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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도 100%... 축구하는 초등 아이들 모습에 '뿌듯'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③] 아이와 교사, 지지고 볶는 사이

등록 2022.12.22 12:08수정 2022.12.2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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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 개봉(2023년 1월 12일)을 앞두고, 필수 노동이자 그림자 노동의 영역에서 고군분투 해 온 마을 방과후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심을 다해 일하고 계신 필수 돌봄 노동자들의 수고와 존재를 알리고자 8편의 기획기사를 준비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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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다큐 속 한 장면. 마을에는 아이들이 놀 공간이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놀 자리를 만들어 논다. 도토리 마을 방과후가 자리한 건물 주차장이 낮 동안에는 놀이터가 된다 ⓒ 박홍열


네이버 어학사전에 '교사'를 검색하면 "학교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좀 더 덧붙이면, 교사는 다양한 형태와 모양으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인 것이다. 특히 초등시기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만나는 교사는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교사는 아이들이 학교라는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때 도움을 주는 길 안내자가 된다.

그렇다면 도토리 마을방과후에서 아이들은 교사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당연히 국영수 과목을 가르치지 않으니 시험성적과는 무관하고, 미술, 태권도, 피아노처럼 예술수업을 가르치지 않으니 눈에 띄게 어떤 실력이 향상 되는 것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 주 5일을 지내고, 하루의 절반을 터전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터전에서 무엇을 배우니?"라고 질문하면 무슨 대답을 할까? 아이들은 쉽고 간단하게 "우린 놀아"라고 간단히 답할 것 같다. 아마 대다수가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맞다. 아이들이 생각하기에 터전은 매일 노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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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다큐 속 한 장면. 마을 방과후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놀기에 진심이다. 온 힘을 다해 줄다리기를 했지만 교사가 속한 팀이 졌다. ⓒ 박홍열


이제는 교사인 나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관계교육과 생활교육을 해"라고 답할 것 같다. 아마 공동육아를 생소하거나 낯선 분은 내 대답이 엄청 난해하게 들릴 수 있겠다. 도대체 관계와 생활교육이 무엇인가? 조금 더 설명을 하면 교사들은 아이들이 터전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갈등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살펴보며 도움을 준다.

또한 아이들이 스스로 주체적인 사람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하고, 학년연령성별이 섞인 다양한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지내는 방법을 배운다. 뭔가 거창하지만 사실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관계와 생활을 배우는 곳으로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역할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처럼 관계와 생활 중심의 교육은 아이들과 교사 서로 간에 편하고 친근하게, 더 가깝게 만들어 줬다. 소소한 대화를 언제든지 나누고,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다가와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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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다큐 속 한 장면. 마을 방과후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가 있다. 단오날이면 씨름대회를 한다. 장원 경품이 무려 한우! 1학년 아이들이 생애 첫 씨름 경기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다. 심판을 보는 교사도 진지해진다. ⓒ 박홍열

 
우리들의 관계는 긴장감은 사라지고, 장난치며 웃고 떠들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본인의 내면을 가면으로 치장하고 애써 다른 사람인 것처럼 할 필요도 없다. 우리들은 딱딱한 책상 앞에서 만나는 관계가 아닌 방구석에서 대화를 하는 관계인 것이다.

아이들은 보잘것없는 내게 마음을 내어 준다. 때로는 말썽을 너무 피우고, 친구들과 계속 싸우고, 함부로 말하는 아이들 때문에 속상한 날도 많지만, 어느새 감정을 풀고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기쁜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이렇게 몇 년 동안 나는 아이들과 '정'이 들었나보다. 이 '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붙들어 놓는 것 같다. 도토리마을방과후는 통합으로 지내서, 공교육 학교처럼 1년만 보고 헤어질 수 없는 곳이다. 말 그대로, 지지고 볶는 우리 사이.   아이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논두렁 축구하러 가자!"이다. 몇 분 전에 나한테 혼났으면서 축구를 가자고 온갖 애교를 부린다. 그러면 나는 못 미더운 척 또 "애들아 짐 챙겨, 축구하러 가자. 애들 모아~"라고 말한다. 그렇게 나는 또 남자애들을 우르르 몰고 삼단공원 혹은 딸기놀이터로 나간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삼단공원으로 가는 언덕 을 수 백 번은 넘은 것 같다. 공원으로 이동하는 길에 고학년들도 어릴 적 윗 학년들에게 챙김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는 것일까? 차가 오면 뒤를 돌아보며 동생들을 안전하게 인도한다.  

