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7 06:58최종 업데이트 23.06.2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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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인구 구성이 다양해지고 문화예술의 향기가 풍성해졌는가 하면, 땅과 바다가 환경파괴로 신음한다는 경고음도 들린다. 4·3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는 한편으로는 새 공항 건설을 두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천혜의 땅 제주도를 살기 좋은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제주 사름(람)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기자말]

2022 제주 인권 포럼 개막 지난해 10월 '차별과 혐오 그리고 연대'를 주제로 열린 제주 인권 포럼에서 신강협 소장이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 신강협

 
제주도는 '평화의 섬'을 꿈꾼다. 2005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한 이래 제주도는 평화를 지향하는 섬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2023년, 제주의 평화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제주 4·3을 폄훼하는 극우세력의 이념공세에 시달린 데 이어 정부의 제2공항 건설 강행에 따른 저지 투쟁과 찬반 갈등이 폭발 직전으로 치닫는 중이다. 최근엔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의 방류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려 그 열기가 섬을 뜨겁게 달구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제주의 평화는 더 나아가 전쟁의 위험에도 도전받는 형국에 놓여 있다. 윤석열 정권이 한·미·일 동맹 외교에 올인하면서 북·중·러와 대립하는 구도가 선명해지자, 유사시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제주섬이 전화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 들린다.

제주도는 과연 '평화'라는 모든 이의 염원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의 신강협 연구소장 겸 상임활동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신강협 소장은 제주의 평화·인권이라는 화두를 안고 최일선에서 분투해 온 활동가다. 먼저 전국적으로도 크게 반향을 불러일으킨 '일본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범도민대회'의 뜨거운 열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부터 물었다. 그가 속한 연구소 왓 역시 이날 집회 참여단체였다.

"이번 집회는 사실 농민회가 주도한 것인데, 저는 어민들이 대거 가세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어요. 인권실태 조사를 하면서 느낀 건 어부들이 대체로 말이 거칠고 짧은 편이에요. 그러면서도 상당히 순박한 분들입니다. 단순하지만 탁탁 치고 나가는 성향도 있습니다.

그동안 어민들이 움직이기 힘들었던 데에는 이들에 대한 규제와 탄압이 정말 심했기 때문이에요. 그물코의 크기, 엔진 톤수, 금어기 등등... 반면 정부에서 쏟아주는 지원금도 무시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기도 합니다. 지금 핵오염수에 대한 문제 제기를 괴담이라고 정부가 협박하는 상황에서 어민단체가 대거 나섰다는 건 정말 심각한 국면인 것이죠.

농민들은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지만, 어민들은 공유지인 바다에서 수산물을 획득해야 하는 처지이니 그들의 생업 공간 그 자체인 바다가 오염되면 생존권이 위협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지원금을 주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육지에선 지방의회가 오염수 방류 반대결의안을 채택하지도 못한다는 뉴스가 나오고 소금 사재기가 시작됐다지만, 여기선 육지부에 비해 오염수에 대한 경각심이 굉장히 커지고 있고, 그에 따라 항의의 목소리도 높은 것 같아요. 현 정권이 권력이란 둑으로 막고 있는 이런 에너지들이 지금 응축되고 있는 게 너무 커서 나중에 감당이 될까 모르겠습니다."


해군기지에 이어 제2공항 들어서면... 제주가 위험하다
 

2018년 9월 27일 오후 서귀포시 강정동 제주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가 국제관함식 즉각 취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핵오염수 방류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면, 전쟁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잠재적인 불안 요인이다. 하지만 그 위기감의 크기는 엄청난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제주도가 처한 지정학적 위치, 강정 해군기지, 제2공항 등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제주도의 지정학적 조건을 신강협 소장은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한반도에서 휴전선의 비무장지대는 군사적 대치가 직접적으로 이뤄지는 지역이지만 균형이 깨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동북아의 관점에서 지도를 살펴보면 중국은 대양으로의 진출을, 미국은 대륙 세력의 봉쇄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 두 강대세력의 접점은 제주도와 대만입니다.

