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06 06:55최종 업데이트 23.07.06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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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소설 <저주토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가 2022년 9월 경북 포항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1년 동안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강사로 일한 정 작가는 2022년 4월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퇴직금 지급 소송을 제기했다. ⓒ 김성욱

 
2023년 1월 27일 서울고등법원은 모 대학교 시간강사들이 퇴직금과 함께 주휴수당과 연차수당, 노동절 수당을 지급해달라고 청구한 소송에서 "시간강사의 근로시간은 계약서에 명시된 강의시간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문에 따르면 시간강사는 근로계약서를 쓸 당시에 계약서에 명시된 강의시간을 보고 현실에 맞지 않을 경우 학교 측에 수정을 요청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시간강사 본인이 강의시간만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한 것이니 강의 준비에 소요되는 시간, 시험 출제와 채점, 성적 산출과 입력 등에 소요되는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사회 안에서 계급과 권력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판결이라 할 수 있다. "공짜로 일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하지 그랬어"와 "너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아" 사이에서 비정규직은 언제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야 한다. 서울고등법원의 위와 같은 판결이 내려진 이후 모 국립대는 퇴직금 소송 중이던 강사에게 반소를 제기했다. 줬던 퇴직금을 도로 뱉어내라는 것이다. 시간강사는 퇴직금도 수당도 받을 자격이 없는 초단시간 근로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의 퇴직금 소송은 다행히 이 정도로 절망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판사님의 요청에 따라 나는 나의 업무가 정규직 교수의 업무와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서울고법 판결에 따르면 시간강사는 행정업무를 하지 않고 학생지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정규직 교수보다 절대적인 근로시간이 적다고 한다.

회의도 들어가고 학생지도도 하는데...

나는 한 학기에 최소 한 번, 퇴직할 무렵에는 한 학기에 두 번씩 학과 어학수업 회의에 참여했다. 이 회의에는 교수와 강사가 함께 참가했다. 그리고 나는 이 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했다. 회의록은 학과가 어학수업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증거자료로 문과대학에 제출되었다.

다른 학과들과 통합하여 새로운 대학원 과정을 개발하고 한국연구재단에 이 새 대학원 과정을 운영하기 위한 지원금을 신청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서울고등법원이 생각하는 '학과 행정업무'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정기적으로 학과 행정에 참여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다. 연세대학교 측이 처음 제출한 준비서면에 따르면 내가 재능이 너무 많고 너무 똑똑해서 강의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강의 시간이 되면 아무 말이나 하고, 그래서 시간이 남아도니까 "강의와 상관없는"(상관있다) 학술단체 간사도 하고 "강의와 상관없는" 학술논문도 썼다고 한다(학술논문 내용을 수업시간에 강의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가 시간이 남아돌아서 학과 회의에 재미로 참석하고 취미로 지원금 신청서나 회의록을 쓴 게 아니다. 교수가 포함된 단체 메일이 와서 이런저런 회의 참석하라고 하니까 참석한 것이고 회의록을 네가 쓰라고 교수가 시키니까 쓴 것이다.

학생 지도에 관해서 서울고법 재판부에 내가 말하고 싶은 사실은 연세대학교 강사 재임용 심사 평정표에 '학생지도' 항목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학생지도 활동 항목은 '강의활동 평정(20점)' 아래 들어가 있으며 전체 100점 중에서 10점을 차지한다.

재임용 평정과 관계없이, 학생이 수업 내용이나 진로에 대해 질문하거나 상담을 청하는데 "나는 강사니까 교수한테 가서 질문하라"고 대답하는 강사는 없다. 자기 수업에 대한 책임은 기본적으로 그 수업의 강의자에게 있고, 자기 수업의 수강생이 질문을 하면 교수든 강사든 그 수업을 강의하는 사람이 답변해야 한다.

나도 학생의 질문에는 일상적으로 답변했고, 외부 장학금 신청이나 유학 또는 대학원 진학을 위한 추천서도 한국어와 외국어로 여러 번 써 주었고, 국내 대학원에 진학할지 취업할지 외국으로 유학 가야 할지 고민하는 학생에게 진로 상담도 수없이 해 주었다. 이러한 업무는 주로 전자메일로 진행했으므로 문서 자료가 전부 남아 있다.

