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2 11:55최종 업데이트 23.10.1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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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 1968년 4월에 건립했다. ⓒ 정진오

 
일제 식민지배는 역사 인물의 얼굴을 상상하는 데도 지장을 주고 있다. <친일인명사전> 제1권은 화가 김기창(1913~2001)이 "1973년 자신의 얼굴에 기초해 제작한 세종대왕 영정"이 1만 원권 화폐의 모델이 돼 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김기창은 세종대왕뿐 아니라 을지문덕·김춘추·문무왕·신숭겸·김정호와 더불어 임진왜란 의병장 조헌의 초상화도 상상해 냈다.

김기창처럼 친일화가 김은호를 스승으로 모신 장우성(1912~2005)은 항일이나 반일과 관련된 인물화를 특히 많이 남겼다. 장우성에게서는 사명대사·권율·김시민·유관순·윤봉길 등과 더불어 충무공 이순신의 그림까지 나왔다. 장우성이 이런 작품들을 그린 것은 일제가 물러간 뒤의 일이다.


김은호뿐 아니라 김기창·장우성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이들은 다른 분야도 아니고 한국 역사나 항일과 관련된 그림을 많이 남겼다. 이들의 그림은 국가적 공인까지 받았다. 특히 장우성의 이순신 초상화는 대한민국 표준영정이 됐고 화폐에까지 새겨졌다.

1973년부터 1993년까지의 5백원권 지폐와 1983년부터 지금까지의 1백원권에 사용된 장우성의 작품을 근거로 한국인들은 이순신의 얼굴을 상상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장우성 유족은 법정 싸움 중이다. 이달 중순에 1심 선고가 나오기로 예정된 이 소송에서 그의 유족은 1973년부터 사용된 이순신 표준영정의 사용료를 한국은행에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그 당시 150만 원을 저작권료로 지급했다고 맞서고 있지만, 유족은 그 이후의 사용료를 따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약서가 남아 있다면 소송까지 갈 필요가 없었겠지만, 이 문건이 사라진 상태라 계약 기간과 조건을 확인할 수 없어 이런 소송까지 나오게 됐다.

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나오든, 일본군을 물리친 이순신의 표준영정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람의 작품이고 이를 근거로 한국인들이 성웅 이순신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친일 행적, 그리고 정반대의 행보

장우성의 아들인 장학구 이천시립 월전미술관장은 "만약 아버지가 정말로 친일 활동을 했다면 내가 백번이고 사과한다"며 장우성의 친일 행적을 부정한다. 장학구 관장은 '조선총독부가 주관하는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아버지가 4회 연속 특선을 했지만, 이를 친일의 증거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 2월 27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조선미술전람회는 당시 조선의 모든 미술학도가 화가로 입문하는 유일한 통로였다"며 그 같이 주장했다.

장우성이 총독부가 주관하는 선전에서 4회 연속 특선을 수상해 '선전 추천작가' 반열에 오른 사실 자체는 친일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작품 활동이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찬양하는 의미를 띠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1944년 3월에 입선한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이때 그는 이토 히로부미가 만든 한국통감부 기관지를 모체로 하는 경성일보사가 주관하고 총독부 및 국민총력조선연맹과 더불어 일본군이 후원하는 결전(決戰)미술전에 '항마'를 출품해 당선했다. <친일인명사전>은 "결전미술전에 입선한 '항마'는 '악마를 굴복시키는 날카로운 검'이란 뜻의 국민가요 '항마의 이검(降魔の利劍)'과 주제가 일치하며, 악마는 귀축미영(鬼畜米英) 즉 연합군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설했다. 

또한 장 관장은 위 인터뷰에서 "(일제의 관제 성격이 강한) 반도총후미술전에는 그림이 비에 젖어 출품도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장 관장의 말처럼 장우성이 반도총후미술전에 출품하려 했던 작품이 비에 젖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안의 본질은 그때 제출하려 했던 '부동명왕(不動明王)'이 어떤 작품이었나 하는 점이다. <친일인명사전>은 이렇게 지적한다.

"부동명왕이 1930년대 광범위하게 숭배되었던 일본 군국주의의 호국불이라는 점에서 전시회의 성격과 부합한다 할 수 있다."

