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노무현 탄핵 관련 변호인단으로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49] 야권은 탄핵이란 핵폭탄을 꺼내들었다

등록 2022.12.01 15:26수정 2022.12.01 15:26
0
원고료로 응원
a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의 첫 공개변론이 열린 지난 3월 30일 오후 헌법재판소 대법정에서 국회소추위측(왼쪽)과 노대통령변호인측이 재판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의 첫 공개변론이 열린 지난 3월 30일 오후 헌법재판소 대법정에서 국회소추위측(왼쪽)과 노대통령변호인측이 재판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진성철

 
짧은 재조생활을 마치고 다시 재야의 '본업'으로 돌아왔다. 변호사는 임기도, 정년도 없는 일종의 자유업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법무법인 '광장'의 일원이 되었다. 강남 포스코 빌딩에 사무실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법조계의 원로 축에 끼게 되었다."면서 변호사의 일선 업무와는 거리를 두면서 활동하였다. 그의 <연보>에 나오는, 감사원장 퇴임 이후의 주요 활동상이다. 

1999년
9월 감사원장 정년퇴임.
10월 청조근정훈장 서훈. 우리말 살리는겨레모임(대표 이오덕)에서 '올해의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뽑힘.
11월 법무법인 '광장' 고문변호사 취임.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초빙교수(저작권법).
12월 제1회 인제인성대상 수상.

2000년
10월 <법이 있는 풍경>(일요신문사) 출간.

2001년
2월 전북대학교 발전후원회 회장.
3월 LG칼텍스가스 사외이사. 한국디지털위성방송(주) 고문.
4월 정일형 이태영 자유민주상 수상.
5월 3남 규훈의 조지아 주립대학 언론학박사 학위수여식 참석.
11월 한국인권문제연구소(재미) 인권상 수상.
12월 청암 송건호 선생 사회장 장래위원회 위원장.

2002년
4월 제3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4월 환경재단 고문.
5월 <내 마음 속의 그들>(범우사) 출간.

2003년
3월 제2차 북한 방문.
5월 <역사의 길목에서>(나남) 출간.


2004년
3월 SBS 시청자위원회 위원장.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 대리인단에 참여.
4월 한국외국어대학교(학교법인 동원육영회) 이사장 취임.
6월 <신민객담-한승헌 변호사의 유머산책>(범우사) 출간. (주석 1)

변호사의 송무(사건 수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던 그가 다시 법조 현장에 복귀하게된 사건이 발생했다. 김대중에 이어 노무현에게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를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야권은 탄핵이란 핵폭탄을 꺼내들었다.

한나라당과 분당상태의 여권 일부 의원들이 탄핵안에 서명했다. 국회의원 159명은 3월 9일 탄핵안을 국회에 발의하고, 12일 오전 국회에서 경위권을 발동한 가운데 탄핵안을 처리했다.

탄핵 이유는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을 하며 공무원의 선거중립을 규정한 공직선거법을 위반하였다는 것과 또한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것은 대통령의 국민투표의결권의 위헌적 행사에 해당되어 헌법수호 의무 위반이라는 것이다. 국회에서 의결된 탄핵안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국회는 탄핵안을 의결하고 지체없이 소추위원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김기춘을 통해 소추의결서의 정본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여 노무현에 대한 탄핵심판을 청구했다. 소추위원의 대리인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소속 의원 67명이 선임되었다. 한나라당 소속에는 강재섭ㆍ홍준표ㆍ황우여ㆍ박희태ㆍ원희룡ㆍ정형곤ㆍ안상수ㆍ김용균ㆍ최병국 의원 등이, 민주당 소속 의원은 박상천, 이용삼, 함승희ㆍ추미애 의원 등이 포함되었다.

노무현 측은 다시 변호사를 개업한 문재인이 중심이 되어 재야 법조인들을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변호인에는 유석현ㆍ한승헌ㆍ하경철ㆍ이용훈ㆍ이종왕ㆍ박시환ㆍ양삼승ㆍ강보현ㆍ조대현ㆍ윤용섭ㆍ김덕현ㆍ문재인 등이 선임되었다.

대통령은 내게 탄핵대리인단 구성을 비롯해 법적 대응 전반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대리인단을 구성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우리가 갖출 수 있는 최고의 진영이었다. 대리인들은 중립적이면서 명망과 실력을 두루 갖춘 분들을 모시기로 했다.(…) 처음 모였을 때 회의 분위기는 자신감과 사명감으로 충만했다. 우리가 법적으로 제대로만 하면 반드시 이긴다고 확신했다. 다수당의 숫적 횡포일 뿐, 법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탄핵이었다. 민의를 거스른 다수당의 쿠데타였다. 민주 헌정의 위기였다. 그런 일을 바로잡지 못하면 우리 헌정의 앞날이 암울해 질 것이었다. (주석 2)

'탄핵정국'은 요동치고 있었다. 탄핵을 주도한 야당과 족벌신문, 원외 보수세력은 총궐기하다시피하여 헌법재판소를 압박했다. 반대로 광화문에서는 연일 저녁이면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벌어졌다. 노무현 측은 문재인이 동분서주하면서 구성한 변호인단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변론을 준비했다.


주석
1> <한승헌 연보>, <자서전>, 412~113쪽.
2> 문재인, <문재인의 운명>, 295~29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승헌 #시대의양심_한승헌평전 #한승헌변호사평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우리말의 감칠맛>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4. 4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5. 5 김종인 "윤 대통령 경제에 문외한...민생 파탄나면 정권은 붕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