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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간호사·5월의 신부 꿈꿨던 삶... 송두리째 사라졌다

[이태원 희생자 85명의 삶①] 20대 희생자 35명의 이야기

등록 2022.11.29 11:58수정 2022.11.2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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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158명.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어떤 꿈을 꾸며, 어떤 미래를 그리며 살았을까요. 참사 한 달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참사 이후 나온 언론 보도와 취재를 종합해 85명 희생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20대, 그리고 10대·30대·40대·50대, 외국인 등 세 차례로 나눠 사연을 소개합니다. 거리에서 죽어간 158명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입니다. <오마이뉴스>에 희생자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으신 분은 record1029@ohmynews.com으로 연락주십시오.[편집자말]
이태원 참사로 우리는 누군가의 막내딸, 누군가의 외동아들, 누군가의 보배를 잃었다. 그러나 참사 한 달이 지난(11월 28일 기준) 지금까지도 한 명, 한 명 그들의 삶과 이름은 제대로 호명되지 못하고 있다. 

유족들이 나서 지난 22일 '유가족 의사 확인 후 명단 공개'를 요구했다. 행정안전부는 "원하면 공개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면서도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신 정부는 희생자 1인당 장례비·위로금을 주겠다면서 '숫자' 안에 이들을 다시 가두었다. 정부는 이들을 희생자 대신 사망자로 분류하고 있다. 

이태원 희생자 이지한(24)씨 아버지는 <뉴스타파>를 통해 "22일 유족 기자회견을 하니 바로 '국가배상금 지급' 뉴스가 나오더라, 배상금? 그건 뇌물이다. 줄 테니 찌그러져 있으라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리곤 "결국 돈 때문에 저러는 거 아니냐는 프레임으로 유가족을 욕먹게 한다"고 했다.

이태원 희생자들은 이름만 사라진 게 아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는 지난 5년 동안 발생한 7건의 대형 참사 분향소 가운데 영정사진이 없는 유일한 분향소였다. 그들의 얼굴 대신 국화꽃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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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청 1층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부산 합동분향소에 사흘째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 김보성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 한 달. <오마이뉴스>는 숫자 안에, 국화 꽃 뒤에 가려졌던 그들의 삶을 정리했다. 참사 발생 이후 나온 언론 보도와 취재를 종합해 158명의 희생자 중 85명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들의 삶과 꿈, 바람을 모았다.

그 중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20대 희생자(전체 106명) 35명의 이야기를 먼저 전한다. 

장례식장에 놓은 사령장 

누군가는 밝고 에너지가 넘쳐 비타민같은 친구였다. 또 다른 누군가는 PC방 아르바이트,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용돈을 벌어서 쓰던 바지런한 사람이었다. 친구 같은 딸이었던 그는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오면 손수 밥을 지어줄 정도로 다정다감했다.


누군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해 부모 걱정을 덜어주었다. 누군가는 장학금을 타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려 애썼다. 누군가는 일찍이 취직해 여윳돈이 생겼다며 함께 여행 갈 형·누나의 경비를 흔쾌히 내놓았다. 누군가는 바리스타가 꿈이었고, 누군가는 공기업 입사를 꿈꾸며 자격증 준비에 매진 중이었다. 간호사가 되고 싶어 등록금을 꼬박 모아 간호대학에 진학 한 이도 있었다.

저마다 미래를 그리며 자신의 꿈을 펼쳐갔던 그들의 삶이, 멈췄다. 정규직 전환 필기시험에 합격해 받은 사령장(임명 명령을 적어 본인에게 주는 문서)이 장례식장에 놓였다.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회사 합격문자를 받았지만 출근할 수 없었다. 엄마와 여행을 하며 취업하면 더 행복하게 살자고 했던 딸은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대한민국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던 158명의 삶을 송두리째 잃었다. 여전히 행정안전부 명단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익명으로 전한다. 유가족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희생자 실명을 밝혔거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주최로 열린 유족 기자회견에서 희생자의 이름을 공개하는 등 유가족의 공개 의사를 직접 확인한 경우에만 실명으로 적었다.

