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3 13:20최종 업데이트 23.08.2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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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곳곳에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는 메시지와 국화가 놓여있다. ⓒ 연합뉴스


2030세대 직장인이 많이 이용하는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4050세대에 대한 성토가 종종 올라온다. 특히 자주 보이는 불만은 회사 4050들이 일을 안 한다, 떠넘긴다는 투의 이야기다. 물론 이건 산업마다, 또 조직마다 다를 테니 일반화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근래 몇몇 이슈를 겪으며 특히 공공부문(정부와 공공기관)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격화되는 양상이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사건에서 많은 이들이 '갑질' 문제를 지적했지만, 블라인드의 어떤 청년들은 '기피 업무'가 저연차에게 떠맡겨진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그들은 신입이 감당할 수도, 책임질 수도 없는 일을 시켜 놓고 문제가 생기면 개인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행태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이런 접근은 다른 많은 청년의 지지를 받았고, 이내 기성세대를 향한 강도 높은 비난이 이어졌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저연차 업무 떠넘기기는 교사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문제"라거나, "세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 등의 의견이 나왔다. 눈여겨볼 점은 수백 개에 이르는 댓글 논쟁에도 업무 떠넘기기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3년 블라인드에 올라온 '기피 업무' 관련 글을 추려봤더니 공개적인 글 103개 중 56%가 공공부문 종사자가 게시한 글이었다. 공공부문 특성상 직장 정보를 비공개한 사람들을 고려하면 더 높으리란 추측도 가능하다. 2021년 기준 한국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이 10% 정도이니 5배 이상 되는 셈이다. 민간부문 이용자들이 쓴 게시물도 대부분 공공부문 사례에 대한 비판이나 상담이었다.

직접적인 조사 결과도 있다. 공무원노조가 2021년에 만 40세 미만 공무원 7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신규자에게 기피 업무를 몰아주는 문화가 있다"는 데 응답자의 58.9%가 동의했다. 신규자만 대상으로 조사하면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올해 권은희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중고교 학폭 책임교사의 21.9%가 5년차 미만 저연차 교사고, 26.5%는 기간제 교사로 나타났다. 2021년 국정감사에서는 대전교육청 학폭 담당 교사의 82%가 3년차 미만 초임교사라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20년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아동이 사망한 '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 당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며 뭇매를 맞은 학대 예방 경찰관(APO) 역시 대표적인 기피직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APO 중 경사 이하 하위 직급 비율은 68.9%에 달했다. 한편으로는 잦은 보직 변경으로 업무의 연속성이 끊기는 문제도 있다. 2022년 조은희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APO의 53%가 재직기간이 1년 미만이었다. 3년 이상은 15%에 불과했다.

기피 업무가 저연차 직원들에게 맡겨지는 원인으로는 공공부문 특유의 수직적인 문화와 업무 분장 시스템이 제시되곤 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업무분장 과정에서 직원들의 참여를 폭넓게 보장하고, 기피 업무를 맡은 사람에게 승진 가산점과 더 많은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기피 업무를 돌아가면서 하고, 더 많은 보상을 주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기피 업무가 되는 진짜 이유

어느 직장에나 기피 업무는 있다. 그런데 민간부문의 기피 업무 관련 키워드가 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나 승진인데 비해 공공부문에선 민원, 징계, 감옥이 따라왔다. 공공부문의 기피 업무는 그만큼 부담이 크다는 짐작을 할 수 있다. 기피 업무를 맡은 공공부문 당사자들이 휴직은 물론 면직을 고려하는 경우도 많은 이유다.

어느 공무원이 블라인드에 게시한 "오송 참사가 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따르면, 안전 관련 부서는 최악의 기피 부서라고 한다. 그는 안전 부서는 "초과 근무가 일상"인데 "잘해야 본전이고 사고 나면 감옥"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모두가 피하려고 하며, 배정되어도 최대한 빨리 탈출하려 애쓰며, 그래도 안 되면 휴직해버리니 신규들만 자리에 채워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예방을 기대할 수 없고,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득 옛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수년간 교육 봉사를 하며 몇 차례 아동학대 정황을 발견한 적이 있다. 자연히 아동 학대 담당 경찰들과도 마주했는데, 처음엔 그들의 부족한 열정과 전문성에 분통을 터뜨릴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차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당시 내가 만났던 담당자들도 상당수가 3년차 미만의 초임이었다. 희망해서 온 것도 아니었다. 1인당 담당 아동이 수천 명에 이르니 예방은커녕 터진 사건 해결에도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여기에 더해 아동 학대 업무 자체가 이들이 맡은 여러 가지 일 중 하나에 불과했다.

권한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려 해도 학대 의심 현장에 강제로 진입할 권한조차 없었다. 문제를 찾아내도 역으로 경찰의 아동 학대나 주거침입을 주장하는 부모의 민원을 마주하기 일쑤였다. 그런 민원은 담당자가 홀로 감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 와중에 사고가 나면 담당자들은 징계와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이전 사람이 징계로 사라진 자리는 또 다른 초임으로 채워졌다. 그러니까 애초에 그들은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었다. 일련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니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경찰들을 쉽게 비판할 수 없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딱히 다를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20년 이후 APO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증원 계획도 나왔지만, 2022년 조은희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737명이던 APO는 22년 8월 기준 오히려 30명이 줄었다고 한다. 50명을 신규로 채용했음에도 나타난 결과였다. 이제는 APO 제도 자체가 수년 내에 존폐 위기를 맞을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가산점·수당 주면 해결될까
 

자료사진 ⓒ Creative Commons Zero


기피 업무에 승진 가산점과 수당을 더해 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최소한 학교 폭력이나 학대 예방, 안전 업무에는 큰 효과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업무들이 기피 업무가 된 건 보상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못했는데 책임만 과도하게 크기 때문이다. 이는 당사자들의 토로인 동시에 여러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보도에 따르면 '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으로 여러 경찰이 징계받은 이후, 경찰 내부에선 "재수가 없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경찰을 비판했지만 결국 누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달라질 게 없었다는 걸 당사자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일 테다.

결국 세대 갈등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 본질은 노동 환경의 문제다. 블라인드에서 어느 청년이 일갈한 것처럼 "나이 많고 일 안 하는" 사람들을 다 자른다고 해도, 누가 기피 업무를 맡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결의 실마리도 기피 업무가 기피되지 않게끔 만드는 데 있다. 충분한 자원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누군가는 해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시간과 예산,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명백한 고의와 중대한 과실이 아니라면 징계보다는 기회를 주고, 민원과 사고에 대해서는 조직이 함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혹자는 세상에 그런 훌륭한 직장이 어디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블라인드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는 이들에게 "사회를 잘 모른다"고, "모두가 부족한 환경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일한다"며 다그치는 '어른'이 있었다. 그 현실을 인정한다 해도 노력조차 안 하는 건 이상하다. 어떤 일에서 리스크는 단순히 금전적 손해겠지만, 이런 일에서 리스크는 사람의 목숨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건 누군가의 직장 문제이기 전에 공공의 안전에 대한 문제다. 그런 일이 계속 기피 업무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게 정말 한국의 현실이라면, 최소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청년들을 떠밀진 말아야 하지 않을까.
 

조현재 / 데이터 분석가 ⓒ 조현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조현재는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는 30대 직장인입니다. 통계와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분석하고 증명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청년 노동, 청년 일자리 문제와 세대 갈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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