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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드로잉을 배우고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새롭고 특별한 순간으로

등록 2022.12.06 08:58수정 2022.12.0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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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 도서관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어반드로잉 수업이 있었다. 선물받은 내년도 탁상 달력애도 어반드로잉 그림이 실린 걸 보면 어반드로잉은 요즘 취미 그림으로 대세인 것 같다. 그림을 배우고 싶어 하던 나는 이번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신청하게 되었다. 총 10주 동안 목요일마다 2시간씩 수업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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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드로잉 재료 수패화지, 고체 물감, 펜, 수채화 붓, 휴대용 물통 등 ⓒ 임명옥

 
첫 수업시간에 서양화를 전공하신 선생님은 다른 지역에서 수업하는 수강생들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오래된 간판이 걸려 있는 가게 그림, 항아리가 잔뜩 쌓여 있는 장터 풍경, 녹슨 대문과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담장 그림들이 화면 속에서 정겹고 따스했다.


어반드로잉은 어반스케치라고도 불리는데 보통 도시나 마을 풍경 혹은 여행지의 풍경을 펜화나 수채화, 연필화로 직접 현장에서 보고 그리는 작업을 일컫는다고 한다. 8명의 수강생이 모여 처음에는 펜으로 스케치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 다음에는 수채화로 칠하는 방법을 배웠다. 펜은 피그먼트 라이너 0.1mm를 사용했고 물감은 휴대용 12색 고체 수채화물감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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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린 어반드로잉 처음 그린 건물 스케치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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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그린 건물 어반드로잉 펜드로잉과 수채화로 그린 어반드로잉 ⓒ 임명옥

 
도시나 마을의 풍경 속에는 건물이 많이 보이는데 건물을 그리기 위해서 2점 투시를 배웠다. 2개의 소실점으로 3차원의 공간감을 표현하는 게 2점 투시이다. 2점 투시를 배우고 단톡방에 선생님이 올려 놓은 사진 속 건물 그림을 그려보았다. 왼쪽 끝과 오른쪽 끝에 보이지 않는 소실점을 만들고 건물을 그리는데 쉽지 않았다. 보이는 건물과 내 손이 따로 노는 것 같았다.

나를 비롯한 수강생 여덟 명은 모두 다 비슷하게 그렸는데 초보자들의 그만그만한 스케치를 본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 주었다. 꼼꼼하게 사진을 관찰하고 신중하게 펜을 움직여 그려 나갔다. 출입문이 살짝 열려 있고 어두운 창문 안쪽에 흐릿한 사물들까지 자세히 표현되고 있었다. 

우리는 선생님이 만들어내는 디테일에 숨을 죽이고 혹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구경을 했다. 그리고 배워나갔다. 부분부터 자세히 관찰하며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스케치를 해야 살아있는 그림이 되는 거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같은 건물을 반복해서 여덟 번 그려보았다.

그 다음에는 수채화에서 번지기를 배웠다. 물감에 물을 얼마만큼 섞는지, 색을 어떻게 배합하는지, 붓으로 물감칠을 할 때는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이 정성을 다해 칠해 나가는 것도 배웠다. 선생님이 그리는 과정을 지켜보고 집에 와서 연습을 했다. 부분에서 전체로 자세히 관찰하며 펜드로잉을 했고 색을 입힐 때는 물을 얼마큼 써야 하는지 색을 어떻게 배합할 건지 생각하며 그렸다. 

색칠하는 과정이 끝나고 선생님은 우리에게 동네 사진을 몇 장 찍어오라는 숙제를 냈다. 지역의 특징을 담은 일상의 풍경을 그리고 싶어 나는 망루를 찍어 갔다. 우리 동네 망루는 한국 전쟁 당시 지역을 지키기 위해 1951년 돌과 시멘트를 섞어 축조된 것으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2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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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망루 사진 우리 지역 망루 ⓒ 임명옥

 
높이 10미터인 망루는 팔각지붕을 이고 있는데 망루의 몸통은 위와 아래쪽이 달라서 그리는 게 쉽지 않았다. 어반드로잉은 펜으로 그리기 때문에 지우개로 지울 수 없어 그리기 전에 연습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며 선을 그어야 한다. 안 그러면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오래 관찰해야 잘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가르침을 떠올리며 망루의 돌과 단풍 몇 개, 뒤에 있는 건물 외벽 마감재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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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망루 펜드로잉 색 칠하기 전 펜드로잉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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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망루 어반드로잉 펜드로잉과 수채로 그린 어반드로잉 ⓒ 임명옥

 
마지막 수업까지 5명이 남았는데 우리는 마지막 시간에 각자 그린 그림을 액자에 걸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끼리 전시회를 한 거나 다름 없는데 수채화지 그림과 액자에 들어간 그림은 다른 느낌이었다. 30대에서 60대까지 나이와 직업이 다 달랐던 우리 수강생들은 서로가 서로의 그림을 보며 자극을 받고 응원도 해 주며 10주 동안 어반드로잉을 재미있게 배웠다. 혼자보다는 같이, 하나보다는 여럿이 모여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느꼈다. 


선생님의 밀도 있는 수업과 정성을 다한 그리기 시범을 통해 또한 많은 것을 배웠다. 좋은 작품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간과 정성을 들인 연습 과정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어반드로잉을 통해 나는 일상의 풍경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되어 낡은 시멘트 블록 담장과 녹슨 대문과 도시가스 배관이 새롭게 보였다. 전봇대와 전깃줄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살펴보게 되었다.

어반드로잉은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케 해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특별한 것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일상의 평범함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지게 해 주는 것 같다. 새해에도 나는 어반드로잉을 통해 평범한 일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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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골목길 어반드로잉 ⓒ 임명옥

덧붙이는 글 제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어반드로잉 #어반스케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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