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사망일시 '10월 30일 00시 00분'... 고려인 희생자 가족의 눈물

[이태원 희생자 김옥사나 이야기] 가족과 연인, 반려묘가 기억하는 25세 청년의 삶과 꿈

등록 2022.12.01 09:50수정 2022.12.01 09:50
5
원고료로 응원
a

이태원 참사 외국인 희생자인 고려인 고 김옥사나씨의 사진 ⓒ 이희훈

 
10월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영상 속에는 앰뷸런스 6대가 줄지어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 사이로 실종자를 찾는 사람들의 애타는 모습도 드문드문 보였다. 영상은 이태원 참사 고려인 희생자 고 김옥사나(25)씨의 사촌언니 김오리아나(29)씨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옥사나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촬영한 것이었다.  

당시 오리아나씨는 병원 입구에 서서 사촌동생의 소식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실종 소식을 접한 10월 29일 오후 11시 45분께부터 다음날 동틀 무렵까지, 내내 눈앞이 캄캄했다.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나', 답답한 상황 속에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한국어가 서툰 그는 이튿날 새벽 5시쯤 현장에서 만난 한 기자로부터 '실종자 접수부터 하라'는 조언을 듣고, 한남동 주민센터를 찾아 실종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날 정오쯤 경찰에서 옥사나씨가 사망했다는 전화가 왔다. 옥사나씨는 참사 현장으로부터 20여km떨어진 서울 강동구의 한 병원에 누워있었다. 병원에서 발급한 사망진단서에는 사망 일시가 '2022년 10월 30일 00시 00분'으로만 기재돼 있었다. 사망한 장소는 '도로'였고 직접 사인은 비의도적 사고에 의한 질식이었다. 핼로윈을 맞아 이태원에 함께 갔다가 사고를 목격한 옥사나씨의 친구에 따르면, 군중 속에서 넘어진 고인은 구출된 뒤 도로 위에서 심폐소생술을 40분가량 받다가 1시간여 뒤 병원으로 이송됐다.

오리아나씨는 영안실에서 사촌동생의 마지막 얼굴을 확인한 순간 끝내 오열했다. 이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두 눈으로 직접 본 동생의 죽음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안전한 나라라고 믿었는데..." 
 
a

이태원 참사 외국인 희생자인 고려인 고 김옥사나씨가 살던 원룸 모습. ⓒ 이희훈

 
서울에서 직선 거리로 약 930km. 러시아 연해주 지역인 스파스크달니(아래 스파스크)에 고인의 가족들이 4대째 살고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 경계를 지나는 항카 호수 인근인 스파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 우수리스크 다음에 정차하는 지역이다. 일제강점기 한인 독립운동가들이 주둔한 기록도 남아 있다. 

지난 11월 24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아버지 김이고리(56)씨는 막내딸의 죽음을 "지금까지도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장례를 치른 후에도 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딸이 4년 전 설렘 가득한 얼굴로 언니와 사촌언니가 먼저 가 있는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버지는 걱정하지 않고 믿었다고 했다. "한국은 굉장히 발전한 나라고, 안정적이며, 위험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다.

책임감 강하고 누구에게나 잔정이 많은 아이였기에 "걱정 없는 딸"이었다. 이고리씨는 "언제나 자기 일부터 다 하고, 가족이며 친구며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던 아이였다"며 "(그래서 한국으로 간다는 이야기에) 걱정하지 말고, '마음을 열어 놓고 가서 봐라' 했다"고 회상했다. 옥사나(Оксана), '친절함'이라는 이름 뜻 그대로 김옥사나씨는 가족과 친구, 연인, 이웃들 모두에게 다정했던 사람이었다.

"내 인생의 전부, 사랑스러운 막내딸" 
 
a

이태원 압사 참사 외국인 희생자인 고려인 고 김옥사나 가족 ⓒ 이희훈


고인이 한국에서 터를 잡은 곳은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의 한 원룸촌. 옥사나씨와 같은 고려인 7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마을에 사는 고려인 중 20~30대가 3000여명(약 44%, 2019년 고려인지원단체 너머 조사 통계 기준)에 이를 정도로 청년 고려인들의 삶과 꿈이 모여 있는 곳이다.

휴대전화 판매점에 일자리를 잡고 한국 생활을 시작한 옥사나씨는 고국에 있는 부모님께 만큼은 힘든 내색 하지 않았던 속 깊은 딸이었다. 아버지는 "막내라 애교도 많고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였다"면서 "요만할 때부터 낳아 길러 지금까지, 내 인생의 전부였다"고 했다.
 
a

고 김옥사나씨(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어린시절. 형제자매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유족 측 제공


다섯 살 터울인 언니 김엘레나(30)씨는 서울의 한 식당에서 바쁘게 일하면서도 동생과 함께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언니는 동생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는 "내게는 마치 꽃처럼 예쁜 동생이었다. 누구와도 다툼 없이, 싸움을 해도 화 한 번 내지 않고 잘 다독이는 사람이었다"면서 "원 없이 자기 인생을 사랑하고 즐기고 싶어했던 아이였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옥사나씨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눈을 마주보며 밝게 웃었다. 아버지는 "옥사나가 학교를 다닐 때 같은 반 애들은 언제 옥사나 생일이 오나 기다렸다. 인기가 많았다"며 웃어 보였다. 사촌언니 오리아나씨도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절대 그냥 넘기지 않고 도왔다"고 했다.

