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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이 아들을 두 번 죽였다"는 어머니의 말

2018년 제28보병사단 고 김여상 일병과 어머니 박OO씨 이야기

등록 2022.11.23 10:59수정 2022.11.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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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번 17-7305****.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고 김여상 일병의 집으로 가는 길에 푸른 바다가 보였다. 김 일병의 어머니 박OO씨는 파도와 바람 소리에 "이 바닷가에서 아들과 고기를 구워 먹던 시간이 생각난다"라고 읊조렸다. 합기도 3단. 184cm의 키에 100kg에 달했던 김 일병은 어머니에게 하나의 우주이자 세계이며, 전부였다.

김 일병은 2017년에 오스트리아 리처드 바그너 음대를 나왔다 '첼로'라는 악기 전공을 살려, 2018년 제28보병사단 본부근무대 군악대에 배치됐다. 하지만 같은 해 4월 28일 휴가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어머니 박OO씨는 아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현재 국방부와 싸우고 있다. 아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사전에 군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 근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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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여상 일병은 2018년 제28보병사단 본부근무대 군악대에 군악병으로 생활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정현환


이성문제로 극단적 선택?

고 김여상 일병은 군 복무 도중, 결혼을 고려하며 약 6년을 교제한 여자 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다. 제17사단 헌병대(현 군사경찰) 수사결과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됐다(고인은 제28사단 소속이었으나, 사망한 장소가 제17사단 관할이라 여기서 담당 - 기자 주). 고인은 연인과 결별 통보 후 결식이 잦아졌고, 말수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상증세가 같이 군 복무한 생활관 동료들로부터 여러 차례 확인됐다.

군 수사당국의 수사결과 고인은 2018년 4월 23일에 또래 상담병 상병 김OO에게 "여자 친구와 싸워서 헤어질 거 같다" "마음을 돌리고 싶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다음날인 4월 24일에 분대장 병장 양OO에게 "여자 친구와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휴가를 나가고 싶다"고 건의했다. 연이어 고인은 25일 군악대장 장OO과 면담했고, 특별휴가 3일을 받았다.

고 김여상 일병은 사망하기 전 실제로 여자 친구와 갈등이 있었다. 제17사단 헌병대 수사보고서뿐만 아니라 고인의 어머니 박OO씨도 아들의 죽음과 관련 여자 친구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을까. 김 일병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 이성 문제만 작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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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보병사단 헌병대(현 군사경찰)는 수사 보고서 일부 ⓒ 정현환

 
부대 규정 위반 및 관리 소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군 복무 중 사망자와 상이를 입은 장병이 국가로부터 합당한 예우와 보상 및 치료를 심사한다. 제17사단 헌병대 수사는 고 김여상 일병이 '이성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강조했지만, 고인이 사망한 뒤 구성된 위원회는 두 가지 이유로 고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음을 명시했다. 첫 번째 이유는 '부대관리 소홀'이다.

먼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 결정서는 "육군 규정에 적시된, 신병 전입시 2주가 경과된 이후 경계근무에 투입하도록 돼 있음에도 고 김여상 일병이 전입된 지 2주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무에 투입된 점"을 지적하며, 고인의 사망에 군 규정 위반이 있었음을 꼬집었다.


