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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할매들의 마지막 수업 "억눌린 한 풀었소"

'칠곡할매글꼴'로 유명세 탄 칠곡 할머니들 경북도청에서 졸업장 받아, 평생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던 한 풀어

등록 2023.01.26 00:38수정 2023.01.2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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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경북도지사가 25일 경북도청 안민관에서 40여 년 만에 교단으로 돌아와 칠곡할매글꼴을 만든 할머니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경북도청

 
평생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던 칠곡 할매들이 40여년 만에 교사로 돌아온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마지막 수업'을 하고 졸업장을 받았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25일 '칠곡할매글꼴'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할머니들을 경북도청 안민관으로 초청해 특별한 수업을 진행했다.

이 지사는 1978년부터 1985년까지 수학교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다. 이 지사는 경상북도가 운영하는 경북도민행복대학 총장으로서 할머니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하기 위해 교편을 다시 잡았다.

할머니들의 수업을 위해 마련된 교실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책·걸상과 교훈이 적힌 액자, 태극기, 커다란 흑칠판이 마련돼 마치 60~70년대 교실을 옮겨온 것 같았다.

수업에 참가한 주인공은 일흔이 넘어 한글을 깨친 추유을(89), 이원순(86), 권안자(79), 김영분(77) 할머니 등 4명이다. 이종희(91) 할머니는 건강이 악화돼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할머니들은 평생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던 교복을 입고 명찰도 달았다. 반장을 맡은 김영분 할머니의 "차렷! 선생님께 경례!" 구호에 맞춰 할머니들이 인사하자 이 지사는 큰절로 화답하면서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은 이 지사가 할머니 이름을 부르며 출석 체크를 한 뒤 삼국시대부터 비롯된 경북의 역사와 경북 4대 정신 등을 설명하고 가족과 대한민국 근대화를 위해 헌신한 할머니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수업 말미에는 이 지사가 '화랑', '호국', '선비', '새마을' 등 단어를 읽으면 할머니들이 받아쓰는 받아쓰기 시험도 치렀다. 이 지사는 붉은 색연필료 동그라미를 그리며 채점을 했고 네 할머니 모두 만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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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경북도지사가 25일 경북도청 안민관에서 칠곡 할매들을 모시고 마지막 수업을 진행했다. ⓒ 경상북도

  
수업을 마친 할머니들은 경북도가 운영하는 경북도민행복대학 이름으로 된 상장과 졸업장을 받고 학사모도 썼다. 졸업장과 상장을 받아든 할머니들은 기쁨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김영분 할머니는 "우리 할매들은 가난과 여자라는 이유로 때론 부모님을 일찍 여의거나 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학교에 가지 못했다"며 "오늘 수업을 통해 마음에 억눌렸던 한을 조금이나마 푼 것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할매들은 지방시대가 무슨 말인지 잘 몰라예. 우짜든지 우리 동네에 사람 마이 살게 해주이소'라고 적인 액자를 이 지사에게 전했다.

이 지사는 "칠곡 할머니들의 글씨를 처음 보는 순간 돌아가신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며 "배움에는 끝이 없다. 마지막 수업이 되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들 다섯 명의 할머니들은 지난 2017년 칠곡군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처음 배웠다. 이들은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한글을 배웠다고 한다.

학교에서 내준 편지쓰기와 시쓰기 등 숙제를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고 넉 달 동안 종이 2000장에 수없이 많은 연습을 했다.

칠곡군은 2020년 12월 그림을 그리듯 각자 개성을 담은 할머니들의 글씨체를 '칠곡할매글꼴'로 만들었고 지난해에는 한컴오피스와 MS오피스 프로그램에 정식 탑재됐다. 또 국립한글박물관은 칠곡할매글꼴을 휴대용 저장장치(USB)에 담아 유물로 영구 보존했다.

경북도는 이날 특별한 수업이 일제강점기와 가난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 할머니를 위로하고 200만 명이 넘는 문해력 취약 계층에 대한 관심과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고 밝혔다.
#칠곡할매글꼴 #이철우 #마지막 수업 #졸업장 #경북도민행복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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