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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김이나, 이슬아와 작업한 '이 사람'의 노하우

[인터뷰]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 16년 차 책장수가 말하는 편집자의 모든 것

등록 2022.12.29 10:21수정 2022.12.2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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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맞춤법 고치는 사람 아냐?"

편집자에 대한 흔한 오해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편집자라 하면 안경을 쓰고 책상 앞에 앉아 하루 종일 교정지를 보는 정적인 모습으로 묘사되기 부지기수다. 그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있는 한 편집자가 있다. 


이슬아의 <가녀장의 시대>,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우크라이나 작가와 한국의 편집자가 직접 소통하여 완성해낸 생생한 기록물) 등 올 한 해 파장을 일으킨 책을 만든 출판사 이야기장수의 대표이자 16년 차 편집자 이연실(38)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 대표는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김이나의 <김이나의 작사법>을 포함해 100여 권의 책을 편집했고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흔히 말하는 '잘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해 그는 "언제나 '대중'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 타깃 독자를 조금 넓게 봐요. 그걸 대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들에게 필요한 건 결국 '위로'라고 생각해요. 대중이라는 뭉뚱그린 말로 표현했지만 진짜 한 명 한 명 사는 게 너무 힘들잖아요. 그러다 보니 원고를 결정할 때 이 책이 정말 힘든 이야기라도 '희망'이 있는가를 보려고 해요."

힘듦 속 위로가 있기에, 이젠 편집자의 팬이 되어 그를 믿고 책을 사는 사람들도 생겼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2일 파주 출판단지의 한 카페에서 이연실 대표를 만나 '편집자에 대한 모든 것'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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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는 "편집자는 한 권의 책이 탄생하기까지 모든 산통을 같이 앓는 산파와 같다"고 말했다. ⓒ 이연실

 
"편집자는 책이 탄생하기까지 산통을 같이 앓는 산파"

- 독자들을 위해 편집자가 하는 일을 소개해 주세요.


"편집자는 원고 기획부터 책 출간까지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는데요. 작가를 만나서 원고에 대한 논의를 하고, 완성된 원고가 나오면 교정·교열·편집에 들어가요. 디자이너와 상의해서 표지와 띠지를 만들기도 하고, 제목을 정하는 것도 편집자의 몫이고요. 책 홍보를 위한 보도자료 작성 역시 누구에게도 넘길 수 없는 편집자의 중요 업무예요. 편집자는 한 권의 책이 탄생하기까지 모든 산통을 같이 앓는 산파와 같죠. 

사실 학창시절엔 문예반, 대학에선 국문과를 거치며 소설 작가를 꿈꿨어요. 문학동네 편집부는 작가가 되기 전 잠깐 돈을 벌자는 생각으로 들어간 거였죠. 심지어 관심도 없던 에세이 편집을 맡게 됐어요. 당시만 해도 에세이는 소설에 비해 너무나 작은 장르였다보니 '나는 그냥 회사에서 안 중요한 책을 맡게 되네'라고만 생각했어요. 

입사 한 달 후, 퇴사 생각이 싹 사라질 정도로 에세이 편집에 빠져들었어요. 에세이 시장이 성장하면서 작가 직업군과 소재가 다양해지는 모습을 목격하는 즐거움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편집 일이 얼마나 액티브하고 버라이어티한지 알아가는 삶이 되었죠."

- '나는 또 쓸데없는 일을 하고 올게, 언제까지나.' 출판 이야기를 다룬 일본 드라마 <수수 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에 나오는 대사예요. 이 대표가 좋아하는 대사라 강연에서도 자주 언급하신다고요. 편집일이 실제로 '쓸데없는 일' 취급받은 적이 있을까요. 

"제가 직접 당한 일은 아니지만, 어떤 작가님 인터뷰에서 '나는 편집자가 내 책에 뭔가를 해주길 바라지 않고, 그냥 오타나 안 냈으면 좋겠다'라고 하신 걸 봤어요. 그럴 때 되게 화가 나거든요. 저 역시 편집자의 역할을 몰라주고 협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작가님과는 일을 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책 좋아하는데 작가가 못 된 사람, 창의력이 없는 사람' 이런 인식도 있었어요. '편집도 잘 하시고 책도 한 번 내셨는데 계속 작가로 살고 싶지 않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거든요. 저는 작가가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편집자가 그 밑에서 일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편집자는 굉장한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하고 창의력이 있어야 하는 직업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이 일을 굉장히 좋아하고요."

"요즘은 편집자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나"

- 그래도 최근에 편집자, 그리고 편집 업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 같아요.

"요새는 어떤 편집자가 만든 책이면 읽고 싶다는 분들도 있거든요. 저도 편집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게 느껴져요. 편집자가 되고 싶어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업무에 대해 연구하는 지망생들도 많아요. 협업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편집자를 중요하게 호명해 주는 작가님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요. 이런 면에서는 정말 편집자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 앞으로 어떤 책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저는 타깃 독자를 조금 넓게 봐요. 그걸 대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들에게 필요한 건 결국 '위로'라고 생각해요. 대중이라는 뭉뚱그린 말로 표현했지만 진짜 한 명 한 명 사는 게 너무 힘들잖아요. 그러다 보니 원고를 결정할 때 이 책이 정말 힘든 이야기라도 '희망'이 있는가를 보려고 해요. 희망이 언제나 환상적인 곳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제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합창단인 416합창단의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이라는 책을 만들었는데요. 416합창단원인 예은 어머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아픈 곳을 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곳을 볼 때 이 사회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회가 좀 더 나아가는 그 걸음을 걷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들고 있는 것, 그것들이 그 아픈 자리에 다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라고요. 그래서 저는 중간중간 대중들에게 세월호 얘기나 우크라이나 전쟁 얘기, 이런 것들을 보여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놀랍게도 그런 책을 내면 같이 울어주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게 대중의 힘인 것 같아요."

-'진정한 편집자의 시대'가 오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전 편집자가 고생만 하고 휴식도 없는 이미지로만 비치는 건 거부해요. 하지만 연봉이랄지 여러 조건들이 여전히 굉장히 박한 건 사실이에요. 일본이나 뉴욕 같은 곳에서 편집자는 아주 선망받는 직업이고 대우도 좋아요. 해외처럼 (출판계에서) 사람에 대한 투자가 더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출판은 정말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고, 산업 자체도 너무 작아요. 업계 자체가 크려면 독자분들이 책을 사서 읽어주시는 게 정말 중요해요. 편집자에 대한 가장 큰 지원이기도 하고요. 그러면 언젠가 '편집자 전성시대'도 오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 기자만들기> 수강생이 취재해 쓴 기사입니다.
#편집자 #책 #가녀장의시대 #이연실 #이야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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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강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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