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8 11:49최종 업데이트 23.10.1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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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이주노동자 워크숍 링크업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국내 거주 이주민 200만 명 시대다. 전체 인구가 5100만 명이고 취업자 수가 2800만 명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다. 이들이 없으면 당장 내일 먹을 생선도, 깻잎도 없다. 그러나 이주민들의 노동 환경은 상당히 취약하다. 비닐하우스에서 장기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다 쓰러진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이미 안다. 그들은 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그렇게 사라져야 했을까.

22명의 작가·활동가·연구자가 '이방인'이라 불리는 한국 사회 이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적은 책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후마니타스)가 지난 10일 나왔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이란주 이주민인권 활동가를 17일 오전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이 활동가와의 인터뷰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독자는 책 표지 색깔 고를 수 없어... 왜 그렇게 했냐면
 

신간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 고기복, 고태은, 김나연, 김선향, 김애화, 리온소연, 명숙, 반수연, 부희령, 송경동, 시야, 안미선, 오시은, 우삼열, 우춘희, 이경란, 이란주, 이수경, 정윤영, 정은주, 홍주민, 희정 등 22명의 작가, 활동가, 연구자가 한국 사회 이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적었다. ⓒ 후마니타스

 
- 신간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는 어떤 책인가.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와 이주인권 활동가들이 <오마이뉴스>에 '이주민 르포 :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들'을 연재한 것이 시작이다(관련 연재 : <이주민 르포 :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들> https://omn.kr/1vzdr).


당시 르포 제목은 우리 사회가 이주민들을 대하는 방식을 짚은 것이다. 태어나고 죽을 수 있는 우리 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젊었을 때 잠깐 불러서 일 시키고 나이가 들면 또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는 소모품으로 인식하지 않나. 그들을 같은 사람이 아닌 단기 노동력으로만 보는 관점을 비판하고 싶었다. 그렇게 모인 원고를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책으로 만들어줬다. 이주민, 활동가(작가), 길동무, 오마이뉴스, 후마니타스 다섯 주체의 연대로 탄생한 셈이다. 인터뷰에 응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용기 내 참여한 이주민들에 특히 감사드린다."

-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

"돈을 벌어 아기를 데려오고 싶어 하는 캄보디아 여성 알렌, 하루에 열한 시간 넘게 깻잎을 따는 캄보디아 출신 니몰(가명), 돌아갈 나라가 없는 외국인 보호소의 난민들, 미얀마군부독재타도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는 띤테이아웅 등 살아가고 일하고 버티고 바꾸는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 책을 주문하면 어떤 색의 표지를 받을지 알 수 없다고 하던데.

"그렇다. 독자는 책 표지 색을 고를 수 없다. 출판사가 정말 반가운 아이디어를 내줬다. 표지를 5가지 색으로 인쇄하고, 그중 하나를 임의로 보내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주민을 '선택' 한다. 너는 노동할 사람, 너는 결혼할 사람 등등 이렇게... 이건 아니지 않나. '골라서 받아들이는' 선별된 관계에서 경험하지 못할 기대감과 반가움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고 있다."

-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200만 이주민들이 우리 사회에 살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 있어 상당한 곤란을 겪고 있다는 점은 우리 모두 안다. 근데 그것의 실제 내용은 어떻고, 원인은 무엇이고, 우리 사회는 어떤가 등에 관한 이야기는 적다. 국가는 잔혹하고 사회는 무관심하지 않나. 그럼에도 이주민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닌 똑같은 사람들일 뿐이다. 이주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람다운 삶을 함께 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최저임금 미적용 외국인 가사도우미? 역사 30년 전으로 되돌리겠다는 것"
 

오세훈 서울시장이 16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오 시장은 '외국인 가사 도우미' 제도에 대해 행안위 위원들과 질의응답을 주고 받았다. ⓒ 권우성


- 국내 거주 이주민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앞으로는 어떨까.

"법무부의 이민청 정책도 그렇고, 인구 소멸 문제로 인해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이주민이 들어올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이주민인권 활동가들은 이게 정말 두렵다. 지금도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심하지 않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해결하려는 노력도 없는 상태에서 숫자가 많아지면 어떻게 되겠나. 얼마 전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일이 있었다(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 이주노동자 상담·지원·교육을 해온 그 많은 기관이 다 문을 닫게 생겼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려고 정부가 이런 일을 벌이고 있나 놀랍고 한심하다."

- 오세훈 서울시장, 조정훈 의원 등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미적용 외국인 가사도우미' 이야기가 나온다.