제주도를 거점으로 확보하면 동북아의 모든 걸 장악할 수 있습니다. 레이더를 쏘든, 미사일을 쏘든, 공항을 거점으로 활용하든 말입니다. 제주도가 유사시 최전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중국 입장에서 제주도를 장악한다면 오키나와 미군기지와 대치하는 전선을 만들고 일본도 압박할 수 있으므로 어마어마한 거죠. 반면에 대만에 대한 주도권을 지금보다도 더 심하게 미국에게 빼앗긴다면 군사적으로 커다란 위협에 처하게 되겠지요."


신 소장은 강정 해군기지에 더해 제2공항이 들어설 경우,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모든 전쟁시설과 물자는 징발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공항은 군사기지로의 전환 가능성이 늘 존재합니다. 그런데 제2공항은 그 규모가 해군기지와 합하게 되면 괌이나 하와이 같은 대규모의 군사적 입지를 갖추게 됩니다. 만약 중국과 대만의 충돌이 현실화할 경우, 처음엔 제주가 군사물자 기지가 될 것이고 전쟁이 격화하면 공격대상도 될 수 있어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영토에서 전쟁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토 밖에서 전쟁을 수행할 때 중요한 고려사항은 전략거점입니다. 제주도는 이미 군사적으로 중요한 전략적인 거점으로 비치고 있어요. 제주에서 군사적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제거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신강협 소장은 제주도가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국제적인 평화지대로 위상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고정관념화한 무장평화론 대신 적극적인 평화론을 밀고 나가야만 제주도가 진정한 평화의 섬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적극적인 평화론이란 무력이 아닌 대화로 갈등을 해소해 나가자는 것이지요. 그럼으로써 비폭력 비무장 상태의 평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계적으로는 소극적 평화론에 따른 최소한의 방어력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적극적 평화라는 지향점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자주국방을 넘어 북한이든 중국이든 일전불사하겠다는 식으로 치닫는 현 정권의 태도는 매우 위험스럽게 여겨집니다."

제주도, 단계적으로 '평화지대'로 만드는 작업 시작해야
 

퀴어문화 축제에서 동료들과 함께 2018년 9월 제1회 제주 퀴어문화 축제 때 평화인권연구소 왓 부스에서 시민사회 동료 활동가들과의 기념촬영. ⓒ 신강협

 
제주도가 비폭력 비무장 상태의 평화지대로 국제사회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이런 적극적 평화론이 실제로 구현될 가능성이다. 중앙정부가 군사 외교 등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주도 차원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신강협 소장은 자신이 평소 구상해온 평화지대안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제주도는 대략 서울·도쿄·북경·상해의 가운데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를 이용해 주변 이해 당사국의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완충지대로 설정하고, 상호 간 대화채널이 안전하게 확보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제적인 갈등 구조에 관해 대화를 해나갈 물리적 공간을 제주도에 마련하고 이 지역이 대화 구역이라는 설정을 해놓자는 겁니다. 어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최소한 이곳만큼은 군사행위를 못 하게 하는 원칙에 합의를 해야 합니다.

이런 구상을 제주도 차원에서 실현시킬 힘도 권한도 없는 건 사실입니다.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의 평화 문제는 주변 강국의 이해관계와 당사자 간 관계의 정도에 의해 귀결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런 관계망 속에서 적극적으로 제주도의 역할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지대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단계적 평화 만들기 과정'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세밀하게 고민하여 추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초기 단계로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건 제주도의 역사적 경험을 많이 체득한 원로들을 찾아가 제주도의 평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확인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접촉한 원로분들은 이 평화지대안이 관념론적으로 가도 안 되고, 정치적인 논쟁으로 가도 안 된다, 우리가 주장하는 바가 아니라 도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부터 이야기를 해서 발전시켜 가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시기도 했어요. 그래서 최소한 이것만큼은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평화지대 선언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죠.

그다음, 평화지대 선언의 원칙이 만들어지면 도지사든 시민단체든 찾아가 원로들이 이런 제안을 하셨는데 어떻게 할 거냐,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만들어야 할 것 아니냐, 하는 요구를 해야겠지요. 그러면 도에서나 시민사회단체에서 토론하다 보면 뭔가 결과물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런 모든 행위들이 차근차근 단계적 평화 만들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제주도의 평화지대 구체안이 나오면 중앙정부에 제시하고, 정부는 이를 받아서 관련 국가들에게 최소한 이 지역만큼은 평화를 위한 대화공간으로 삼자고 설득하자는 겁니다."
 

