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9 17:28최종 업데이트 23.06.2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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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행사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해 편향된 관점을 표출했다.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거부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라고 발언했다. 종전선언을 반국가세력과 연결시킨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이 다시 침략해 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으며,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된 가짜 평화 주장이었다"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남침을 용이하게 하려고 종전선언을 주장한다는 식의 발언이다.

"종전선언 합창"... 헌법 경시한 윤 대통령의 발언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6월 30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있는 장면. ⓒ 연합뉴스

 
종전선언은 불안정한 휴전체제를 해소해 전쟁을 막고 평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한다. 북한군을 초대하는 게 아니라 평화협정을 초대하는 것이 한국에서 말하는 종전선언이다.

2007년 10월 11일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평화협정으로 바로 들어가기는 좀 빠른 것 같고, 종전선언을 하고 그 다음에 들어가는 게 맞지 않느냐'는 취지로 발언했다. 13일 뒤 백종천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종전선언은 평화협상을 이제 시작하자는 정치적·상징적 선언"이라고 풀이했다.

한국에서는 '종전선언을 먼저 하고 그 뒤에 평화협정을 맺자'는 분위기가 강한 데 비해, 미국에서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패키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은 이탈리아·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와의 평화협정이 발효된 1947년 9월 16일 이 국가들과의 종전을 선언했다. 또 일본과의 평화협정인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발효된 1952년 4월 28일 종전을 선언했다.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발효의 시점을 가급적 맞추려고 애썼다.

소련은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처럼 운용한 사례가 있다. 1956년 10월 19일 조인되고 12월 12일 비준서가 교환된 소·일 공동선언은 평화협정의 요소들을 담았다. 북방 4개 도서의 귀속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평화협정이란 형식을 띨 수 없어 이런 변칙을 사용했다.

이와 달리, 노무현 정부 이래로 한국에서 종전선언을 평화협정 이전 단계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한 데는 한국적인 특수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종전선언이라도 먼저 해둬야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절박감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 공포심을 일으킨 제2차 북·미 핵위기(북핵위기)는 2003년 8월부터 6자회담 국면으로 전환됐다가 2008년 12월 이후로 6자회담이 흐지부지되면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종전선언 주장은 핵위기로 인한 불안감이 퍼져 있을 때 전쟁을 막자는 취지에서 부각된 것이었다. 종전선언이 북한군의 남침을 부른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은 이런 배경과 동떨어진다.

그처럼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을 반영하는 종전선언 추진 움직임을 윤 대통령은 "종전선언 합창"이란 자극적 표현을 써가며 폄하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의지를 의심케 만드는 발언이다.

평화 헌법으로 불리는 현행 일본 헌법에는 '평화'라는 글자가 5번 나온다. "일본 국민은 항구적 평화를 염원하며"처럼 평화를 언급한 곳이 전문(서문)에 네 군데 있고,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며"라는 구절이 전쟁 금지를 선언한 제9조에 나온다.

평화 헌법이란 수식어가 붙지 않은 우리 헌법에도 '평화'가 9번 나온다. 전문에 4회, 본문에 1회 나오는 일본 헌법과 달리, 우리 헌법에서는 전문에 2회, 본문에 7회 나온다. 우리 헌법의 평화주의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라고 했고, 본문에서는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제4조),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제5조),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제66조 제3항) 등의 선언을 했다.

특히 북한과 관련해서는 여섯 군데에서 평화를 강조했다. 제4조와 제66조 제3항에 이어 제69조에서는 대통령이 취임선서 때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서약하도록 했다. 제92조에는 "평화통일정책의 수립"과 더불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언급됐다. 

이는 북한과 전쟁하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라는 것이 우리 헌법의 명령임을 보여준다. 이런 헌법적 가치를 경시하고 여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세력이 극우집단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다름 아닌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반대다.

전광훈 발언과 비슷... 윤 대통령의 '위험한' 의중
 

전광훈 목사가 지난 4월 17일 오전 서울 성북구 장위동 사랑제일교회에서 ‘전국민 국민의힘 당원가입운동’을 벌일 것과 함께 총선 관련 공천권 폐지, 후보 경선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행사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태극기 집회 미주 투어'의 일환으로 지난 1월 31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교회를 방문했다.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되던 종전선언과 관련해 "주한미군 철수와 연방제 통일을 하자는 사기극"이라며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제2의 광주사태인 광화문 내전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21년에 자신이 미연방 하원의원인 영김과 협력해 미 의회 내의 한반도평화법안 추진을 저지했다고도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전광훈 목사 못지않은 자극적 표현을 써가며 한반도 평화체제를 폄하했다. '종전선언은 허황된 가짜 평화 주장'이라는 그의 언급은 '종전선언은 사기극'이라는 전광훈의 발언과 맥을 같이한다.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습니다"라는 윤 대통령의 폄하적 발언은 그가 한반도 평화의 가치를 얼마나 낮게 평가하는지를 드러낸다. 나아가 윤 대통령의 생각이 전광훈 목사의 생각과 무엇이 다른지 되묻게 만든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축사를 해준 한국자유총연맹은 1954년 6월 15일 이승만 정권이 만든 한국아시아반공연맹에서 출발했다. 이 단체는 박정희 때인 1964년 1월 15일 한국반공연맹으로 개조됐다가 1987년 6월항쟁 뒤인 1989년 4월 1일 한국자유총연맹으로 변신했다. 예전처럼 노골적으로 반공을 표방하기 힘들어진 정세 변동이 단체 명칭의 변화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자유총연맹은 이승만·박정희 시기의 반공정책을 최일선에서 수행했다. 윤 대통령은 이런 단체의 창립 기념식에서 한반도 평화의 가치를 정면으로 깎아내렸다. 전광훈 목사에게나 어울리는 모습이 윤 대통령에게서 자연스레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위험한 징후다. 한국아시아반공연맹과 한국반공연맹을 앞세워 우리 사회를 냉전과 대결로 몰아갔던 이승만·박정희 시절의 기억을 소환케 할 만한 일이다.

또한 28일 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자신이 종전선언을 반대하는 것이 단순히 이념 성향을 드러내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공안정국을 강화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종전선언을 추진했던 이들을 '반국가세력'이라고 지칭하며, "자유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고 하거나 자유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세력들이 나라 도처에 조직과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라고 발언했다.

그런 뒤 "이것은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 지키기를 명분으로 통일운동과 노동운동 진영 등에 대한 공안정국을 한층 강화할 가능성을 주목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경제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인해 지금 한국에서 그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사회 분열을 막는 통합의 노력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무엇보다 보편적 가치에 기반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보편성과 동떨어진 편향적 이념을 드러내며 국민들을 이편 저편으로 가르고 있다. 종전선언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를 근거로 국민과 비국민을 가르려는 의중을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이 균형과 중용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대한민국에 위험한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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