이에 해당 부대는 "생활면에서 문제가 없고 책임감이 강해 근무 편성한 것이다"라고 했지만, 군 수사결과 규정을 어겨가며 일찍 근무에 투입된 고인이 근무 태도를 이유로 두 차례 심한 꾸짖음을 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고인은 전입 신병이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비전설계교육, 이등병 캠프, 자살 예방 교육, 동기와의 대화 등의 교육에 전혀 참여하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또한, 같은 결정서는 고인이 사망하게 된 두 번째 이유로 규정위반을 꼽았다. 과거 육군 의무규정 941 제41조는 "출타기간 중 가정과 연계된 신상관리를 실시한다."라고 명시했다. 따라서 당시 고인의 부대 관계자들은 이 의무규정에 따라 가족에게 고인의 상태를 알리고 특별휴가를 보냈어야 했다. 하지만 군악대장 대위 장 ◇◇은 "고인이 지극히 평범하고 문제가 없어 가족에게 연계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답하며 특별휴가에 문제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정말 그랬을까. 아니다. 고인은 자대 배치받기 전 신병교육대에서 '배려' 등급으로 지정돼 특별 관리를 받았다. 군악대 선발대상자를 관리하는 제28사단 인사참모처에서 "신체특이사항 인성검사부적격자(G1)"이라고 고인을 분리했었다. 따라서 "문제가 없어 가족에게 연계할 이유가 없었다"는 군악대장 장OO의 진술은 오히려 병력을 관리해야 하는 지휘관이 제대로 임무를 하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2022년 7월 25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도 고 김여상 일병이 "군 복무 중 군악대 내 악기 변동 및 특급전사 훈련 참여 등에 따른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 등 업무과중과 전입 신병 및 배려 등급 병사에 대한 부대적 관리 소홀 등이 주된 원인이 돼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명시, 고인의 사망이 단순 이성문제 때문이 머무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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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6일, 제17보병사단 헌병대 변사 피의사건 조사결과 보고 중 일부 ⓒ 정현환


잦은 보직 변경과 과도한 업무 지시

두 위원회가 언급한 잦은 보직 변경과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는 도대체 무엇일까.

고 김여상 일병은 2018년 1월 22일 군악대 '트럼펫' 연주자로 보직을 받았다. 2월 6일엔 '튜바'로 보직이 변경됐다. 3월엔 군악대장 대위 장OO으로부터 지역민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행사에 <홀로아리랑>이라는 곡을 '첼로'로 연주할 것을 제의받는다.

그랬다. 사람은 한 사람인데, 군은 세 가지 보직을 부여했다. 그런데 정작 해당 부대와 군악대장은 군악병인 김 일병이 연주해야 될 '첼로'라는 악기를 전혀 주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고인은 신병 위로 외박에서 복귀할 때, 자신 소유의 첼로를 직접 부대로 가져와야만 했다. 하지만 촘촘히 짜인 촉박한 행사 일정으로 제대로 연습하지 못했다. 군 수사 결과, 김 일병은 익숙지 않은 악기를 다양한 행사에서 계속 연주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고 김여상 일병이 제대로 된 휴식도 보장받지 못한 채, 동시에 다양한 근무에 투입됐다. 고인은 제대로 쉬지 못해 육체적 부담과 심적 고통을 주변에 호소했지만, 당시 부대 지휘관 및 관계자들을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대신 군이 해준 조치는 일시적인 위로성 특별휴가였다.

이 상황을 두고 가천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조아무개 교수는 고 김여상 일병 의학 자문 의견서에 "야간근무" "악기변동", "군복무로 인한 스트레스 등 여러 복합적 측면이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말하며, 고 김여상 일병의 극단적인 선택이 단순히 이성문제 때문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작동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 결과 어머니 박OO씨는 아들이 업무 과다와 군 복무의 극심한 스트레스, 이성문제 등의 복합적인 상황이었음에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따는 소식을 군으로부터 듣게 됐다. 그래서 지금 박씨는 "아들의 죽음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라고 강조하며, 군 규정을 위반한 당시 부대와 군 관계자들의 책임을 오늘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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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조○○ 교수 의학 자문 의견서 일부 ⓒ 정현환

 
주먹구구와 솜방망이

고 김여상 일병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까지 군으로부터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해당 부대 지휘관 및 관리자들은 규정을 어겼다. 흔히들 얘기한다. '군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군이 규정을 위반했다? 그랬다면 그동안 군은 규정을 어긴 자들을 어떻게 조치했을까.

