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04 11:34최종 업데이트 23.07.0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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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8월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권의 독립운동가 재평가 방침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독립운동가냐 아니냐'를 가리는 재평가 작업에서 반공의 비중은 높아지고 친일의 비중은 작아지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국가보훈부는 독립운동가 전면 재심사를 위한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를 지난 3월 7일부터 가동했다. 뉴라이트 출신이 다수 포진됐다는 사실만으로도 현 정부의 보훈 방침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듯하다. (관련 기사: 뉴라이트가 독립운동가 재심사? 의심스런 보훈처 위원회, https://omn.kr/23g7w)


국민공감위원회 결성을 알리는 지난 3월 6일 자 보도자료에서 보훈부는 독립운동가 김상옥·박상진·이상룡·이회영·최재형·나철·헐버트 등에 대한 재평가 필요성을 언급했다. 나아가 진보적 성향을 띠었거나 문재인 정부 하에서 부각된 이들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전반을 재평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뒤이은 5월 22일, 보훈처장 신분으로 보훈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박민식 당시 처장은 "김원봉은 여러 가지로 그런 활동을 했습니다만, 북한 정권과 너무 직결되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라고 밝혔다. 반공 이념을 독립운동가 재평가의 핵심 요소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데 박민식 장관은 6월 14일 자 <연합뉴스> 인터뷰에서는 전향적인 발언을 했다. 김원봉처럼 월북하지는 않았지만 김원봉만큼이나 진보적이었던 죽산 조봉암에 대한 재평가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역사적인 인물에게 그림자가 있더라도 빛이 훨씬 크면 후손들이 존중하고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누구든지 예외 없이 접근하고 싶다"라고 그는 말했다.

조봉암·김가진 재평가, 하지만...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조봉암. ⓒ 위키 퍼블릭 도메인

  
보수 정권들이 조봉암에 대한 서훈을 거부한 것은 그가 이승만과 맞선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일본군에 성금을 납부했다는 1941년 12월 23일자 <매일신보> 기사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조봉암을 재평가할 수 있다는 의외의 발언이 보훈부 장관에게서 나왔던 것이다.

친일 의혹은 조봉암에 대한 평가에서 반드시 고려돼야 할 부분이다. 동시에, 그가 일제 경찰의 고문으로 손가락 7개를 잃었을 정도로 독립운동을 강도 높게 벌였으며 1945년 8·15광복을 일본군 헌병사령부 감옥에서 맞이했다는 사실을 함께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를 독립투사로 평가해야 할지, 친일파로 평가해야 할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박민식 보훈부 장관이 조봉암 재평가에 찬성하는 이유가 반드시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친일 혐의보다 독립운동 공로가 훨씬 크다는 판단이기보다는, 다른 이유로 재평가를 추진하고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다.

보훈부가 조봉암과 더불어 서훈을 검토 중인 인물은 동농 김가진(1846~1922)이다. 이는 윤석열 정권이 '독립운동가냐 아니냐'를 평가할 때 친일 혐의의 비중을 높지 않게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가진은 대한제국에서 외무대신과 법무대신 등을 지낸 뒤 일제 치하에서 남작 작위를 받았지만, 1919년 3·1운동 이후에 대동단을 결성해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도 활동했다. 이런 김가진이 독립운동가인지 아닌지를 보여주는 표지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꼿꼿한 선비의 표상이자 불굴의 독립투사인 심산 김창숙(1879~1962)의 인물평이다.

김창숙은 1927년에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된 뒤 '태도가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심한 고문을 받았다. 이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앉은뱅이 노인'이란 의미에서 스스로를 벽옹으로 불렀다. 그는 1951년경에 쓴 <벽옹 73년 회상기>에서 임시정부 요인인 김구·안창호와 더불어 김가진 등을 만난 소감을 소개했다.

그는 임시정부 요인들에 대한 만족감을 표하면서 "팔십 노혁명가인 김가진 선생은 더구나 공경할 만한 분"이라고 평했다. 김가진이 일제의 작위를 받은 사실보다 뒤늦게 독립운동에 뛰어든 사실을 더 높게 평가했던 것이다. 김창숙이 보기에 김가진은 분명히 독립운동가였다.

김가진의 장례식은 상하이 임시정부장으로 치러졌다. 며느리이자 독립운동가인 정정화는 <장강일기>에서 "상해에서는 어려운 형편이긴 했지만, 시아버지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렀으며"라고 회고했다. 김창숙뿐 아니라 여타 독립운동가들의 눈에도 김가진은 친일파가 아니라 독립운동가였던 것이다.

김가진은 친일파로 활동한 적도 있지만 독립운동가로 훨씬 더 인상적인 발자취를 남긴 뒤 항일 투사들의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보훈부는 친일 행적을 이유로 서훈을 거부해왔다. 그랬던 보훈부가 입장을 바꿀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조봉암과 김가진에 대한 재평가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강제징용 제삼자 변제 방침의 확정이나 양금덕 할머니에 대한 서훈 훼방 등에서 충분히 증명됐듯이, 윤석열 정권은 항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두 거물급 항일투사에 대한 태도를 바꿀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그 배경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하다.

정부가 두 인물에 대한 서훈을 재검토하는 것은 항일이나 독립운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됐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친일의 해악성을 낮게 평가한 결과라고 이해하는 것이 윤석열 정권의 전반적인 기조에 부합한다.

김원웅·손용우 재평가? 반공투사 선정하나
 

독립운동을 인정 받아 2018년 8월 15일 제73주년 광복절 행사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고 손용우 선생 사진. 사진은 그의 딸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공했다. ⓒ 손혜원 의원


동시에 윤석열 정권은 독립운동가 평가에서 친일의 비중을 떨어트리는 동시에 반공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박민식 장관은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김원봉의 독립운동을 "여러 가지로 그런 활동"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월북했다는 이유로 그의 독립운동을 다소 폄하적으로 언급한 것이나 다름없다. 반공 이념에 어긋나면 독립운동가로 볼 수 없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조봉암·김가진에 관한 7월 2일 자 언론보도에, 손혜원 전 국회의원의 부친인 손용우(1923~1999)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손용우에 대해서도 윤석열 정부가 재검토를 하고 있다고 한다.

보훈부가 발간한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24권에 따르면, 손용우는 '일본은 머지않아 멸망한다', '중일전쟁을 조선 독립의 기회로 삼자'는 등의 항일 선전전을 펼치다가 19세 때인 1942년에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형기를 마쳤다. 그가 독립운동가로 지정되지 못한 것은 해방 뒤에 조선공산당 활동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보훈부는 이 부분을 문제 삼으며 서훈 취소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일'과 관련되는 것은 '친일'이지 '반공'이 아니다. 항일을 했더라도 친일이 너무 크면 항일의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반공은 항일과 직접적 관련이 없으므로, 반공 이념에 어긋났다고 해서 항일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항일투사 심사에서 친일의 비중을 떨어트리고 반공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반공투사를 선정하기 위한 심사가 아니라 독립운동가를 찾아내기 위한 심사인데도, '반공이냐 아니냐'를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조봉암과 김가진을 독립운동가로 지정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이들의 독립운동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어야 한다. 김원봉과 손용우를 독립운동가로 지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들의 독립운동에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어야 한다.

보훈부가 그런 생각에서 이들에 대한 입장을 검토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친일 행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반공을 독립운동과 연결시키는 잘못된 인식이 반영되는 상황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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