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26 07:00최종 업데이트 23.01.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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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였던 고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 기념일을 맞은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시민단체 내셔널 액션 네트워크의 '마틴 루서 킹 데이' 조찬행사에 참가해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 조 바이든 미국 전현직 대통령이 각각 특검 조사를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대통령 기록물법 위반이라는 동일한 혐의다. 작년 11월 18일 임명된 잭 스미스 특검은 퇴임시 기밀문서로 분류된 문서를 가지고 나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조사 중이다. 작년 8월 FBI가 이미 마라라고 리조트를 한 차례 압수 수색한 바 있다. 1월 12일에 임명된 로버트 허가 조사할 대상은 바이든 현 대통령이다. 오바마 행정부 부통령 재임 시기에 생산된 문서가 퇴임 이후 사용하던 워싱턴 사무실에서 지난 11월 발견되었다.

양당제 국가의 양당 수장이 같은 혐의로 조사받는 모습은 작년 상반기 영국과 비슷하다. 보수당 보리스 존슨 총리는 코로나 봉쇄 기간 다우닝가 파티에 참석했다는 '파티 게이트',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는 보궐 선거를 앞두고 지역구 노동당 사무실에서 봉쇄 규칙을 어기고 맥주를 마셨다는 '맥주 게이트' 혐의였다.


두 사람의 대응은 달랐다. 존슨은 파티 참석을 부정했고 스타머는 마셨으나 거리두기와 인원 제한 규칙을 지켰다고 했다. 스티머는 "영국은 법이 자신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하고 가장 높은 잣대를 적용하는 정치인을 가질 자격이 있다"며 벌금형을 받을 경우 대표직에서 물러날 것을 공언했다. 혼란 끝에 영국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신뢰를 택했다. 존슨은 총리직에서 불신임 퇴진했고 스타머는 현재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다.

미국도 대조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이건 내 거야 (it's mine)"를 주장한다. 반면 바이든은 "문서들이 발견되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며 부적절함을 인정하고 수사에 최대 협력하겠다며 압수수색을 받아들였다.

사건 발발과 초기 대응

바이든은 성공적인 2022년을 보냈다. 고조되던 미-중-러 갈등 속에 의구심을 표하는 시각이 높았던 2021년과 달리,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하자 서구를 나토 중심으로 성공적으로 묶어냈고 이는 중국 억제 효과로도 나타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관철시켜 기후 변화 문제와 복지 등 계층 문제에서도 한발 나아갔다. 미국 문화 전쟁의 주요 의제인 총기 규제와 낙태권 문제에서 선명한 입장을 표명해 지지층을 결집시켰고 완패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중간 선거에서 사실상 승리했다. 하원 의장 선출에서 공화당이 보인 혼돈에 재선 출마 선언이 조만간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1월 9일 CBS가 기밀서류가 워싱턴의 바이든 사무실(Penn Biden Center for Diplomacy and Global Engagement)에서 나왔다고 보도했고 백악관은 이를 인정했다. 부통령 퇴임 후 트럼프 행정부시기에 사용한 사무실로, 발견된 기밀문서는 부통령 재직 기간에 생산되었다.

서류가 발견된 것은 지난 11월 2일이었다. 사무실을 영구 정리하기 위해 잠겨 있던 캐비닛 서류를 정리하던 중 바이든의 개인 변호사들이 '약간'의 정부 기밀문서를 발견했다. 그 날 즉시 기록 보존소(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 연락을 취했다. 11월 3일 정부 문서를 받은 기록 보존소는 4일 법무부에 통보했다. 14일 법무부 장관은 특검 필요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시카고 연방 검사에게 조사를 지시했다.

12월 두 번째 장소에서 문서가 발견되었다. 델라웨어 주에 있는 바이든 사저를 확인하던 바이든 개인 변호사들이 20일 차고에서 기밀문서를 발견했다. 이번에도 법무부에 즉시 알리고 반환했다.

새해 들어 사건은 확산되었다. 1월 5일 시카고 연방 검사로부터 특검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받은 법무장관 메릭 갈런드는 12일 특검으로 로버트 허를 임명한다. 그는 트럼프가 임명했던 메릴랜드 연방 검사로 지금은 워싱턴에 소재한 한 로펌 소속이다.

1월 20일 법무부 직원과 FBI가 바이든의 개인 변호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전 9시 45분부터 밤 10시 반까지 압수 수색했다. 대통령 부부는 없었지만 바이든이 개인적인 노트까지 접근해 살펴보는데 동의했다고 알려졌다. 10개 정도의 문서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상원의원 때부터 부통령 재직까지의 문서로, 그 중 몇 개는 기밀서류라 알려졌지만 발견된 정확한 위치와 기밀의 정도는 발표되지 않은 상태다.

