 게 없더군요. 큰 돗자리가 가장 눈에 띄었고요. 나는 장을 구경하면서 살금살금 빠져 나갔는데 용케 큰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장터를 빠져 나오니 길위에 장을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더군요. 장터 주위에 매우 큰 고구마 밭이 보였습니다. 내 생각에는 멜론을 재배하면 잘 될 것 같았습니다. 길가에 앉아 쉬는데 소금을 지고 오가는 사람을 많이 보이더군요. 소금은 모두 조선의 바다에서 나오는데 이 고장의 소금은 대부분 영광 법성(Yong Kang, Papsong)에서 나옵니다. 

남평 읍내는 우리가 지났던 비옥한 평야의 동쪽 끝에 있었는데 나주로부터는 동쪽입니다. 상당히 큰 곳으로 매우 중요한 마을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장터 주위에 민가가 족히350호에 이르렀으니까요. 

우리가 전라도 땅을 지나 경상도로 들어간 후 김해에 도착한 것은 11월 29일이었습니다. 노상에서 일본인을 보았습니다. 서울을 떠난 지 29일만에 처음 보는 외국인이었지요. 길가에는 군데군데 국화가 피어 있었습니다. 그날 이른 오후에 부산 초량의 일본인 여관에 들었습니다. 동행안 조선인들에게는 돈을 좀 주고 원하는 곳에서 숙식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나는 부산에서 2박 3일간 머물렀습니다. 서울을 떠난지 한 달 만에 고국의 부모님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는 그동안의 조선 여행에 대한 감상을 갈무리하는 내용이었지요. 이 편지를 보면 당시 나의 소감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겝니다. 

"1884.12.1 부산에서 

부모님께, 이 편지를 받으시면 저에 대한 걱정을 않으실 겁니다. 제가 달포전에 서울에서 보낸 편지에 조선 내륙 여행길에 오르고 나면 한 달 후에나 소식을 전할 거라고 말씀드렸었잖아요. 

저는 지금 너무 건강합니다. 지난 긴 여행 중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저는 지난 29일 동안 줄곧 조선 음식을 먹었고 작은 가마에 책상 다리를 한 채 이동했으며 조선 사람 외에는 어떤 인간도 보지 못했습니다. 외국인으로서는 전인미답의 여정이었지요. 당연히 저는 현지인들에게 엄청난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에서 여태 외국인들이 접할 수 없었던 조선의 많은 특징들을 견문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보낸 편지와 저의 첫 조선 여행기를 통해 짐작하셨겠지만, 이곳 조선은 거대한 건축믈이나 호화스럽고 거창한 문물로 본다면 경이로운 나라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다른 진보적인 나라들에서는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된  고대 문명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흥미로운 곳입니다. 

조선인들은 옛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문물도 전통 그대로입니다. 이를테면  규모가 큰 불교 사찰들, 바위에 새긴 신기한 부조가 고대 시대 사람들이 숭배했던 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모든 것들을 견문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세상의 다른 누구보다도 이 땅의 지리, 언어, 관습 등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지요.

하지만 매우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타고 가는 가마가 계속 요동을 하기 때문에 몸이 고통스러웠지요. 가마는 가마꾼 두 명이 지고 가는데 다른 두 명이 가끔 거들어 줍니다. 이게 이 나라에서 가장 호사스런 여행 방식이랍니다. 하루에 32마일(약50km)정도 이동하지요. 서울에서 이런 속도로 열흘 동안 갔을 때에 저는 사람들에게 만일 기차가 있다면 이건 반나절(a half day) 거리라고 말해 주었지요.        

저의 몸에는 이와 벼룩이 드글거렸고, 목욕을 하지 못했으며, 지독히 좁고 더러운 방에서 자야했으며, 마루바닥에 책상다리로 앉았고 또 거기서 잤습니다. 가는 곳마다 빌어먹을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저를 애워쌉니다. 그들은 마치 무료 박물관에 전시된 세 발 달린 닭을 보는 것처럼 저를 뚫어져라 응시합니다.

여러 차례 위험할 뻔한 일도 있었고 여러 곳의 방문을 포기한 적도 있었지만 아무튼 공격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요. 저는 조선의 어떤 외국인보다 더 많이 여행하였지만 그 동안에 사람들로부터 어떤 공격을 받거나 돌을 맞는 일이 없도록 처신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답니다.  
.
내일 아침에 저는 이곳을 떠납니다. 육로로 서울로 귀환하는 여정이지요. 아마 보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시간에 쫒기며 우선 이렇게 서둘러 적습니다. 날씨가 매우 춥습니다. 손이 곱아서 글씨를 잘 쓰지 지경이랍니다. 서울 가서 다시 자세히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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