그들이 꿈꿨던 세상 

송아무개(20·여) :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그는 막내딸이었다. 11월 1일 발인식에서 송씨의 어머니는 "우리 딸 어떻게 해, 우리 딸..."이라며 목놓아 울었다. 지인들은 꿈이 많았던 친구로 그를 기억했다. 그의 언니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를 안아주었고, 그의 오빠가 영정사진을 들고 영구차로 향했다.

노아무개(21·남) : <충청타임즈> 등에 따르면, 노씨는 휴가를 나온 군인이었다. 충북 청주시에 연고를 둔 그는 국군수도병원에 안치됐다. 지난 10월 31일 충북도청 신관 1층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를 찾은 친구 임아무개씨는 "함께 이태원 가기로 했다가 일이 생겨서 못갔다"라며 "함께 있어줬더라면 희생을 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아무개(22·여)
 :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씨는 PC방 아르바이트,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용돈으로 벌어서 쓰던 바지런한 청년이었다. 이씨의 오빠는 "밝고 자유로운 성격이었다"라며 "여동생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살아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단짝' 김아무개(23·여), 오아무개(23·여) : <무등일보>·<광주일보> 등에 따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했던 김씨와 오씨는 이제 막 취업·승진·정규직 전환 등 장밋빛 미래를 향해 발돋움하던 중이었다. 오씨는 지난 2월 은행에 취업했다. 얼마 전엔 정규직 전환을 위한 필기시험에 합격해 가족들과 기쁨을 나눴던 그의 빈소엔 그토록 바라던 '사령장'이 놓여 있었다. 김씨 또한 지난 8월 백화점에 취직했고 최근 승진까지 하며 가족에게 자랑스런 딸이었다. 아버지는 "휴가 때마다 가족들 보겠다고 내려왔었는데 이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라며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최아무개(23·남) :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최씨는 참사 당일 자신의 생일 파티를 위해 이태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연인이 자신의 SNS에 기록한 최씨는 가족과 연인, 반려견 등 모두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다. SNS에선 그를 찾는 친구들의 메시지가 이어지다가 결국 부고가 전해졌다. 그의 연인은 슬픔 속에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여러분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OOO(23·여) : <매일신문> 등에 따르면, 그는 홀로 상경해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친구 같던 딸이었다'는 그는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오면 손수 밥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런 딸을 보내며 그의 어머니는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라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의 관에는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과 못다 전한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포스트잇에는 '못다 이룬 꿈 남겨두고 편히 쉬어', '네가 그립다' 등의 글들이 적혔다.

OOO(23·여) : <뉴스1>에 따르면, 무남독녀인 그는 "친구와 놀다 오겠다"며 나선 뒤 사고를 당했다. 그는 파주 지역 대기업에 근무했다. 회사 동료는 "비서 업무는 물론 각종 사내 업무를 도맡아 할 정도로 부지런한 사원"이었다고 전했다.

OOO(23·여) : <경향신문>에 따르면 삼남매 중 둘째인 그는 항상 아버지 일을 돕는 딸이었다. 아버지는 "참 착한 딸이었다"라며 "어제 오늘 친구들이 200명 넘게 왔다간 걸 보면 딸이 세상을 잘 살아왔구나 생각했다. 착하게 살아서 이렇게 일찍 갔다보다"라고 말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전한 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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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자식의 핼로윈 분장 사진을 보여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아무개(24·여) : <문화일보>·<경향신문> 등에 따르면, 이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싸'이자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 공기업 입사를 꿈꿨던 그는 대학교 휴학 후 자격증 준비 등에 매진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집사람과 맞벌이라 시간이 없어 가족과 여행 한 번 가지 못했다"라며 한탄했다. 아버지는 참사가 벌어졌던 날 새벽 집을 나서는 자신에게 "아빠 잘 갔다 와"라고 인사해준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보다 1분 먼저 태어난 쌍둥이 오빠는 동생이 남긴 "귤 먹고 싶다"고 남긴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보며 울먹였다.

