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23 11:15최종 업데이트 23.01.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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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주택 교육기관에서 남편과 동기들이 경량 목조주택 만들기 실습을 하고 있다. ⓒ 노일영

 
경량 목조주택을 짓겠다고 전라북도 임실군에 있는 한 목조주택 교육기관에 등록했지만, 남편은 사교계의 왕자가 된 것처럼 굴었다. 교육은 뒷전이고 입학 동기들과 술자리를 가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종일 아궁이에 불을 때도 꿋꿋하게 차디찬, 지조를 꺾지 않는 구들방. 밖에 비가 내리면 집 안에서도 비에 젖을 수 있는 낭만적인 황토방. 남편이 그동안 만든 집들의 실체는 이렇듯 독창적이라서, 차라리 교육 기간 3개월 동안 친목에만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배워서 집을 짓겠다고 나서면, 결국 애물단지 구조물 하나가 동네의 풍경만 망칠 것이고, 애꿎은 통장의 잔고도 거덜 낼 것이 뻔했다. 그리고 나 혼자서 매일매일 하자를 보수하는 데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었다.

남편의 친목질이 끝난 것은 자의가 아니라 동기들 모두 바빠졌기 때문이다. 20명이 모인 교육생들의 입학 목적은 제각각이었다. 이삼십 대는 목수라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였고, 남편 같은 사십 대 중에도 직업을 바꾸기 위해서 입학한 사람도 있었다.

오륙십 대의 경우는 회사 설립 등 다양한 이유가 있는 듯했다. 다들 이런저런 사연이 있고,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집중해서 교육을 받아야 하니 사교의 세계는 입학 초에 잠시 반짝이다 사그라들었다. 놀아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남편도 경량 목조주택 시공 교육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입학 초기에 학교에서는 경량 목조주택에 관한 이론과 '스케치업'이라는 3D 모델링 프로그램을 가르쳤다. 처음 접해 보는 내용이라 남편은 상당히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특히 머릿속에 있는 집의 구조를 스케치업 프로그램을 통해 3차원으로 구현해 보는 것에 흥미를 보였다. 그럴수록 내 걱정은 커졌다. '이러다 정말 경량 목조주택을 지으려고 덤비는 것 아냐?'

끈기인지 오기인지
 

남편과 내가 만든 흙집 ⓒ 노일영

 
실기 교육이 시작되기 전까지 남편은 좀 거만한 태도로 학교를 다녔다. 이력서에 한옥학교 졸업이라는 한 줄을 적었기 때문이다. 한옥학교 출신이다 보니 동기들은 남편을 대략 '금손'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동기들의 경외와 감탄의 눈길을 즐기는 동안 남편은 자신이 '똥손'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실기 교육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의 하교 시간, 남편은 찢어진 바지와 함께 월세로 살고 있는 투룸으로 돌아왔다.

"바지가 왜 그래?"
"아, 쪽팔려서 이제 학교에 못 갈 것 같아. 나 내일부터 학교 그만둬도 돼?"

"왜 그러는데?"
"오늘 실기 시간에 전동대패 시범을 한번 보이라고 해서. 내가 한옥학교 출신이잖아. 그래서 나무 부재에다 전동대패를 앞뒤로 밀다가 바지가 말려들어 가서 이렇게 다 찢어지고. 진짜 쪽팔려서···. 다들 처음 하는데도 나보다 낫더라고."

"안 다친 게 어디야. 그만하면 다행이네."


사실 남편이 집 짓는 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건 처음이 아니다. 귀농 전에 남편은 강원도의 한 한옥학교에서 5개월 동안 먹고 자며 한옥 시공 교육을 받은 바 있다.

남편이 뜬금없이 한옥학교에 등록한 것은 도시에서 망치 한번 잡아 본 적 없던 터라, 귀농을 작정하니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무작정 한옥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한옥학교에는 목수가 되려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취미로 손을 사용하는 일을 한 사람들도 많았다. 타고나게 엉망인 손을 가진 남편은 한옥학교에서 '고문관'으로 통했다. 끈기인지 오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남편은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버텼다.

남편의 확신
 

목조주택 교육기관에서 남편의 동기들이 경량 목조주택 모형 만들기 실습을 하고 있다. ⓒ 노일영


발에게는 미안하지만, 남편의 손목에 손이 아니라 발이 달린 게 아닌가 의심할 만한 사례도 있다. 한옥학교에는 대팻날 갈기 시험이 있다. 손대패에 끼워서 사용하는 대팻날의 면은 평평하고 예리해야 한다. 그래야 나무의 깎인 단면이 반들반들하다.

만약 대팻날의 면이 울퉁불퉁하고 무디면, 대패가 지나간 자리는 쥐어뜯은 듯이 터실터실해진다. 그래서 두 손으로 균일한 압력을 주고 대팻날을 눌러서 숫돌에다 평평하고 예리하게 갈아야 한다.

이 대팻날 갈기 시험도 꼴찌로 겨우 통과한 남편이다. 동기들은 거의 2~3주 만에 대팻날을 제대로 갈기에 성공했는데, 남편은 1달이 훨씬 넘게 걸려서 시험을 간신히 통과했다. 동기들이 모두 자는 시간에 혼자 화장실에 박혀서 대팻날을 새벽까지 갈았는데도 그 정도면, 남편의 손은 저주를 받은 게 확실하다.

아무튼 남편은 한 달 만에 대팻날 하나를 거의 다 갈아버려서, 대팻날을 하나 더 구입해야 했다. 동기들은 대팻날 하나로 한옥학교를 졸업했는데 말이다. 사실 영화나 소설에서 한 인물이 이 정도로 노력하면, 마지막에는 뛰어난 솜씨를 가진 캐릭터로 변모하게 된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보통 사람들은 웬만큼 노력하면 어느 정도 수준에는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남편이 속한 실제는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듯하고, 그리고 천벌을 받은 손을 탑재한 존재이다 보니, 남편은 아무리 노력해도 똥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

비록 재앙 수준의 손이 한옥학교의 수업을 통해 진보의 단계에 접어들지는 못했지만, 남편이 배운 것들이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혼자서 2달과 보름에 걸쳐서 황토방 하나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천장에서 비가 새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어쨌거나 겉으로 보기에는 제법 그럴듯한 황토방 하나를 만든 것으로 남편은 자신의 손에 걸린 사악한 마법이 풀렸다고 생각한 것 같다.

"경량 목조주택 시공 교육을 받다 보니 더 확신이 생겼어. 졸업하면 바로 집을 하나 짓고 싶어."

함양으로 돌아가 지을 집을 스케치업 프로그램으로 그리며 남편이 내게 말했다. '망했다.' 남편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마법에서 풀린 왕자로 보였겠지만, 내 눈에는 아직 개구리 그대로였다. 내게 남편은 마법에 걸린 개구리 왕자가 아니라, 남의 말을 절대로 듣지 않고 반대로 행동하는 청개구리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함양타임즈>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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