정치적으로 비화되는 문제
 

2022년 8월 10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뉴욕주 검찰에 출두하기 위해 트럼프 타워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스캔들은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본질은 문서 관리의 허점에 있다. 2차 대전 이후 정부 문서 관리 체계를 세운 미국은 각 부처별로 보안이 필요한 문서를 일급비밀(top secret)-비밀(secret)-보안 필요(confidential)로 분류하고 접근이 허가된 사람만 볼 수 있게 관리한다. 하지만 인쇄된 후의 서류 추적 및 관리 문제, 특히 정권 교체 과정에서 대량 누락되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공교롭게도 작년 8월 트럼프의 문서 압수 수색과 유사성을 띠면서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비화되고 있다. 물론 두 사건의 차이점은 명백하다.

첫째, 사건 발생 경로다. 트럼프는 기록 보존소가 알아차릴 만큼 대량의 문서를 반환하지 않았다. 2021년 이후 기록 보존소가 문서 반환을 계속 요구했지만 이를 무시했기 때문에 결국 작년 8월 FBI가 긴급 압수 수색에 들어가 수십 상자, 문서 1만 1000여 건을 가지고 나왔다. 압수 수색 과정에서 문제점이 없었는지를 보기 위해 특검이 임명된 경우다. 반면, 바이든은 바이든 측 변호사가 사무실 정리하다 발견, 즉시 기록 보존소에 반납했다.

둘째는 대응 방식이다. 트럼프는 "내 거다"라고 주장한다. 주장의 근거는 미국 대통령이 가진 기밀 해제 권한이다. 기밀문서라 하더라도 대통령이 소장하고 싶은 경우 기밀로 분류한 기관에 의견을 물어 해제시키고 가질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9월 <폭스> 인터뷰에서 해제 절차를 묻는 질문에 그는 절차는 없다며 "대통령이 '이건 해제되었어'라고 말만 하면 아니 그저 생각만 하면 해제시킬 수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가 반환하지 않은 문서 중에는 북한 김정은의 친필 친서도 있다.

바이든은 해제 권한을 사용했다는 주장을 하지 않고 있다. 정리 과정에서 실수로 들어간 것일 뿐 고의성이 없었고 지난 6년간 문서를 가지고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발견되었을 때 변호사들의 조언대로 절차에 따라 반납했고 앞으로도 수사에 최대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둘의 차이가 법적으로 인정되겠지만 과연 대중이 그 차이를 인지할까. 공화당 의원들은 법무부 장관에게 1월 27일까지 바이든 문서 유출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의회에 넘기라고 요구한 상태다. 하원 감사위원장인 공화당 제임스 코머는 지난 2년간 바이든 자택 출입 리스트를 하원으로 넘기라고 하고 있다. 러시아 기업과의 관계로 문제되었던 바이든의 둘째 아들 헌터 바이든에게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것이다.

악몽의 재현?

중간선거 이후 좋은 흐름을 타고 있던 민주당으로서는 악재다. 사건이 경중을 가리지 못하고 진흙탕으로 빠질 경우 민주당에게 이번 사건은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이 트럼프 대선 캠프-러시아 관계와 거의 같은 급으로 취급되며 물타기 되었던 악몽이 재현될 수도 있다. 상원 의장 척 슈머는 바이든의 초기 대응은 옳았다며 "특검이 영향을 받지 않고 일하게 하자"고 했다.

바이든의 개인적 정치적 자산인 정직, 명예, 신뢰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198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영국 노동당 대표) 닐 키넉이 그랬듯이"란 두 마디를 빠뜨려 표절 논란에 휩싸였을 때 그는 비루하게 연설문에도 표절이 적용되는가라며 법적 논쟁으로 빠지지 않고 도덕적 책임으로 하차한 바 있다. 그가 부통령으로 재직한 오바마 행정부는 높은 도덕적 잣대를 적용한 결과 1972년 워터게이트 이후 특검을 임명할만한 스캔들이 일어나지 않은 유일한 행정부였다.

지난 8월 트럼프 압수 수색당시 트럼프에게 "무책임"하다고 했던 말은 바이든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다. 특히 기밀문서가 차고 안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누리꾼들은 "바이든이 (차고에서도 일하는) 공부벌레임을 증명하려고 거기에 두었다"는 등 쓴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유고브>(YouGov) 조사에 의하면 1월 9일 49.6%를 기록한 바이든 지지율은 1월 16일 46.9%로 떨어졌다.

다음 대선에서 맞붙을 수도 있는 미국 전현직 대통령이 동일한 혐의로 특검 조사를 받는 이례적 상황이 어떤 정치적 결과를 낳을지 예측은 이르다. 영국의 경우를 보면 거짓말과 변명으로 덮으려는 지도자는 설 자리가 없었다. 어렵게 얻은 교훈은 강력해 보인다. 지난주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경찰로부터 벌금형을 받았을 때 리시 수낙 총리는 궁색한 변명 없이 잘못했다고 곧장 사과했다. 그는 '잘 나가던' 보리스 존슨이 말로 신뢰를 잃고 몰락하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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