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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어린이집에서 이중언어 가르치면 어떨까요?"

'두 언어' 교육환경,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조성할 수 있을까 ①

등록 2022.11.28 10:50수정 2022.11.2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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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충북 옥천 지역 결혼이주 가정을 만나 가정 내 이중언어 환경 조성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조성될 수 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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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공부 이야기 하고 싶어요" 베트남에서 온 엄마의 소원 http://omn.kr/21qpw
"엄마 나라 말 쓰지 말라는 어른들... 하지만 전 포기 안 해요" http://omn.kr/21qq2

그렇다면 건강한 가정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 건강한 마을을, 더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이중언어 교육 환경은 어떻게 조성될 수 있을까. 우리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면 지역 이중언어 교육 공간으로 작은도서관·어린이집 활용하면 어때요?
베트남어 강사 Phạm Thị Thanh Thủy(팜 티 탄 투이, 서연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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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어 강사 팜 티 탄 투이씨 ⓒ 월간 옥이네

 
'엄마 나라 언어'를 공부하기 위한 수업이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총 15주간 이어진 '베트남어 교실'이다. 매주 토요일 옥천읍 통합복지센터 5층 교육실과 안남 배바우작은도서관(이하 배바우도서관)을 북적이게 만든 이 수업은,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가 올해 초 평생학습원 '두드림서비스사업'에 선정되며 시작됐다. 

지금까지의 이중언어 수업이 결혼이주여성들과 자녀를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에 초점을 맞춰왔던 것과 달리, 엄마 나라 언어를 배울 수 있다는 소식에 수업당 10명이 넘는 학생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베트남어 교실 문을 두드렸다.

"수업이 열리는 배바우도서관에서 집까지 40분이나 걸리는데 나오는 학생도 있었어요. 만 2세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나이도 다양했고요. 안남·안내는 면 지역이다 보니 농사하는 부모님들 특히 많아요. 자녀를 데려다주고 다시 데리러 오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아침에 아이들을 도서관까지 데려다주시면 수업 끝나고 제가 데려다주기도 했죠. 자녀들에게 베트남어 가르치고 싶은 그 마음은 저도 잘 아니까요."

배바우도서관에서 열린 베트남어 교실에서는 안남면 지수리에 거주하는 결혼이주여성 팜 티 탄 투이씨가 선생님으로 나섰다. 한국에 온 지 어느덧 20년, 네 명의 자녀를 양육하며 부모-자녀 간에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고, 엄마 나라 언어를 배울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선뜻 결정한 일이었다.


"저 한국 처음 왔을 때 혼자 공부했어요. 면에는 이런 수업 거의 없으니까. 제가 사는 안남면 지수리에는 읍으로 가는 버스도 하루에 몇 대 없었고, 2~3번씩 갈아타야 했죠. 선생님도 못 온다고 그랬고요. 전 온라인으로 공부해서 자격증 땄어요."

팜 티 탄 투이씨는 2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중언어 교육 환경이 그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안남·안내를 비롯한 면 지역에 다문화가정 많아지고 있죠. 그런데 엄마 나라 언어를 배울 기회는 거의 없죠. 모여서 가르칠만한 공간도 없는 데다가 엄마들이 농사하니까 붙잡고 가르치기도 힘드니까요. 이번 수업도 어디에서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마침 작은 도서관이 떠오른 거죠. 배바우도서관장님과 사무국장님이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사용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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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어 수업 중인 모습 ⓒ 월간 옥이네

 
안내·안남 거주 학생들이 접근하기 좋은 위치인 데다가 따뜻하고 활기찬 분위기의 배바우도서관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마을 어린이들이 마음 편히 방문하는 공간이기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수업이 된다면 더 즐겁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을에 이중언어 수업이 생기자 자연스럽게 이중언어에 관한 주민들의 관심도 늘어났다. '그래, 엄마 고향 말도 당연히 배워야지. 그래야 깊은 대화도 하지' 마을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도서관을 찾은 친구들도 수업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안남 주민들도 기회 있으면 배우고 싶다고 했고요. 우리 마을에도 베트남에서 온 사람 있으니까 배워서 잘 지내고 싶다는 분도 계셨죠."

하지만 직접 수업을 해보니 생각과 다른 점도 있었다. 도서관을 찾는 이주배경 가정 자녀들이 적지 않은데도 베트남어나 중국어 등 이중언어 도서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수업 전날 집에서 책을 만들어 갔어요. 컴퓨터로 한국어 자료를 찾고 베트남어로 다시 써서 만드는 거죠. 이번 수업하면서 면 지역 작은도서관에도 이중언어 그림책이나 동화책이 조금씩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읍까지 나갈 시간 없는 엄마들이 같이 읽으러 올 수도 있고, 빌려 읽을 수도 있고요. 이런 수업 있을 때 활용할 수도 있겠죠. 어린 친구들은 자리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다 책을 읽어주거나 놀이나 이야기, 연극, 동요 같은 걸 더 오래 기억해요. 저희 아이들도 제가 어려서부터 불러준 노래들은 지금까지도 잊어버리지 않거든요."

