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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레슨에 공 줍는 시간까지 포함된 이유

누군가는 시간 아깝다고 하겠지만... 그만두더라도 가장 기억날 순간

등록 2022.11.30 22:04수정 2022.12.0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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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편집자말]
테니스 수업 시간은 크게 공을 치는 시간과 공을 줍는 시간으로 나눌 수 있다. 수업이 시작되면 선생님이 던져주시는 공을 라켓으로 쳐낸다. 자세가 잘 못 됐을 때는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다시 공을 친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내가 친 공이 바닥에 백 개도 넘게 굴러다닌다. 백 개가 뭐람. 몇 백 개는 될 거다.

공 줍는 시간도 아까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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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공 카트 테니스 공은 항상 이동이 가능한 카트에 이렇게 담겨있다. ⓒ 김지은

 
내가 친 공이니 내가 치우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처음 강습을 받을 때는 수강생이 혼자 그 공을 다 치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선생님도 함께 공을 치우신다. 바닥의 공들을 라켓 위에 가득 올린 후 공이 담겨 있던 카트에 와르르 쏟는다. 공을 좀 더 쉽게 치우는 삽처럼 생긴 도구도 있다. 그 도구를 쓰레받기처럼 바닥에 대고 라켓을 빗자루인양 공을 쓸어 담아 카트로 옮긴다.

30분 강습 시간 중 26분은 레슨을 받고 4분은 공을 치운다. 나에게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고 가르치던 선생님이 나와 똑같은 동작을 하는 시간. 레슨 시간 중 유일하게 실력 차이가 나지 않는 이 시간이 참 정겹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테니스를 배울 때, 앞 타임 사람이 정리를 늦게 해서 내 수업 시간까지 늦어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공을 치우는 시간을 제외하면 레슨 시간이 17분 정도밖에 되지 않아 늦어지는 그 1, 2분이 정말 아까웠다.

코트 밖에서 팔짱을 끼고 '아휴, 좀 더 빨리 공을 치우지. 너무하네'라고 생각하며 짜증스런 눈빛을 쏘아댔다. 지금 다니는 테니스 코트장에서는 내가 공을 치울 때 내 뒷 타임 사람도 함께 공을 치워준다. 처음에 얼마나 놀랐던지.

그 일을 경험한 후, 나도 테니스 코트장에 조금 일찍 도착하면 내 앞의 사람이 친 공을 함께 치운다. 그전에는 왜 남 탓만 하며 움직이지 않았는지 부끄럽다. 공을 치우며 "감사합니다"와 "네"가 오고 가는 짧은 순간, 마음이 따뜻해진다.

내 지인은 테니스 강습을 할 때 공 줍는 시간이 싫다고 했다. 몇 분 되지도 않는 수업 시간에 단순 노동인 공 줍는 시간까지 포함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공 줍는 시간이 좋다.

테니스를 그만둬도 생각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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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공 치우는 요령 수험 후 공을 정리할 때는 테니스 라켓 위에 담아 옮긴다. ⓒ 김지은

 
테니스가 붐인 요즘, 선생님의 스케줄은 빈틈이 없다. 다행히 공을 친 다음에는 공을 줍는 시간이 있다. 공을 줍는 일은 손이 하는 일이다. 손으로 공을 주우며 입으로 궁금했던 걸 묻고 귀로 선생님의 대답을 듣는다.

"선생님은 어쩌면 제 공 하나하나에 다 피드백을 주세요? 동체 시력이 뛰어나신가 봐요"라는 진심 어린 아부성 질문부터 "상체가 계속 흔들리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는 자세 교정에 대한 질문, 주말에 나갔던 대회 결과는 어땠냐는 사적인 질문도 한다. 선생님도 손으로 공을 치우며 입으로는 성심껏 대답해주신다. 난 가끔 답이 정해진 질문도 한다.

"선생님, 저도 언젠가는 잘할 수 있겠죠?"

선생님의 대답은 역시 내 예상을 비껴가지 가지 않는다.

"그럼요, 시간을 이기는 건 없어요."

난 예상한 대답을 들었음에도 그 말에 힘을 얻고 공을 열심히 줍는다. 오늘은 공을 줍는데 선생님이 이러신다.

"코트 뒤에 떨어진 공이 6개밖에 안 되네요. 그건 헛스윙을 거의 안 하셨다는 거예요."
"어머, 그런가요?"
"공을 주울 때 어디에 공이 얼만큼 떨어졌나를 보고 내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알 수 있어요. 네트 앞에 공이 떨어진 건 공이 네트를 넘기지 못했다는 거죠. 사실 공이 네트를 넘기는 게 제일 중요해요."
"아하하.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난 네트 앞에 한가득 떨어져 있는 테니스 공을 모으며 대답했다. 공을 기계적으로 줍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 실력 체크도 할 수 있다니, 공 줍는 시간의 또 하나의 유익이다. 레슨 시간에 공을 줍는 시간까지 포함된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만약 내가 지금 테니스를 그만둔다면 테니스 라켓을 열심히 휘두르던 장면이 아니라 선생님과 공을 줍던 장면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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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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