송은지(24·여) : < BBC >·<오마이뉴스> 등에 따르면 여행가이드로 일했던 송씨는 전 세계를 여행하는 꿈을 가진 청년이었다. 바리스타를 꿈꾸기도 했다. 아버지와도 살갑게 지내는 다정한 딸이었다. 양팔이 부러진 채로, 18시간 만에 가족들에게 주검으로 돌아온 딸. 아버지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을 예상하고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면서 "슬퍼할 때는 끝났다, 이제 분노할 때다"라고 말했다.

이지한(24·남) : "사랑한다 아들아, 존경한다 아들아, 보고싶다 아들아, 고생했다 아들아, 다시 볼 수는 없겠니..." 이씨의 어머니는 손편지에서 "널 키울 때는 하도 순하고 착해서 이런 애는 20명도 키울 수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며 아들의 생전 모습을 다시 되새겼다. 엄마의 "천사 아들"은 갓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전도유망한 신인 배우였다. 방영을 앞둔 한 금토 드라마에서 시청자들과 만날 준비도 마친 상태였다.

김아무개(24·여) : <국민일보>·<머니투데이> 등에 따르면 김씨는 프로야구단 LG트윈스와 KIA타이거즈에서 치어리더로 활동했다. 그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 김씨의 SNS에는 동료와 팬들의 슬픔이 줄을 이었다. 어린 시절 고인을 만난 기억을 꺼낸 한 LG트윈스 팬은 "사진을 요청했는데 친절하게 찍어주신 기억이 아직도 남는다"라고 추모했다.

김아무개(24·여) : <뉴스1> 등에 따르면, 김씨는 3남매 중 둘째이자 유일한 딸이었다. 김씨에 대해 그의 고모부는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부모님 본다고 대구로 내려오던 착한 조카였다"고 전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진 김씨는 그날 밤 지인들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지인은 "그림을 무척 좋아하는 예쁜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최아무개(24·여) : <강원일보> 등에 따르면 최씨는 '평생 속 한 번 안 썩인 착한 아이'였다고 한다. 강원도 강릉 출신인 그는 대학 4학년으로 내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최씨는 최근 두 곳 회사에 합격했고, 그 중 한 곳에서 인턴근무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최씨와 함께 이태원을 찾은 친구는 10월 30일 밤 빈소를 찾아 최씨 부모에게 "제가 손을 놓치는 바람에 친구를 지키지 못했다"며 울었고, 가족들은 "네 잘못이 아니다"라며 친구를 위로했다. 

신아무개(24·여) :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신씨는 대학에서 생명과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 서울사무소에서 컨설턴트로 갓 입사한 청년이었다. 명랑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늘 많은 친구들의 사랑을 받았다.

조아무개(24·여) : <제주일보> 등에 따르면, 제주 서귀포시에 거주하던 조씨는 대전이 고향이다. 그는 지난해 제주시로 이주했고, 지난달부터 서귀포시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아무개(24·여) :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노씨는 참사 당일 부모님께 '잘 있다'는 사진을 시시각각 보낼 정도로 세심한 딸이었다. 사진은 오후 10시께 멈췄다. 관광경영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다국적기업인 애플과의 면접을 이틀 앞두고 있었다.