나에게 불리한 정황은 일주일에 몇 번,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이렇게 정해놓은 의무적인 학생 상담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는 강사에게 학생을 상담할 공간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사 공동연구실은 불특정 다수의 여러 강사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라 요일과 시간을 정해놓고 나 혼자 독점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상담하는 중에 다른 선생님(들)이 연구실을 써야 하는 경우, 혹은 다른 선생님(들)이 자기 학생을 상담해야 할 경우, 서로 방해가 되기도 하고 학생의 개인정보나 사생활이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공간을 주지 않고, 학생도 강사도 안심하고 지도를 하고 지도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사는 최선을 다해 가능한 방식으로 학생 지도를 했는데, 너는 학생 지도를 하지 않았으니 지도한 시간을 노동 시간으로 인정해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강사에 대한 차별이다.

학부생만 지도한 것도 아니다. 나는 대학원생 석사논문 지도도 해 보았고 박사학위 후보자가 제출한 박사논문을 읽고 평가하는 업무도 했다. 석사논문 지도의 경우 정식으로 논문 지도 위원회에 이름을 올렸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서 논문 진행 과정을 관리했고, 논문을 읽고 논지 전개과정을 점검하고 오탈자도 잡아냈다. 각주와 미주 형식도 한국어, 영어, 러시아어로 각각 가르쳐주고, 각주와 미주에 이탤릭이 제대로 적용됐는지 쪽수와 저자 이름은 제대로 썼는지도 점검했다. 러시아에 갔을 때 학생에게 필요한 연구자료도 복사해다 주고, 논문 심사 의견서도 썼다. 이 모든 과정은 학생과 주고받은 메일과 학교에 제출한 논문심사 의견서에 서면증거로 남아 있다.

박사논문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교수가 어느 날 자기 연구실로 불러서 "이걸 좀 읽어봐라" 하면서 출력해서 제본한 종이 논문을 던져줬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싫어요, 안 해요" 할 수 없어서 떠맡았다. 그 종이 논문은 읽고 코멘트를 써서 교수에게 돌려주었으므로 증거가 없다.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다고 지금 와서 후회하고 있다. 내가 언제나 학교에 소송을 걸 생각으로 이를 갈면서 12년 강사생활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때는 소송을 위한 증거를 남긴다는 개념이 아예 없었다.

교수가 시키면 할 수밖에 없다
 

2021년 12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관계자들이 모든 대학 강사에게 퇴직금과 주휴수당을 지급하기를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강사는 교수가 시키면 어쨌든 할 수밖에 없다. 거절할 수 있는 경우는 딱 그 시간에 수업이 있거나 딱 그 날짜에 학술대회 발표가 있을 때 정도다. 그러니까 교수는 이런 식으로 자기가 내키면 자기 업무를 강사에게 떠넘긴다. 그것은 강사의 업무와 교수의 업무 사이에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물론 그 어떤 교수도 판사 앞에서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특권적 계급과 권력에 아무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퇴직금과 수당 소송에서 이런 사실을 내가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교수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솔직히 어떤 점에서 교수와 강사의 업무에 차이가 없는지 세세하게 증명할 자신이 없다.

학교가, 교수들이 나에게 정확히 어떤 업무를 얼마나 시간을 들여 어디까지 하기를 기대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강사였을 때도 잘 몰랐고, 퇴직하고 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 시간강사 근로계약서에는 이런 것이 자세하게 적혀 있지 않다. 내가 강사 생활하는 내내 매 학기 썼던 근로계약서에는 그저 무슨 요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몇 학점짜리 무슨 강의를 하라는 내용, 그리고 그 아래에는 어떤 경우에 학교가 너를 해고할 수 있는지 불분명하게 적어놓은 위협적인 내용이 있을 뿐이다.

"신체 정신상의 이상으로 강의를 수행하기 곤란할 때"(그러니까 강사에게 병가나 휴직 따위는 없다), "강의를 성실히 이행하지 아니할 때"(강의평가 점수가 나쁘면 해고한다는 뜻인가?), 그리고 "그밖에 시간강사로서의 품위를 현저히 손상한 경우" 학교는 강사와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소위 '강사법' 즉 고등교육법 개정안 시행 전에 체결한 나의 시간강사 근로계약서에 적혀 있다.

'강사법' 시행 후 체결한 계약서에는 방학 중 임금 등의 조항이 들어가 있어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으니, 강사는 학기 중 주당 6시간 이하의 교수 시간을 담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면직과 재임용에 대해서는 '강사 임용 등에 관한 내규'를 따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사 임용 등에 관한 내규를 또 들여다보면 재임용 기준은 소속 기관, 즉 소속 단과대학이나 학과 내규를 따르라고 돼 있다. 결국 다시 임용하는 건 학과 마음이라는 뜻이고, 학과가 스스로 생각하는 실체가 있는 게 아니니 강사의 재임용 결정을 내리는 최종적인 주체는 교수이다.