'연인 옥사나'를 기억하는 남자친구 예고르(27)씨는 "밀당(밀고 당기기) 같은 건 모르는, 솔직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모든 것이 좋았다"고 했다. 고인이 생전 일을 처음 시작하며 부닥쳤던 어려움도 이야기했다. 그는 "옥사나의 잘못이 아닌데도 대신 욕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힘들다고 했다"면서 "그래도 책임감 있고 성실하게 지내면서 손님과 관계도 좋아지면서 그렇게 일했다"고 말했다.

예고르씨는 참사 다음날부터 자신의 SNS에서 옥사나를 추모해왔다. 원룸 방 한편에서 장난스럽게 탱고를 추는 모습과, 드라이브 중 음악을 틀어 놓고 함께 목청껏 노래를 불렀던 추억들을 기록해뒀다. 그는 지난 10월 31일 글에서 연인을 잃은 슬픔을 이렇게 털어놨다. 

"그녀가 할머니와 만났을지, 신과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그녀가 천국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순수하고 친절하고 밝은 사람. 그런 그녀에 대해 나쁘게 말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맹세컨대, 제 세상이 무너졌습니다."

옥사나의 꿈은 '잘 사는 것'이었다. 언니 엘레나씨는 "옥사나는 결혼해 가족을 이루고, 모두와 함께 잘 사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이젠 책임을 물어야할 때"
 
a

이태원 압사 참사 외국인 희생자인 고려인 고 김옥사나씨의 아버지 김이고리씨 ⓒ 이희훈


"미래를 위해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가던 아버지는 '옥사나 죽음 이후'의 당부를 전할 때만큼은 글자마다 힘주어 이야기했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책임 있는 사람들이 꼭 책임을 져야 한다"는 호소였다. 참사 초기 관료들의 책임 회피성 발언과 행적에 함께 분노했다.

이고리씨는 "왜 본인들의 일을 똑바로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나. 사람이 너무 운집하면 넓은 곳으로 유도하거나 경찰을 투입해 통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문제제기를 시작한 사실에 대해서도 "같이 목소리를 모을 수 있다면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스파스크에서 버스 운전을 하는 이고리씨는 지난 11월 16일 딸의 주변을 정리하러 잠시 한국을 찾았다가, 지난 25일 다시 연해주 집으로 돌아갔다. 행정 처리와 나머지 정리 등을 위해 조만간 다시 입국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방과 방이 분리된 7평 남짓의 방 안에는 아직 고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침대맡에는 옥사나의 증명사진과 함께 "사랑한다"는 연인의 글귀가 걸려 있었다. 고인이 2년 전 지인으로부터 데려온 반려 고양이 솔로몬은 인터뷰 내내 방을 가로지르며 돌아다녔다.
 
a

이태원 압사 참사 외국인 희생자인 고려인 고 김옥사나씨의 반려묘인 솔로몬은 그녀의 유품 주변을 한참 맴돌며 냄새를 맡았다. ⓒ 이희훈

 
a

이태원 압사 참사 외국인 희생자 고려인 고 김옥사나 가족 ⓒ 이희훈

 
유실물 센터에서 찾은 옥사나의 유품은 부츠 한 켤레와 검은 책가방 속 <셜록 홈스의 모험> 책 한 권이 전부였다. 예고르씨가 물건들을 바닥에 내려놓자 사방팔방 뛰어다니던 솔로몬이 유품 냄새를 한참 맡으며 서성이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버지는 그 모습에 슬프게 웃었다.

인터뷰를 마친 후, 가족들은 옥사나씨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아버지는 늘 가족 걱정부터 앞섰던 막내딸에게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다 괜찮다"고 했다. 언니는 '천사가 되어달라'고 했다. "엄마, 아빠 걱정 말고 평화롭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길 바란다"면서. 참사 당일, 마지막 흔적을 찾아다녔던 사촌언니 오리아나씨는 눈물을 터뜨리며 말했다. 

"내가 너무나 슬픈 것은, 지금 네가 내 곁에 없다는 거야."
 
a

이태원 압사 참사 외국인 희생자인 고려인 고 김옥사나 가족과 연인. 왼쪽부터 사촌 김오리아나, 언니 김엘레나, 아버지 김이고리, 연인 예고르. ⓒ 이희훈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AD

AD

인기기사

  1. 1 "'빌라왕'에 속고, 공인중개사에 속고... 인생 망했죠"
  2. 2 "나경원 털었던"... 그 검사 5명이 지금 하는 일
  3. 3 김만배와 8명의 법조팀장들, 그들이 모두 거쳐간 '이곳'
  4. 4 이 많은 '미친 여자'들을 어떻게 모았냐고요?
  5. 5 "난방비 폭등은 문재인 정부 탓" 국힘 주장 '대체로 거짓'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