참사 이틀 후 전해진 합격 소식

OOO(24·여) : <뉴스 1>에 따르면, 직장과 집만 오가던 그는 오랜만에 친구와 이태원에 나들이 나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언니는 동생과 연락이 두절된 새벽녘부터 이태원 일대를 밤새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는 참사 당일 밤 9시 43분에 언니와 마지막 통화에서 "사람이 너무 많아 구겨지는 줄 알았다"며 당시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OOO(24·남) : <경기일보>·<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막내아들인 그는 자신의 생일을 2시간 남겨두고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는 지난 금요일 아들과 함께 한 식사가 마지막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듯 "오늘(10월 30일)이 생일인 아들이 친구들이랑 놀러 나갔다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OOO(24·여) : <경향신문>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회사에 입사해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지방에 사는 아버지와 떨어져 지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29일 저녁) 8시 뉴스에 행사 진행 중이라며 뉴스가 나왔는데 정상적 인파 수준이 아니고 콩나물 시루였다. 왜 방치했냐"고 토로했다. 아버지의 지인은 "친구 같은 아빠였다"라며 부녀지간의 돈독한 사이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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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2022년 11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상은(25·여) : 이씨는 외동딸이다. 미국에서 일하겠다는 포부에 1년 반 공부에만 매진했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미국 회계사 자격증까지 땄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는데..." 아버지는 말을 삼켰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아버지는 1박 2일로 등산을 다녀오느라, 참사 다음 날에야 딸의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는 "등산 가기 전날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원래는 인사하러 나오던 딸이 방 안에 있었다"라며 "딸이랑 마지막 인사도 못했다"고 말했다. 참사 이틀 후, 이씨가 가고 싶어 한 회사에서 합격 문자가 날아왔지만 그는 출근하지 못했다. (관련 기사 : 이태원 참사로 26세 딸 잃은 아버지의 부치지 못한 편지 http://omn.kr/21pno)

고아무개(25·여) : <오마이뉴스>·<한국일보>에 따르면, 고씨는 아버지의 휴대폰에 '보배'라고 저장돼 있는 소중한 딸이었다. 고씨는 3년 전 백혈병 진단을 받은 아버지를 위해 골수를 기증했고 자신의 생일에도 "좋은 날에 세상의 빛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아버지와 애틋한 사이였다. 고씨가 아버지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엔 꼭 '하트(♥)'가 빠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보곤 건강하라고, 오래 살라고 해놓고... 지금이라도 (딸의 죽음과 나의 죽음을) 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다"라고 되뇌었다. (관련 기사 : 골수이식까지 해준 '껌딱지' 딸 잃은 아버지의 울분 http://omn.kr/21rfl)

김아무개(25·남) : <한겨레>에 따르면, 김씨는 친구 5명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그 중 3명이 함께 유명을 달리했다. 참사 당일 저녁 8시 아들은 "사람이 많아서 밥 먹기 힘들다"고 했다. 사고 소식이 뜨자마자 아버지는 익산에서 서울로 내달렸지만 서울에 도착하기 직전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지난 9월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한 후 이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 부모 걱정을 덜어줬던 아들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은 너무나도 착하고 성실했다. 사회에 도움 되는 사람이었다"라며 "새로운 일을 알아보며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었다"라고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아무개(25·여) : <경인일보>에 따르면, 오씨의 가족 모두가 가톨릭 신도다. 오씨의 세례명은 '로즈마리'. 오씨는 친구 1명과 함께 이태원을 방문했으나,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도 한 장한 딸. 아버지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내딸이었다, 정말 착실하고 애교도 많은 딸이었다"고 말했다.

장아무개(25·남) : <전남일보>·<뉴스1> 등에 따르면, 장씨는 웃음 많고 속 깊던 막내였다. 집에 오면 엄마 볼에 뽀뽀하던 애교 많은 아들이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 많은 청년이었다. 전역 후 대학에 입학한 뒤 올해 초 제조업체에 취직한 그는 코로나19로 가지 못했던 형·누나와의 해외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자신이 먼저 취직해 여윳돈이 생겼다며 형·누나의 여행경비를 흔쾌히 내기도 했다. 큰아버지는 "집안에서 가장 웃음이 많고 쾌활하던 아이가 이렇게 차가운 몸으로 돌아온 게 믿기지 않는다"라고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OOO(26·여) : <세계일보>에 따르면 그는 영상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어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대전에서 직장을 다니다 세 달 전에 인천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사고 당일 그는 부모님에게 '놀러간다'고 연락을 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사고를 당했다.

OOO(27·여) : 2023년 5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였던 그는 7급 공무원이었다. <국민일보>·<뉴시스> 등에 따르면, 명문대를 졸업해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집안의 자랑스러운 장녀였다고 한다. 그는 결혼할 남자친구와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참사를 당했다.

