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6 11:36최종 업데이트 23.06.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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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일 :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 ⓒ 넷플릭스

 
"나는 하고 싶은 게 없어, 어떡하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함께 취업 준비를 하며 가장 많이 고민하던 주제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이력서 앞에서 우리는 온종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딱히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회사에 지원한다 해도 이력서에 가장 먼저 채워야 할 부분은 '지원동기'였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마치 나의 적성인 양 꾸며내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이런저런 취업 상담센터에서 수많은 적성검사를 해봤지만 확신은 없었다. 아르바이트 몇 번, 조별과제 몇 번으로 나의 적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경험을 쌓겠다며 인턴이나 자원봉사와 같은 무급 노동을 전전하고 다닐 수만은 없었다.

취업은 늘 급했다. '그냥 돈 벌어야 해서 지원했어요'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저성장시대, 좁은 취업문 앞에서 '내가 취업을 못하는 이유는 하고 싶은 게 없어서야'라며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질책하게 만드는 함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세상을 탓해봤자 묵묵히 이력서를 쓰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며 신세를 한탄하던 백수들은 어느새 각자의 자리를 찾아 그럭저럭 밥벌이를 하고 있다. 조용한 집에 혼자 앉아서 그렇게도 간절히 염원하던 출근도 이제 일상이 됐다. 이제는 퇴근만 기다리며 틈틈이 온라인 메신저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 취업만 하면 끝날 줄 알았던 우리의 고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할 말은 여전히 많다.

취업하니 결혼하라고 하고, 결혼하니 아이 낳으라고 했다. 아이를 낳는다면 어떻게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고 해도 지금 하는 일을 정년 때까지 할 수 있을지, 노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정년이 될 때까지 남아 있을까, 회사를 벗어나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고민은 끝이 없었다. 일에 대한 고민은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도 차고 넘치는 주제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사냐는 질문에는 직업의 이름으로 대답할 수 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쉽지 않다. 고민이 끝나지 않는 이유다.

가만히 둘러보면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잘리지 않고 그저 오래도록 일하기를 원하는 친구도 있고, 하루하루 일터에서 주어진 일을 해내느라 바빠 미래를 고민할 틈조차 없이 살아가는 친구도, 열심히 경력과 인맥을 쌓아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일터로 옮겨갈 계획을 하고 있는 친구도, 정년퇴직 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구상하며 틈틈이 사업이나 투자에 대한 공부를 하는 친구도 있다.

혹시, 투표가 행동이 될 수 있을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일 :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에서 총괄프로듀서를 맡았다. ⓒ 넷플릭스


다들 계획이 있고, 또 나만 대책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앞으로의 인생과 함께 나아가야 하는 일의 방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던 시점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일 :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을 만났다.

대학생 버락 오바마는 농부와 광부, 전화 교환원, 매춘부, 청소부, 경찰 등 133명의 일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스터즈 터클의 <일 :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1974) 을 읽고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이제는 '전 대통령'으로 불리는 오바마가 요양보호사와 배달원, 호텔 청소부, 중간관리자, 지식노동자와 임원들을 인터뷰했다. 임금으로 보면 최저임금 노동자부터 최고임금의 보스까지, 공간으로 보면 호텔의 지하부터 꼭대기층까지 훑으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면서 사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다.

다큐는 사람들의 일터를 쫓아다니며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위해서 지금의 노동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묻는다.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이는 최저임금의 노동이라고 해도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다. 적성에 잘 맞고 급여도 만족스럽지만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어렵다면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1화에 나오는 서비스 직종의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2화에 나오는 중간관리자들은 상황이 좀 낫다.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어 고민하기도 하고, 벌고 있는 돈으로는 집을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일을 즐기고 현재의 일터와 동료들에 대해 만족한다. 신발을 수집하기도 하고, 음악을 만드는 등 개인적인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 자금과 시간도 있다.

3화 중간관리자와 임원 사이에 있는 지식노동자들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알고 있고, 사명감을 갖고 주체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층수가 올라갈수록, 연봉이 높아질수록 일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지만, 이 모든 일터들을 기획하고 경영하는 리더의 삶이 어쩐지 행복해 보이진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공한 사업가에게 일과 세상에 대한 고민은 있지만 어쩐지 일 이외에 다른 삶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돈은 제일 많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의 모습과, 일에 대한 생각들을 찬찬히 보다 보면 어느새 내가 원하는 일과 내가 원하는 세상에 대해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 낼 수 있다.

가능하다면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잘리지 않고 오래도록 일하면서 적당히 취미생활을 하면서 사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다큐에 나온 노동자 중에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은 피에르 호텔에서 22년 동안 일한 청소노동자였다. 그녀에겐 노동조합이 있었다.

직업적 안정성보다 주거의 안정성이 우선이라는 생각도 든다. 열심히 돈을 벌어봐야 월세 내느라, 대출이자 갚느라 바쁘다면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조차 없을 테니 말이다.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을 탓해봤자 그저 묵묵히 일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혹시, 투표가 행동이 될 수 있을까. 오바마 직접 이 다큐를 제작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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