"예전에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제도'라는 게 있었다. 이주민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차별 적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인데 1990년대 초반에 생겨서 운영되다가 연수생들의 농성과 문제 제기 끝에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을 받고 2007년 사라졌다. 근데 다시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말자는 주장을 내놓다니. 역사를 30년 전으로 되돌리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서울 출입국외국인청 세종로출장소 (자료사진) ⓒ 연합뉴스

- 한동훈 장관의 법무부도 '불법체류 외국인 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하고, 실제로 1만 3천여 명을 출국 조치했다.

"그냥 일하던 사람들 아닌가. 우리 사회가 그들의 노동력을 써온 거 아닌가.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 제도가 미비해서 미등록 상태로 일을 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다. 그냥 등록하면 된다. 2002년에도 월드컵 앞두고 대규모 등록 조치를 했었다. 아무 문제 없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단속과 추방은 미등록 이주자를 대하는 가장 미련한 방법이다. 이주노동자들은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쫓겨났다. 그럼 그들의 고용주들은? 일손이 없어져서 다들 고생이고 소비자들은 채소 가격이 올라서 고생 아닌가. 근데 이걸 자랑삼아 발표하고 있다. 한심하다."

- '불법 체류자'라는 용어가 정부·언론에서 많이 쓰이는 것도 문제 아닌가.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은 불법이구나, 범죄자구나' 이런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유엔 등에서 그런 용어를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데도 계속 쓴다. 시민들과 이주민들을 갈라놓으려는 전략이다. 비자가 없는 사람은 '불법이다', '권리를 인정해 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는 거다. 정부와 언론이 왜 저런 일을 벌이는지 간파하고 퇴치하려는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다."

"임금체불, 성폭력 당해도 회사 옮기기 힘든 '고용허가제' 큰 문제"
 

2020년 12월 한파 속 난방이 안 되는 비닐하우스 속 불법 가건물 기숙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고 누온 속헹씨가 2022년 5월 산재 승인을 받은 가운데, 그의 첫 추모제가 2022년 6월 18일 열렸다. ⓒ 조혜지

 
- '왜 떳떳하게 등록을 안 하고 미등록으로 있느냐'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주노동자가 정규적인 절차를 거쳐 노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주는 게 정부와 사회의 책임인데 그게 잘 안되지 않나. 그 통로가 너무 좁다. 우리나라의 '고용허가제' 얼마나 문제가 많나. 한국어 시험 고득점을 해야 하고 기업주들에게 선택도 받아야 한다. 지금 당장 길을 건너야 하는데 횡단보도가 저 멀리 있다면 상당수는 무단횡단을 하는데, 그런 현실이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면, 횡단보도를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 고용인이 합법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게 하는 '고용허가제'로 인한 이주민 노동자들의 어려움이 크다고 들었다. 

"고용허가제 노동자는 10년 가까이 일해도 회사를 옮길 수 없고, 영주할 수 없고, 가족을 동반할 수 없다. 고용허가제에 의하면 이주노동자는 제조업·건설업·농축산업·수산업 등에서만 일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심지어 임금체불이나 산업재해, 폭언·폭행·성희롱·성폭행 등을 당해도 회사를 바꾸기 힘들다. 고용주들에게 '너 지금 그만두면 불법 체류자로 만들어서 신고할 것'이라고 협박당하기도 한다.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구조가 문제다. 사업장 변경 제한 폐지,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 전면 적용, 가족결합권 보장, 일정 자격을 갖추면 취업 업종과 규모 제한 폐지, 영주권 부여, 농축어업 노동자 등에게 근로시간·휴게·휴일에 관한 규정 적용을 제외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63조 개정, 농어업 노동자에 대한 임금채권보장법 전면 적용 등 조치가 시급하다."

이란주 활동가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주민에게 권리가 어딨어? 한국에서는 한국 사람이 주인이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주민도 사람이라는, 우리와 같이 일하며 꿈꾸고 행복하고 싶은 '똑같은 존재'라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책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를 읽으며 함께 품어본다.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 (표지 5종 중 1종 랜덤) - 한국에 사는 이주민들의 생존 보고서

고기복, 고태은, 김나연, 김선향, 김애화, 리온소연, 명숙, 반수연, 부희령, 송경동, 시야, 안미선, 오시은, 우삼열, 우춘희, 이경란, 이란주, 이수경, 정윤영, 정은주, 홍주민, 희정 (지은이),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기획), 후마니타스(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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