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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남편 돌보던 구순 할머니의 그림, 유명 화가도 반하다

4년 전 독학으로 그림 공부... 12월 1일 전시회 앞둬, 달력도 제작

등록 2022.11.27 12:06수정 2022.11.2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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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숙 화가(왼쪽)를 만난 초보 화가 염갑순 할머니(오른쪽) ⓒ 염갑순

 
"아흔 살 할머니의 행복한 인생이 충만해 있습니다. 색감과 기술도 독학으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습니다.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지난 20일, 동양화가 최성숙씨가 경남 양산 북부동 한 표구점에서 전시회를 앞둔 염갑순 할머니를 따스히 안으며 말했다.

고인이 된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의 아내인 화가 최성숙씨는 염 할머니 둘째 아들 이종국씨와 인연으로 할머니의 작품을 접했다. 그리고는 곧 할머니의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이후 최씨는 할머니를 만나 점심을 먹고, 차도 같이 마시면서 할머니의 모든 창작품을 자신이 대표로 있는 문신아트(주)가 매입하겠다고 깜짝 제안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작가들이 할머니 예술혼을 본받아야 한다"며 "앞으로 전시는 물론 티셔츠와 가방 등 상품으로 개발하겠다"고 했다. 

유명 화가도 반한 그림을 그린 주인공, 염 할머니는 올해로 아흔이다. 3남 1녀의 자식들은 모두 중년이다. 자식들이 장성하는 동안 할머니에게 배움의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사실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큰아버지가 여자라는 이유로 학업을 반대해 초등학교 6학년 때 학업을 중도 포기했다. 

자식을 키우고 아내와 엄마로 지내던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남편을 집에서 돌보다 4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마음이 저렸다. 우울증이었다. 이를 지켜본 의사와 아들은 할머니에게 당신이 어릴 때 곧잘 했던 그림을 권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할머니는 다시 붓을 쥐었다. 그림 실력을 되살려 조금씩 연습을 시작했다. 어머니 재능을 눈여겨본 아들들은 스케치북과 색연필, 물감, 참고용 사진과 그림을 가져다주며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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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만든 달력을 든 염갑순 할머니 ⓒ 염갑순


그림 수십 점이 모이자, 자녀들은 어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 의미 있는 선물을 해주자며 뜻을 모아 내년도 달력 500장을 제작했다. 달력은 1월 동백과 새, 3월 홍매화, 8월 해바라기 등 계절에 맞춘 꽃을 위주로 했다. 2월엔 초가 고향 집도 함께 넣어 누구라도 친숙함을 느끼게 했다. 자녀들은 달력 첫 장에 "구십 평생 헌신하신 어머님께 바친다"는 헌사를 담았다. 

작품을 감상한 김성헌 평론가(부산미협 학술평론분과 회장)는 "염 할머니 목련꽃 3점을 보며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하는 조카에게 선물한 '꽃피는 아몬드나무'가 떠올랐다. 그림에서 소박미와 따뜻한 마음 표현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도 할머니는 겸손했다. 염 할머니는 "늘 가는 한의원에 달력을 선물했더니, 자식들이 기특하다며 꼭 와서 차 한잔하고 가라고 당부했다"며 "자식들이 내 공을 인정해주니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어머니"라고 말했다.


한편, 염 할머니 작품은 오는 12월 1일부터 3일간 양산시노동자종합복지관 로비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전시회에서는 할머니 작품 21점과 큰아들인 이종락 전 양산문인협회장 시와 수필 5점도 함께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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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전 자녀들과 찍은 사진과 헌사로 꾸민 달력 표지 ⓒ 염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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