친일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가 개최한 반도총후미술전은 총후(銃後)라는 단어에서도 확인되듯이 침략전쟁에 대한 후방 지원을 위한 행사다. 이런 행사에 출품하고자 군국주의 일본의 호국불을 화폭에 담았다. 출품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그런 그림을 공식 행사에 제출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외에도, 장 관장은 친일파 연구의 초석을 닦은 임종국의 글에 장우성에 관한 언급이 나오지 않으며, 장우성이 독립운동가 유달영과 막역한 사이였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문학 분야의 친일 연구에 특히 주력한 임종국의 글에서 모든 친일 문제가 완벽하게 다뤄졌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장우성은 1943년에 한국인으로는 사상 최초로 선전 수상자들을 대표해 충성 서약을 한 일이 있다.

총독부 기관지인 1943년 6월 16일자 <매일신보>는 "일동을 대표하여 장우성 화백은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총후 국민예술 건설에 심혼을 경주하여 매진할 것을 굳게 맹세하는 답사를 한 후 동 1시 40분경에 이 수상식은 끝났다"라고 보도했다.

그랬던 장우성이 해방 뒤에는 정반대 그림을 그렸다. 이순신을 비롯해 항일이나 반일과 관련된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그려냈다. 사명대사·권율·김시민·유관순·윤봉길의 형상이 그의 붓끝에서 형상화됐다. 이것이 발단이 돼 지금 진행되는 소송까지 상황이 이어졌다.

장우성이 이순신 초상화를 그려 소득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초반의 이순신 열풍에 기인한다. 1894년 청일전쟁 이후로 가속화된 일제의 한국 침략이 위기감을 조성하고, 그런 속에서 이순신 열풍이 풍전등화 같은 이 땅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20세기 초반의 위기 상황 속에서 이순신 열풍이 확산되는 데는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란 명제로 유명한 역사학자 겸 독립투사 신채호의 역할이 컸다. 2022년에 <미술사학> 제44호에 실린 송미숙 한국교통대 강사의 논문 '근대 이후 제작된 이순신 초상 이미지의 통시적 고찰'은 "민족영웅이었던 이순신은 20세기 초부터 신격화가 구체적으로 형성"됐다고 한 뒤 "영웅 이순신 성향의 텍스트 출발은 1908년 신채호의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전>"이라고 설명한다.

신채호는 <이순신전> 서문에서 자기 시대에 이순신이 꼭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침략해오는 일본을 제압할 영웅이 없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런 현실 때문에 책을 쓰게 됐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아래의 말로 그는 이순신을 '강추'했다.

"일본과 대적한 이 중에, 족히 우리나라 민족의 명예를 대표할 만한 거룩한 인물을 구하건대, 고대에는 두 사람이니 첫째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요 둘째는 신라 태종왕이요, 근대에는 세 사람이니 첫째는 김방경이요 둘째는 정지(鄭地)요 셋째는 이순신이니 모두 다섯 사람이라. 그러나 그 시대가 가깝고 그 유적이 소상하여 후인의 모범 되기가 가장 좋은 이는 오직 이순신이라."

일제 식민지배 청산, 아직도 멀었다
 

100원화 도안 표준영정 작가인 장우성 화백은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있다. 현용 화폐 중 5천원권(율곡 이이), 1만원권(세종대왕), 5만원권(신사임당)에 사용된 표준영정 작가들은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됐다. ⓒ 연합뉴스


이처럼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 속에서 16세기의 이순신이 20세기 한국에 소환됐다. 이 과정에서 신채호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이 컸다. 그렇게 해서 한국인들의 가슴에 더욱 깊이 새겨진 이순신이, 황당하게도 친일파 장우성의 붓끝에서 그려진 이미지에 의해 한국인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런 일이 비단 이순신에게만 벌어진 게 아니다. 장우성의 이순신 초상화가 1973년에 국가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데 이어, 1974년에는 그가 그린 정약용 및 강감찬 초상화가, 1977년에는 김유신 초상화, 1978년에는 윤봉길 초상화, 1981년에는 정몽주 초상화가 표준영정으로 지정됐다. 윤봉길의 반대 진영에 있었던 친일파 화가가 그려낸 윤봉길 초상화가 표준영정이 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다.

해방 80년이 다 되는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가 친일파가 그린 작품들로 인해 고민과 논란을 거듭하며 법정 공방까지 벌이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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