발달 수준이나 실력에 맞는 이중언어 교육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쉽게 배울 수 있는 동요나 놀이를 시작으로 알파벳을 익힌 후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 신체 부위, 의사 표현, 생활에 필수적인 말하기 교육까지 단계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이렇게 여러 수준의 단계별 교육이 이루어지면 흥미 잃지 않고 자기 수준에 맞게 수업을 따라갈 수 있죠. 계속 실력을 늘려가면서요. 그럼 엄마, 아빠가 바쁘더라도 꾸준히 이중언어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거죠."

팜 티 탄 투이씨는 주말에는 운영하지 않는 면 지역의 어린이집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린이들에게 익숙한 공간이면서 나이에 알맞는 교구를 갖추고 있어 놀이 활동을 통해 언어를 익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다.

"특히 면에는 교육공간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부모와 자녀 간 애착관계를 잘 만드려면 포기하지 않고 교육해야 해요. 이번에 우리가 한 것처럼 작은 도서관도 활용하고, 어린이집도 활용하고, 마을회관이나 면사무소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요. 엄마들보고 집에서 혼자 가르치라는 사람들 있어요. 당연히 그러고 싶죠. 근데 집안 분위기 다 다르고 솔직히 엄마들 여유가 없어요. 한국 사람이랑 생활하며 일하고 지내려면 자기 공부하기도 빠듯해요."

마지막으로 팜 티 탄 투이씨는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고, 학령기가 되면 깊은 소통이 어려워지는 시기가 필연적으로 오기 마련"이라며 "말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를 익힐 때까지 체계적인 이중언어 교육이 필요하다. 앞으로 이중언어 교육을 통해 건강한 가정을 만들고,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옥천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더 튼튼한 마을 공동체 만드는 '이중언어 교육 환경' 고민할게요
- 청성작은도서관 김혜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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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청성 작은도서관 김헤란 관장 ⓒ 월간 옥이네

 
"제가 처음 청성에 왔을 때, 청성초 전교생 중 80%가 다문화 가정 자녀였어요.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와의 소통을 가장 걱정해요. 이 시기 주양육자인 엄마와의 소통은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죠. 부모와 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또래끼리 완전하지 않은 정보를 주고받거나 온라인 정보에만 의지하다보면 문제가 생기기 쉬워지죠. 이런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어 시작한 것이 '한국어 학당'입니다."

그렇게 2021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100여 권의 한국어 교재를 기부받아 청성작은도서관에 한국어 학당이 문을 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예측하지 못한 어려움이 따랐다. 결혼이주여성 대부분이 농업이나 생산직에 종사하는 청성면 특성상 농번기에는 참여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퇴근 이후나 주말에는 집안일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선뜻 시간을 내기 쉽지 않다는 것.

또 한국 거주 기간이나 개인 상황에 따라 한국어 수준도 저마다 다르기에 '너무 쉽다' 혹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찾아오길 포기하는 경우도 생겼다. 김혜란 관장은 자녀가 엄마 나라 언어를 공부하는 환경이 함께 조성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엄마들의 한국어 수준은 천차만별이지만, 자녀들의 이중언어 수준은 아직 비슷하죠. 훗날 아이들의 이중언어 수준이 다양화 된다면 그땐 수준을 달리 할 수 있는 이중언어 교육 환경이 다시 마련돼야 하는 거고요. 지금은 어떻게 하면 작은 도서관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혜란 관장은 다가오는 11월 도서 구입 시기에 이중언어 그림책이나 동화책 구입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중언어에 관한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고,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마을 결혼이주여성이 강사가 돼 프로그램을 이끄는 수업도 상상해본다.

"우리 마을 결혼이주여성이 돌아가며 선생님이 돼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마련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농업이나 생산직 외에도 자신의 강점인 언어를 활용한 마을 교사 활동을 해보며 강사 경험을 쌓을 수도 있고요. 선생님이 된 엄마를 자녀가 자랑스럽게 여길 수도 있겠죠."

그렇게 된다면 결혼이주여성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사회 참여나 마을 참여를 유도해 인식의 변화를 수월하게 이끌어 낼 수도 있다. 그는 마을 공동체 차원에서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역량을 갖춘 마을 주민이라면 누구나 마을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마을 강사 자격요건을 완화하는 등 마을 상황에 맞춘 탄력적인 운영 방침"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을 교육은 결국 우리 마을 공동체를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와 연관되죠. 마을에서 이중언어 교육을 진행한다면 이건 단순히 다문화 가정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마을의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이런 교육이 마을에 꼭 필요하다'는 합의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민의 관점, 즉 주민의 힘으로 마련한 마을 교육이 중요한 거고요."

[다음기사]
"토요일 아침에도 공부하러... 그만큼 이중언어 의지 강한 것" http://omn.kr/21scm

월간옥이네 통권 65호(2022년 11월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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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 #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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