축구 경기가 시작되면 나는 마치 감독과 심판이 된 것처럼 아주 열심히 구경한다. 옆에서 호응도 하고 어떨 때는 아이들 축구경기에 내가 더 몰입하는 것 같다. 뭔가 경기가 뜻대로 안 풀리면 옆에서 "패스 주고 뛰어야지, 1:1찬스에서는 골키퍼가 앞으로 튀어나와야지" 등 온갖 말을 다한다.


몰입도 100%. 축구를 구경하다보면 1,2학년 저학년들이 형님들 공 뺐겠다고 이리 저리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귀여운지 모른다. 또 고학년들은 저학년들에게는 공을 살살 차고, 패스도 제법 많이 한다. 동생들이 실수를 하면 괜찮다고 다독이며 격려하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축구를 모두 마친 뒤 고학년들이 동생들을 잘 챙겨서 "너희들 정말 대단하고, 멋지고 착하다"라고 칭찬을 하였다.

그런데 이 말에 마냥 어린아이처럼 아이들이 "아자, 칭찬 받았다 신난다"라는 답하는 게 아닌가. 몇 년 전만에 해도 승부욕이 흐르고 넘쳐 논두렁의 판정을 인정하지 못해서 "논두렁은 빠져"라고 말하던 너희들이! 이렇게 멋진 남아들로 성장하다니 대단함을 느꼈다. 그뤠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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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방과후 활동_ 동아리 축구 동아리 아이들이 마을 삼단공원에서 축구하기 전 준비 운동을 하고 있다. 교사도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축구 동아리 안에서 같이 뛰고 논다. ⓒ 도토리 마을 방과후

 
축구동아리를 처음 시작 할 때는 무슨 성미산 마을 동네 장난꾸러기 다 모아 놓은 '정글의 세계'인 줄 알았었다. 막막했었다. 대화가 전혀 안 통하고, 본인 말만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잘 어울리는 방법을 논의하고, 어떻게 하면 같이 재밌게 놀지 논의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전히 자주 싸우기는 하나 승부욕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운 것 같다.

나는 느낀다. 축구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는 분명 처음과 달라져 있었다. 대화하고, 함께 조율하고 고쳐나가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한 것 같다. 아이들이 성장하며 커나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시간, 그 자체가 계속 아이들을 만나도록 이끄는 것 같다. 가끔 나는 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곳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맛'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이건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맛'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 기억 속에 나는 어떤 교사일까? 재미난 교사? 놀이를 알려주는 교사? 그건 잘 모르겠다. 나는 시간이 흐른 뒤 아이들이 초등시기 땀 삐질삐질 원없이 흘리며 신나게 놀았던 기억들을 "아 그때 진짜 재밌게 놀았었는데"라며 추억으로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인생에 큰 어려움을 마주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너희들을 믿어줬던 어른이 너희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큰 장애물도 뛰어넘었으면 좋겠다.

그거 알아? 논두렁은 매년 말썽꾸러기 너희들 졸업시키는 걸 목표로 간간이 버티며 살아간다는 것을 말이야. 이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 내가 일할 수 있는 이유야. 애들아. 정신 풀어 헤치고 졸업하는 그 날까지 재밌게 놀아보자!

글_손요한(별명:논두렁)
노는 거라면 자신 있고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뛰어 노는 것이 좋아서 매일 뭐하고 놀지 궁리합니다. 전)도토리 마을방과후 사회적 협동조합/ 교사, 현)키움센터/ 돌봄 교사
#돌봄 #노동 #교육 #육아 #방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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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거라면 자신 있고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뛰어 노는 것이 좋아서 매일 뭐하고 놀지 궁리합니다. 전)도토리 마을방과후 사회적 협동조합/ 교사, 현)우리동네키움센터/ 돌봄 교사. 놀이교육 강사로도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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