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의 흐름 속, 아태 지역 페미니스트와 연대하기

APWLD(아시아·태평양 여성과 법, 개발 포럼) '디지털화와 여성 노동' 아·태지역 회의 참가기

등록 2022.11.24 16:05수정 2022.11.2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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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6-7일 양일간 태국 방콕에서는 APWLD(아시아·태평양 여성과 법, 개발 포럼) 주최로 '디지털화와 여성 노동'에 관한 지역 회의(Regional Convening on Digitalisation and Women Labour Rights)가 열렸다.

여성연합은 1990년대부터 APWLD의 회원단체로 이번 지역 회의에 기획 단계부터 함께했다. 또한 필리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홍콩, 스리랑카, 인도, 태국, 캄보디아까지 한국을 포함한 총 10개 국가에서 여성단체, 노동조합, 여성 노동 연구단체, IT 관련 이슈 의제화 단체 등 아시아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이번 지역 회의에 참여했다.

이번 회의는 전세계적인 디지털화의 흐름이 아태지역의 여성 노동 조건 전반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특히, 여성의 착취적이고 불안정한 노동 조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공유하고, 정의로운 디지털 거버넌스의 수립 등 여성 인권 및 노동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한 요소를 짚으며, 이를 위한 페미니스트 관점의 개입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본 이슈리포트에서는 필자가 이번 회의에 참여하면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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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WLD, 'Regional Convening on Women Labour Rights and Digitalisation'(2022.10.6-7, 태국 방콕) ⓒ 한국여성단체연합

 
디지털화와 여성 노동의 상호 연관성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ES)이 출간한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발레리 클리프(Valerie Cliff)는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와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의류 및 섬유 제조업 분야에 인간을 대체하는 자동화 소프트웨어가 도입되면서 일자리가 80% 이상 줄어들 것이고, 그 영향이 해당 분야 일자리에 주로 종사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미칠 것임을 지적했다.

또한 인도-태평양에서 여성 노동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무 및 행정, 제조 및 생산 분야가 자동화·디지털화되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여성들의 일자리와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결국 비공식적인 단기 고용과 '유연한 노동 시간'의 일자리,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일자리로 내몰리며 일자리 불안정성이 더욱 높아진다.

Gig Workers Union(긱 워커스 유니온, AIGWU)의 Rikta Krishnaswamy는 플랫폼 경제가 '노동 시간의 유연성'을 마치 노동자에게 유리한 것처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여성에게 훨씬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한다고 지적한다. 가사와 돌봄의 책임을 떠맡고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시간의 유연성' 때문에 플랫폼 노동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 체계에서 노동자는 언제나 즉각적인 호출에 응답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임금노동이 아닌 돌봄노동 또한 책임져야 하는 여성 노동자는 이 즉각적인 호출에 응답하기 어려워 '낮은 등급'을 받게 되며, 결국 그럼으로써 노동과 소득의 불안정성이 더 악화되는 상황에 처한다.


참가자들은 최근 트렌드가 된 원격근무 방식이 직업안전보건(OSH) 문제를 수반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한 사회적 대화가 디지털화의 사회적 영향을 관리하는 핵심 도구라고 논의되고 있지만, 노동자가 조직권을 행사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대화의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디지털화의 결과로 등장한 플랫폼 노동과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 회사의 핵심업무를 제외한 모든 과정을 외부 업체에 맡기는 아웃소싱 방식) 노동의 문제점은 대부분 기업이 제공하는 보호장치나 노동자 보호의 책무조차 없고, 노동조합이 없거나 기존 노동에서의 노동조합 조직 방식을 도입하기 어려운 형태를 취하고 있어 이에 따른 사회적 대화의 창구 마련 또한 어렵다는 것이다.