신강협 소장은 제주도 평화지대를 위한 아이디어의 실현은 반드시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한다. 이상과 현실의 거리가 먼 게 사실인 만큼 제주도민의 의지를 결집하는 과정부터 모든 걸 단계적으로 접근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으로 전망하기가 어렵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북·중·러와의 대결구도를 추구하는 현 정권을 설득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당장 강정 해군기지나 제2공항 문제를 두고 평화지대안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까?

"제2공항은 만약에 만들더라도 최소한 군사공항으로 쓰지는 않겠다는 약속을 아주 강하게 못박아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정 해군기지는 민관복합항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한 군사기지로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이 기지를 당장 빼라고 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축소시키면서 평화지대안 프로세스에 맞게 조정해나가는 방법이 적당할 듯합니다."

신학 공부하다가, 제주의 인권·평화 말하게 된 사람
 

감귤 밭에서 신강협 소장은 평화인권연구소 왓에서는 급여가 없어 생업인 감귤 농사 등으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 황의봉

 
제주도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면 가능하지도 않겠냐는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 평화와 인권을 연구하는 시민단체를 주도하고, 현장에서 뛰고 있는 활동가 신강협. 그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신강협 소장의 고향인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는 천주교 신자가 유달리 많은 곳으로, 그가 자라던 때는 전체 주민의 90%가 신자였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성당에서 자라나 고교를 졸업하기 전에 이미 가톨릭 수도원에 들어갔고, 대학 때도 수도원 소속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해서는 가톨릭 학생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에는 평신도단체인 우리신학연구소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 서강대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시절 전공은 농업경제학이었지만 신학의 길로 깊숙이 빠져든 셈이다.

신학석사가 된 그에게 문창우 신부(현 제주교구장)가 유학 가서 신학을 계속하라고 권유했고, 결국 2003년 강우일 주교의 추천서를 들고 필리핀 마닐라의 교황청립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기에 이른다. 필리핀에서 4년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절대빈곤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했다고 한다.

필리핀에서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신학 공부를 하고 돌아온 그가 처음 몸담게 된 곳은 천주교 이주사목위원회. 이 단체의 사무국장으로 실무를 총괄했다. 이때 제주에 사는 필리핀 사람들과 가깝게 지냈다. '꾸야'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이즈음으로, 나이 많은 오빠나 형을 의미하는 필리핀 말이다. 외국인과 이주민 보호에 집중하던 그는 인권운동 하는 선배가 만든 평화인권센터에 합류하면서 활동의 폭을 넓히게 된다.

2018년 지금 몸담고 있는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왓'은 제주어로 들판 혹은 밭이라는 뜻으로, 제주도 평화와 인권의 대지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또한 제주에서 평화와 인권이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도 포함돼 있다. 신강협 소장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평화'에서 '인권' 문제로 옮겨갔다. 먼저 제주도 사람들의 인권에 대한 의식이 어느 지점에 놓여 있는지부터 물었다.

육지와는 다른 경험... 제주 사람들의 열망
 

예멘 난민 인터뷰 2018년 6월 예멘 난민사건 당시 제주시 탑동 해변공연장 계단에서 난민과 인터뷰하는 신강협 소장. 신변보호를 위해 난민은 등만 보이고 있다. ⓒ 신강협

 
"제주 사람들은 육지와는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평화나 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은 편입니다. 예멘 난민들이 들어왔을 때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당시 육지에서는 이슬람이네, 시아파니, 수니파니 하면서 공포감이 확산할 때였는데 난민들과 함께하고 있던 저를 본 어느 할머니가 지나가다가 '경해도(그래도) 구제할 사람은 구제해사주게, 잘했쪄!' 하셨어요.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일단은 구하고 봐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 말씀 듣고 제가 힘이 나서 난민 옹호 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예멘 난민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한가지 에피소드를 말씀드리자면, 당시(2018년) 6월 20일이 세계 난민의 날이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난민을 받지 말라는 청와대 청원이 70만을 돌파하는 등 난민에 대한 혐오도가 크게 올라갔어요. 그러자 난민들 숙박을 받아줬던 여인숙 등 숙박시설에서 이들을 내보내는 겁니다. 육지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희가 천주교의 한 공소(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성당) 마을에 10명을 기거할 수 있도록 주선했습니다. 공소 회장님과 이장님을 설득해서 성사된 겁니다.

