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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갤러리는 없습니다, 빈집이 전시장입니다"

부여 신리 마을 빈집의 'Invaluable-인생수업' 전시회

등록 2023.01.02 09:45수정 2023.01.0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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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하고 자세히 봐야 하고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을 난해하다고 하던가. 흔히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때 작가의 무의식의 흐름과 내면이 어쩌고 하는 평론가의 해석이 있는 작품 앞에서 공감이 되지 않아 난감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설치 미술이라는 분야가 그랬다. 그림과 조각 등 미술의 모든 장르를 뛰어넘기도 하고 통합하고 해체해서 새롭게 하는 예술 행위가 낯설기도 했지만 친근하기도 한 분야이기도 했다. 흔히 볼 수 있고 가까이에 있는 사물을 끌어다 의미를 부여해 놓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빈집에서 벌어지는 이채로운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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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째로 전시공간이 된 빈집 윤보연 작가가 전시 공간으로 선택한 빈집의 입구. 부여 규암면 신리마을 빈집 ⓒ 오창경


'Invaluable-인생수업'이라는 제목이 붙은 전시회장에 갔다. 충남 부여 규암면 신리마을 빈집에 설치 미술 작가인 윤보연이 기획한 전시였다. 전시 초대장에는 '따로 갤러리는 없습니다. 빈집이 전시장입니다'라고 써 있었다. 뭔가 이채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신리마을은 지난해 '마을이 박물관'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곳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런 전시 기획을 받아들일 기본기는 갖춰진 곳이었다. 글, 사진, 영상, 음성으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고 빈집 안에 전시해 놓았다. 전체적인 흐름이 '인생 수업'이라는 주제를 따라 가게 해놓았다.

누군가 살았던 옛집 공간에 글이 있었고 영상이 흘렀고 음성이 들렸다. 부서져 있으면 부서진 그대로 얼룩지고 찢어지면 찢어진 대로 자연스럽게 세월이 지나간 자리에 작품이 있었다. 진작에 시인이 이름을 불러주어서 꽃이 되었다고 주장한 것처럼, 내가 설치하고 의미를 부여했으니 작품이라고 우기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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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의 광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윤보연 작가 규암면 신리 마을 빈집의 옛 살림을 들여다보는 광 앞에서 ⓒ 오창경


대문에 들어서면 사람들의 조근조근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살아온 이야기가 마을의 언어로 장치 속에서 살아 있었다.

"이것 좀 보시겠어요? 이게 뭔 줄 아세요?"

시골집의 광(창고)이었던 곳의 나무 문 한쪽이 열려있었다. 안쪽에 분필로 쓴 바를 정(正)자들이 열을 지어있었다.


"쌀가마를 넣을 때마다 표시한 거라네요. 쌀가마가 한 가마씩 들어가 쌓일 때마다 얼마나 뿌듯했을까요? 이 집 주인은요."

바로 한 세대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었다. 깍듯한 디지털 세계 속에서 발견한 친근감이었다. 버려지고 오래되고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 그 폐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것이 정겹게 느껴지는 것이 전시를 이끌어가는 힘이었다.

광에 딸린 방 안에는 현존하는 마을 사람들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이현자님은 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으니 그 사람들의 캐릭터를 가장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사람이지요. 스마트폰에 저장된 마을 사람들을 여기에 다 꺼내놓았어요."

신리마을 사람들이 거기에 다 모여있었다. 자신들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순간이 자연스럽게 잡혀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도 읽어지는 사진들이었다. 현자님이 마을에 함께 살고 있기에 가능한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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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 옆의 작은 방에 이현자님이 찍어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다. 마을 주민인 이현자님이 그동안 찍어서 모아놓은 마을 사람들의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 오창경


그 사진 속 주인공들도 한때는 이렇게 살았을 것이었다. 그 방에 모아놓으니 오순도순 정겨웠던 날들까지 저장해놓은 것 같았다. 그 시절에는 쌀 몇 가마니를 주고 마련한 최고급이었을 장판과 벽지 속에도 세월이 내려앉았고 사람들은 아직도 그 속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품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새 것은 천장의 레일등 밖에 없었어도 묘하게 끌렸고 어울렸다.

토방이 있는 마루에 유리문이 달린 곳이 본채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곳이었다. 거기가 메인 갤러리였다. 나무 마루가 있고 부엌과 방 두 개가 있는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다.

다시 이런 공간을 만날 수 있을까?

안방에는 마을 사람들의 거실에서 떼어온 가족사진들을 걸어놓았다. 가족사인 동시에 마을의 역사가 사진 속에서 빛이 났다. 작가의 메인 작품도 거기에 있었다.

"숟가락이죠. 제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숟가락 한 벌씩을 달라고 했어요. 거기에 이름도 새겼어요. 작품 이름이 '식구'잖아요.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을 식구라고 하는 데 의미가 있죠."

가족이라는 말에 밀려 퇴색한 식구라는 단어를 새삼 발견한 것 같았다. 밥을 같이 먹는 '식구'들이 모여 살았던 집에 오래된 사진들이 있고 숟가락들이 있었다. 이 정도면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고도 남았다. 빈집과 사진과 숟가락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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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안 한때는 식구들이 모여 살았을 집. ⓒ 오창경


마당에는 시골식 드럼통 야외 난로가 있었고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구워 먹을 군고구마도 있고 앉는 의자도 있었다.

"이 정도면 전시장이 아니라 시골 외갓집에 온 건데요."
"제가 원하는 게 이런 거였어요. 이런 집에서 살아보지 못했던 젊은 세대들과 살아왔던 세대들이 방방을 다니면서 작품들을 보다가 어르신들의 이야기도 듣고 마당에 모여서 이렇게 함께 모닥불도 쬐고 고구마도 구워 먹고 하는 일상을 간직하고 싶었어요. 잘 정비된 갤러리에서는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요? 사라지고 소외된 것들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작품을 보며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는 전시가 좋은 것일까? 그냥 감상 자체를 즐기는 전시가 좋은 전시일까? 무엇인가 전시를 한 듯, 하지 않은 듯, 한 듯한 전시장이었지만 문화적 욕구의 다양한 표현 방법을 발견한 전시장이었다.

디지털의 속도에 밀려 도망친 아날로그들을 붙잡기는 했으나 일부러 때 빼고 광을 내지는 않았다. 손으로 다듬은 흔적과 자연스러운 손때까지 수용했다. 윤보연 작가가 부여 규암면 신리마을 폐가를 작품 전시 공간으로 선정하고 설치했던 까닭이었다.

손으로 빚은 세상인 아날로그를 경험하지 못한 디지털 세대가 문화의 주류로 등장할 날들을 앞두고 있다. 감성은 많이, 겉멋은 뺀, 따뜻한 공간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온 기분이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의 마음은 따뜻하고 다정한 곳으로 향하는 본능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다시 이런 공간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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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연 작가의 메인 설치 작품 빈집의 안방에 신리마을 사람들의 숟가락을 모아 놓았다. ⓒ 오창경

#설치 작품 #빈집 #충남 부여 #신리마을 #윤보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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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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