태국의 한 참가자는 태국 국적의 여성들이 높은 비율로 종사하는 마사지 치료사의 경우, 코로나19와 디지털화를 겪으며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서비스 제공이나 서비스를 고객의 집을 방문하는 방식으로 업무 형태가 전환됨에 따라,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희롱이나 부당한 요구의 발생 비율이 높아졌으나 기업이 제공해야 할 보호장치가 없어 여성들이 침묵을 택하게 되는 현실을 공유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플랫폼 노동 시스템에서 기업이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를 부정함으로써 여성 노동자의 조직화와 단체교섭권 등의 노동권이 어떻게 훼손되는지, 그리고 실제로 노동자들이 조직화되었을 때 이들에 대한 부당해고 등에 대한 전략적 대응을 전개할 필요성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참가자들은 디지털화에 따라 새로 생겨난 직업 및 다양한 플랫폼 기반 직업 유형들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직면한 주요 이슈와 과제를 다루었다. 특히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플랫폼에서의 '유연성'에 대한 높은 가치평가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기업들은 플랫폼 노동이 가진 '유연성'이 굉장히 긍정적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고, 많은 청년 및 여성들 또한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플랫폼 노동에 매력을 느끼며 실제 현장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이들은 노동자의 시간과 자율성에 대한 기업(그리고 '알고리즘'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관리자)의 광범위한 통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이 디지털 노동 플랫폼에 의한 착취를 끊어내고 조직화된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대항하는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산업 전반과 국가의 공격에 대비한 노동자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디지털화로 달라진 산업구조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적대적인 환경에서 이에 저항하는 활동이 지속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 시스템과 메커니즘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모두가 공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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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WLD, 'Regional Convening on Women Labour Rights and Digitalisation'(2022.10.6-7, 태국 방콕) ⓒ 한국여성단체연합

 
디지털화에 따른 여성 노동권을 위한 조직전략

참가자들은 디지털화에 따른 여성 노동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다양한 방식과 사례들을 공유했다. 음식 배달, 전자제품 제조, 문화·미디어 프리랜서 산업 등 디지털화로 형성되고 있는 산업에서의 실제 조직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전략에 대해 토론했다.

참가자들은 안전한 노동과 출산휴가와 같은 여성 노동자들의 요구에 특히 초점을 맞추어 기술 변화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 보호를 위해 국가 및 지역 단위의 정책 변화가 더욱 촉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배달(라이더)와 같은 일부 분야에서는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가장 잘 된 것으로 보이나, 해당 영역에서의 여성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는 배달 직종에 여성 노동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현실, 그리고 해당 직종에 종사하더라도 여성들이 직면한 임금노동과 돌봄노동의 이중 부담으로 인해 노동권 옹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현실을 짚었다.

한편,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참가자들은 기업의 부당해고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법적 대응을 추진하고 있는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들은 법적 조치를 통한 대응이 시간과 자원이 매우 필요한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노동자 관계의 핵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적 개입이라고 판단한다는 의견을 피력함으로써, 많은 참가자들에게 시사점을 주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디지털화 관련하여 여성의 노동권 확보를 위한 운동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 전략에 대한 토론도 이어갔다. 신자유주의 개발에 저항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ILO 협약, CEDAW(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등의 국제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표준 노동법에 기반한 플랫폼 노동자 권리 확보를 위한 활동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여성의 리더십 및 조직력, 여성 노동자의 악화된 상황에 대한 데이터화, 디지털 플랫폼을 둘러싼 시스템에 관한 이해, 페미니스트 관점의 정책 분석 강화가 제안되었다. 나아가 서로 다른 분야의 다양한 노동자들 간의 연대를 구축하여 교차적 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 역량 확보 등을 강조하며, 향후에도 디지털화에 맞선 페미니스트 연대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며 힘을 모으자는 목소리를 모아냈다.

[참고 자료]
APWLD(Asia Pacific Forum on Women, Law and Development), 'Regional Convening on Women Labour Rights and Digitalisation' Concept Note&Summary of the Meeting(2022)
덧붙이는 글 이 글의 저자는 김현수(도구)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입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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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창립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고 여성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연대를 이뤄나가는 전국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로 구성된 여성단체들의 연합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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