2018년 10월 15일에 작성된 본무근무대 사고대책 위원회 심의의결서는 "본부근무대장 '면제', 군악대장 '면제'로 최종 심의의결 하였음"이라고 적혀 있다. 국방부 소속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직접 당시 고인의 부대 관계자들이 규정을 어겼다는 점을 밝혔음에도, 그동안 군은 정작 어느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

두 차례 정보공개청구로 고인의 부대 지휘관들이 왜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는지를 군에 문의했다. 28사단 인사참모처는 "사건 조사를 하였던 17사단 법무부에서 본부근무대장이나 군악대장의 어떠한 비행사실이나 징계혐의를 통보받지 않았기 때문에 별도의 징계위원회를 열지 않았다"라고 답변했다. 규정을 어긴 건 맞지만 해당 사실을 고인의 부대인 28사단에 통보하지 않아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군 법무관 15기 출신인 김정민 변호사는 "군 징벌 체계에서 면제라는 건 없다"고 강조하며, 고인이 심리적으로 매우 위험했는데 육군 의무규정에 따라 휴가를 내보내면서 전혀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점을 꼬집었다. 그는 "당시 군이 부대 관계자들을 '문책'했어야 됐다"라며 "지난 제28사단의 조치가 주먹구구이자 솜방망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김 변호사는 "부대 관계자들이 법적으로 징계위원회 아예 회부 안 됐다"라며 "김여상 군이 사망하고 해당 부대가 꾸린 '사고대책위원회'는 육군 규정에 없는 사단장이 만든 임시조직"이라고 지적했다. "법적 기구가 아닌 위원회에서 두 사람에게 '면제' 결정을 한 건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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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근무대장 면제", "군악대장 면제”라는 내용이 적힌 제28사단 본무근무대 사고대책 위원회 심의의결서 ⓒ 정현환

 
"육군이 아들을 두 번 죽였다"

2018년 4월 28일 김여상 일병이 사망한 뒤 그동안 육군은 고인의 죽음에 이성문제가 큰 점을 강조하며 군과 큰 연관이 없음을 강조했다. 여기에 군은 고인과 유족을 제대로 예우하기는커녕 홀대했다. 그 결과, 지금 고 김여상 일병의 어머니 박씨는 "육군이 내 아들을 두 번 죽였다"고 말한다. 

고 김여상 일병의 어머니 박씨는 아들의 장례를 수목장(樹木葬)으로 치르고,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집배원은 어머니 박씨에게 아들이 김여상이 맞는지, 여러 차례 확인했는데, 갑작스러운 전화에 "왜 묻나"라고 어머니가 질문하자 집배원은 "군에서 뭘 보냈는데 이상한 주소로 보냈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제대로 주소를 가르쳐 주고, 어머니는 군에서 보낸 우편물을 받았다. 봉투를 열어보니 고 김여상 일병의 '일반사망' 소식을 알리는 육군 보통전공사상 심사위원회 문서였다. 그랬다. 위원회에서 사전에 주소 확인도 거치지 않고, 사망확인서를 엉뚱한 곳으로 보낸 것이었다.

여기에 국가보훈처는 고인의 보훈 서류접수를 위해 어머니 박OO씨가 직접 아들의 소속부대가 있는 경기도 양주 제28사단을 방문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제주도에서 경기도 양주까지, 군 의무복무 도중 사망한 아들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했다. 

'사망확인서'는 그냥 문서가 아니다. 누군가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입증하는 서류다. 하지만 육군은 유족에게 매우 중요한 이 문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절차와 과정, 확인을 모두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육군의 무성의함에 곧바로 항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육군은 별다른 설명이나 사과를 유족에게 하지 않았다. 대신 고인의 사망확인서를 어머니에게 한 번 더 보냈다.

참고로, 어머니 박씨가 아들을 보훈대상자로 신청한 지 1523일이 지난 2022년 11월 1일에서야 제주도 보훈보상과로부터 아들이 보훈대상자가 됐음을 안내 받았다.

고 김여상 일병의 어머니 박OO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입대시켰는데 아들은 주검으로 돌아왔다. 현재 박씨는 규정을 어겼음에도 처벌받지 않은 부대 지휘관의 엄벌을 요청하며 소송을 준비 중이다. 군과 보훈처라는 두 국가기관이 유족을 건성으로 대하는 태도에 진정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국방부와 보훈처는 모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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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은 망인의 사망확인서를 엉뚱한 주소로 보내는 무성의함을 보였다 ⓒ 정현환

#육군 #군악대 #군악병 #제28사단 #군 사망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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