이들을 공소에 보내놓고 일주일 후에 가봤더니 동네 사람들과 서로 담배도 나눠 피우고 해요. 또 일주일 후에 가봤더니 주민들과 축구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다음 주에는 '밭에 와서 일하지 않을래', '양어장에 일손이 비는 데 와서 일해라' 하는 등 인간관계가 생기는 겁니다.


제주 사람들의 이런 태도의 바탕에는 난민 상태를 이미 경험해 봤던 게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저희 집안만 해도 4·3이 터지면서 일본에 계시던 외할아버지가 못 들어오시고 평생 일본에서 사시게 됐고, 고모도 일본에서 산업재해를 당하고 피해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쫓겨나다시피 돌아오셨거든요.

제주 사람들은 이런 경험이 너무 많습니다. 일제의 결7호 작전으로 제주도 전체가 요새화됐는가 하면, 4·3 때 엄청난 비극을 겪었고, 6·25 때는 예비검속으로 학살당했어요. 그리고 빨갱이 누명을 쓰거나 연좌제로 고통당한 분들도 많습니다. 1970년대에 빈번했던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들 중 다수가 제주 사람이었고요. 평화와 인권에 대한 열망이 높을 수밖에 없는 배경입니다."


불교학과 석사 노동자에게 육계가공업체 배정이라니... 
 

제주 시민사회 인사들이 6월15일 제주지역 활동가들에 대한 잇단 압수수색과 체포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신강협 소장이 국가보안법 문제를 거론하며 발언하고 있다. ⓒ 신강협

 
요즘 제주도는 때아닌 공안 탄압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진보정당 인사, 농민운동가, 노동운동가들이 압수수색 당하고 구속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구시대의 '빨갱이' 논란이 21세기에 재현되고 있는 형국이다. 신강협 소장은 규탄집회에서 발언하는 등 연대투쟁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이른바 '공안사건'이 여전히 등장하는 퇴행 현상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기본적으로 4·3 때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극단적 혐오와 함께 어느 일방 정치세력의 탐욕이 우리 사회의 인권보장체제 자체를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제주의 상황을 보면서 이러한 반인권적 법적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사상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공론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 75주년 4·3 기념일을 전후해서 벌어진 서북청년단을 자칭하는 사람들의 등장, 잇단 4·3 폄훼 발언이나 현수막 게시 등도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정치정세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레드 콤플렉스라고 하는 사회주의에 대한 혐오 의식과 공포, 그리고 정치적 이념이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넘어선다는 대립적 이념구조가 작동한 결과입니다."
 

제주도는 1차산업에 편중된 산업구조를 갖고 있어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이들과 관련한 인권침해 사례도 많을 것 같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신강협 소장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았다.

"이런 사례도 있었습니다. 동남아의 한 불교국가에서 불교학과 석사학위까지 받고 온 사람이 있었어요. 스님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육계가공업체로 배정됐어요. 매일 5천 마리에서 많을 땐 만 마리까지 닭의 머리를 쳐야 하는 도살의 첫 과정을 담당하게 된 것이지요.

이분이 너무도 심적으로 괴롭다고 호소하는 겁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면 직종이 정해지기 때문에 지정한 업체에서만 근무해야 하고 이주의 자유도 없습니다. 저희가 종교적 신념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니 다른 일로 바꿔줄 수 없겠냐고 했지만 업체에서는 왜 귀찮게 구느냐는 식으로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천주교 신부님의 협조를 받아 종교의 자유 침해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업체에서 이분을 때리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폭력문제가 발생하니까 그제서야 업체 측에서 사건을 무마하려고 공장에서 떠날 수 있도록 이직 허가가 나더군요.

외국인에 대한 이 같은 인권침해 사례를 접할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전 지구는 이미 한 운명을 짊어지고 가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해요. 기후 환경 이주 난민 전쟁 평화 등 어느 것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거든요.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하고, 함께 고민해야만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세계 평화의 섬 제주도'가 구호로 그칠 수 없다면, 제주도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 맨 아래 단계부터 한 발짝 한 발짝 공감대를 이루면서 목표를 향해 나가자는 신강협 소장의 구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평화와 인권을 화두로 쉬지 않고 달려온 그의 노력이 '왓'(들판)처럼 세상에 번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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