"◯◯아 가지마, 엄마는 널 못 보내겠어"
 

같은 학과 친구 노아무개(27·여), 박아무개(27·여) : 노씨의 꿈은 간호사였다. 부산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전문성을 쌓기 위해 지난 3월 전남지역 대학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국제신문>·<중앙일보> 등에 따르면 사고 당일 같은 학과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둘 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시험 잘 쳐서 장학금 탈 수 있을 것 같아, 걱정마요. 다음 주엔 부산 갈게요." 그가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10월 30일 새벽 노씨의 어머니는 불안한 마음에 "딸 어디야, 혹시 이태원은 아니지?"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답은 없었다. <더팩트>와 만난 노씨 친오빠는 "어릴 때부터 빵 등 집안에 먹거리를 가져다 아파트 1층 벤치에 앉아 있는 할머니들에게 드렸다, 주변사람을 잘 챙겼다"고 전했다.

<광주일보>·<무등일보> 등에 따르면, 박씨는 고향을 떠나 일하면서도 매일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하던 정 많은 딸이었다. 일찍부터 간호조무사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그는 스스로 학비를 마련해 전남지역 대학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동기 노씨와 이태원을 찾은 그는 참사 후 병원으로 옮겨져 하루를 버텼지만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유족은 평소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박씨의 뜻을 따르려고 했으나 압사로 인해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한 달 전 딸과 여행을 갔었다는 어머니는 "(여행지에서 딸이) '취업하면 우리 더 행복하게 살자, 내가 더 잘할게'라고 약속했다"고 말하며 흐느꼈다.

심아무개(27·남) : < BBC > 등에 따르면 심씨는 운동과 스키, 서핑을 좋아하는 건장한 청년이자, 그의 동생에겐 "최고의 형"이었다. 여유가 될 때마다 웨이트 운동을 즐겨했다. 고인의 절친한 친구는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나를 모든 장소에 초대하고 함께 태권도를 시작하도록 격려했다."

OOO(27·여) : <국제신문>·<부산일보>에 따르면, 부산에서 2년가량 간호사로 일하던 그는 지난 3월 서울 치과에 취업했다. 사고 당일에도 회사 동료 5명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편의점에 가기 위해 무리에서 이탈한 사이 인파에 휩쓸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삼촌은 "평소 쾌활했다. 이런 사고를 당할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김아무개(29·남) : <광주일보>·<뉴시스> 등에 따르면, 김씨는 이제 막 꿈을 펼치려던 의지의 청년이었다. 국가공인자격증 중에서도 취득이 어렵다는 토목기사 자격증을 따낸 그는 지난 8월 유명 토목회사에 취직하며 감리자로 현장 배치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취업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과 이태원에 모인 그날, 김씨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전날까지 아들과 안부를 주고받은 부모님은 참사 당일 아들에게 수백 통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서야 아들의 번호로 온 전화에선 경찰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운구차 앞에서 어머니는 "◯◯아 가지마, 엄마는 널 못 보내겠어"라며 오열했다.

김아무개(29·남) : <경인일보> 등에 따르면 김씨는 참사 당시 주변 사람들의 공간을 확보해주려다 미처 피하지 못해 사고를 당했다. 김씨의 친구는 "장난기가 많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그의 어머니도 "집에서는 무뚝뚝할 때가 많지만 때론 친구처럼 때론 남편처럼 정말 든든한 아들이었다"고 전했다.

OOO(29·여) : <뉴스1>·<뉴시스> 등에 따르면 그는 이태원 근처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인파에 휩쓸려 화를 당했다. 야식을 사러 편의점에 간 길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부모 속을 한 번 썩인 적 없고 직장도 좋은 데 다닌 딸"을 잃었다. 아버지는 딸의 남자친구를 장례식장에 처음 봤다. 아버지는 "내가 평소 말한 대로 좋은 남자를 만났다"며 "(결혼하면) 좋게 잘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라며 울먹였다.

<오마이뉴스>에 이태원 희생자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으신 분은  record1029@ohmynews.com으로 메일 부탁드립니다. 
#이태원 참사 #158명 #희생자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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