그러니까 방학 중 임금 말고는 강사법 시행 전이나 후나 별로 나아진 게 없다. 그리고 2023년도 사립대학교 강사 처우개선비(가 방학중 임금으로 주는 돈이다)가 작년 기재부 결정으로 전액 삭감되었기 때문에 이제 방학중에 강사 월급을 주는지 안 주는지 또한 학교 마음(은 교수들의 마음)이 되었다.

교수의 마음에 참으로 많은 것이 달려 있다. "학교측" "학과 내규" "소속 대학 기준" 이런 식으로 마치 조직이나 기관 자체에 무슨 생각하는 인공지능 같은 게 있다는 표현을 쓰지 말고 실제 결정을 내리는 교수(들)의 책임을 분명히 한다면 상황이 좀 달라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조직 뒤에 숨어 존재하는 실체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특권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강사 차별의 문제, 대학 내 비정규직 문제를 교수의 선의에 맡길 수는 없다.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시행되어 강사에게 한 학기당 강의를 6학점, 최대 9학점까지만 맡길 수 있게 되자 전임교수가 맡아야 하는 강의 시간이 늘어났다. 교수들은 비명을 질렀다. "한 학기 수업을 세 개나 하라니 말이 되냐"고 분노했다. 수업 세 개면 대략 9학점이고 개정된 고등교육법 하에서 강사에게 맡길 수 있는 최대 수업시수이다. 강사는 교수의 재량과 은혜로 9학점'이나' 맡을 수 있으면 운이 좋은 것이고 교수는 "강사노조가 데모를 해서"(실제로 이렇게 말했다) 자신들이 한 학기에 수업을 '세 개나' 해야 하면 학교 측의 너무한 처사라고 말한다.

그러면 강사를 더 채용하면 될 것이다. 사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임교원을 충분히 채용하는 것이다. 교육부가 대학평가 기준을 높이고, 기재부가 사립대학들이 강사 처우를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금을 주고, 고등교육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전임교원 숫자를 전반적으로 확보하면 될 일이다.

강사 월급, 교수의 10분의 1까지도
 

정규직 한 명 채용할 값으로 비정규직 열 명을 쓰고 버리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고등교육 현장을 가장 비교육적으로 갉아먹고 있다. ⓒ 셔터스톡

     
내가 아는 대부분의 러시아 관련 학과들은 교수 4~6명 사이, 강사는 10명 안팎이었다. 상시 강의를 하는 교원 숫자를 지속적으로 15명 안팎으로 유지할 필요가 현실적으로 있다면, 학과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싶을 경우 전임교원을 그만큼 충원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강사 월급은 교수의 5분의 1에서 심한 경우 10분의 1 정도이기 때문에 대학, 특히 사립학교 입장에서는 훌륭한 조건을 갖춘 비정규직 강사를 싼값에 쓰는 것이 이득이다. 이렇게 정규직 한 명 채용할 값으로 비정규직 열 명을 쓰고 버리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고등교육 현장을 가장 비교육적으로 갉아먹고 있다. 그리고 정부는 이런 현상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서울고법에서 패소한 퇴직금과 수당 사건은 이제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심리가 시작되었다. 나의 사건과 다른 많은 강사 선생님들의 퇴직금 및 수당 재판도 아마 여기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정규직과 똑같이 일했고, 학생들에게 구분 없이 "교수님"으로 불렸고, 어찌 보면 정규직보다 더 불안하고 절박하기 때문에 연구실적이나 학술활동 측면에서 더 많은 성과를 거두었고, 그러므로 그렇게 일한 삶에 대해 교원으로서의 지위와 자격을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법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퇴직금 소송이다.

돈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돈의 문제이기도 하다. 서울고법 같은 악독한 판결이 계속되어 학교 측에 수백만, 수천만 원을 갑자기 물어줘야 하는 상황들이 발생한다면 누군가는 극단적이고 절망적인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 강사는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절반 이상을 지탱하고 있다.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정보라 / 작가 ⓒ Hyeyoung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정보라 작가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SFWUK)의 제3기 대표이다. 예일대학교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폴란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작으로 <저주토끼>, <붉은 칼>, <그녀를 만나다>, <호>, <한밤의 시간표> 등이 있다. <저주토끼>는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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