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9 07:11최종 업데이트 23.11.0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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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7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2023년 바르게살기운동 전국회원대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더는 새롭지 않다. 2000년 이전도 아닌 1990년 이전으로 성큼성큼 후퇴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대구 엑스코를 방문해 '2023년 바르게살기운동 전국회원대회'에서 발언한 내용은 과거의 유물인 관권선거까지 되살아날 조짐을 보여줄 만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축사 서두에서 "전국의 80만 바르게살기운동 회원 여러분, 2023년 바르게살기운동 전국회원대회 개최를 축하드립니다", "전국 각지에서 이렇게 오신 8천여 명의 바르게살기운동 회원 여러분을 뵈니까 더욱 든든합니다"라고 운을 뗀 뒤 '가짜'와 관련된 단어들을 인상적으로 사용했다.


"1989년에 설립된 바르게살기운동은 진실·질서·화합이라는 3대 정신을 중심으로 따뜻한 사회와 국민통합을 이뤄냈습니다"라며 '진실'을 언급한 그는 "바르게살기운동은 삶의 질을 높이는 국민의식 개혁운동이고 거짓과 부패를 추방하는 바른 사회 만들기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그런 뒤 이렇게 말했다.

"바르게살기운동이 지금 가짜뉴스 추방에도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가짜뉴스 추방 운동이 우리의 인권과 민주정치를 확고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가짜뉴스 추방은 바르게살기운동 같은 관변단체뿐 아니라 일반 시민단체를 포함해 국민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이 단체가 역점을 두는 가짜뉴스 추방 운동은 눈길을 끈다.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홈페이지의 지난 9월 1일 자 '중앙회 소식'에 행사 사진들과 함께 이런 내용이 실렸다.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는 23.08.31(목) 서울시의회 앞에서 '가짜뉴스 근절과 우리 수산물 소비 촉진 결의대회'를 진행하였습니다. 바르게살기운동의 전국회원 1천여 명은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에 관한 가짜뉴스가 확대 생산돼 막연한 불안감으로 수산물 소비가 위축되고 어민과 수산업계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어, 이에 대한 가짜뉴스 유포 방지를 위한 법적인 근본 대책을 촉구하고 국내 수산물 소비 촉진 결의대회를 했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제1차 방류는 지난 8월 24일 개시됐다. 엿새 뒤 한덕수 국무총리가 "정확히 얘기하면 과학적으로 처리된 오염수"라는 이상한 말을 하면서 오염수란 용어의 변경을 검토할 뜻을 내비쳤다. 그런 직후에 바르게살기운동중앙은 위와 같이 '후쿠시마 처리수'에 관한 가짜뉴스 캠페인을 대규모로 벌였다.

어민과 수산업계 보호는 국민 모두가 당연히 신경 써야 할 일이다. 오염수의 실상을 정확히 알리면서 어민과 수산업계를 보호할 방법을 강구하는 게 최선이다. 바르게살기운동처럼 오염수 문제의 위험성을 도외시한 채 서둘러 가짜뉴스부터 운운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얼마나 정치적인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사회정화에서 바르게살기로

지난 4월 7일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산하 '팬덤과 민주주의 특별위원회'가 가짜뉴스 대응 방안을 발표하고, 그달 20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가짜뉴스 퇴치 TF'를 전면 강화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가짜뉴스와의 전쟁'이 본격화된 뒤인 지난 6월 23일, 임준택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외희 회장의 부적절한 인터뷰가 <미래한국>에 보도됐다.

작년 10월 27일 선출된 임준택 회장은 "주요 비전과 추진 목표는 무엇인지요?"라는 질문에 "역점 사업으로는 가짜뉴스 추방운동"이라고 답했다.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 방안은 무엇입니까"?라는 추가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광우병 파동, 천안함의 미국 격침설, 세월호의 잠수함 충돌설 등 과거의 거짓뉴스는 물론 최근에도 근거 없는 가짜뉴스가 국민들의 눈을 혼란시키고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심지어 현재 가짜뉴스가 대통령 부부를 겨냥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회장이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가짜뉴스에 대해서까지 우려를 표했다. 단체 대표자인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이 단체가 근절하겠다는 가짜뉴스와 대통령실이 근절하겠다는 가짜뉴스가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대통령실이나 국민의힘에나 어울릴 만한 발언을 혈세 지원을 받는 단체의 대표자가 해도 되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1989년에 설립된 바르게살기운동은"이라고 언급했지만, 이는 사실을 정확히 반영한 발언이 아니다. 진보적 에너지가 폭발한 6월항쟁 2년 뒤에 이 같은 대규모 보수단체가 창설되려면, 진보를 억누르는 엄청난 사회적 에너지가 분출됐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분출은 없었다.
 

1991년 9월 30일 자 <동아일보> 기사 '바르게살기운동 또 국고 지원'은 "5공 때의 사회정화위원회의 조직과 인원을 흡수해 지난 89년 4월 민간단체로 발족된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라고 보도했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바르게살기운동이 발족했다는 1989년 4월 1일은 간판을 바꿔 단 날이지 처음 설립된 날이 아니다. 1991년 9월 30일 자 <동아일보> 기사 '바르게살기운동 또 국고 지원'에 "5공 때의 사회정화위원회의 조직과 인원을 흡수해 지난 1989년 4월 민간단체로 발족된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라는 표현이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단체는 전두환 정권 때의 사회정화위원회의 후신이다.

5·18 광주 학살 5개월 뒤인 1980년 10월 28일 제정된 사회정화위원회설치령에 의해 신설된 사회정화위원회가 민간 기구인 사회정화추진협의회와 보조를 맞춰 벌인 사업이 있다. 제5공화국 최대의 인권유린으로 불리는 삼청교육대 사건이다.

사회정화위원회가 '똑바로 살라'며 1981년 1월까지 '신체 훈련'을 시킨 국민만도 무려 6만 755명이다. 현장에서 52명이 희생되고 후유증으로 397명이 희생됐다. 정신장애 등으로 상해를 입은 피해자도 2678명이나 된다. 이 단체가 말하는 사회정화 혹은 바르게 사는 것의 의미를 드러내는 비극적인 참상이다.

1989년 10월 6일 자 <동아일보>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의 치열한 공방'에 따르면, 전날 국회 내무위원회 감사 때 평화민주당 이영권 의원은 김태호 내무부장관을 향해 "이 문제는 5공 청산이 아니라 5공 회귀의 상징적인 사안"이라고 발언했다. 삼청교육대 사건을 주도한 사회정화위원회를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로 부활시켰으니 이런 비판이 나올 만도 했다. 사회정화와 바르게살기라는 두 단어의 문자적 의미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보수 관변단체 지원하고 응원
 

지난 6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행사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 대통령실


사회정화위원회는 수많은 가짜뉴스를 유포하면서 무고한 국민들을 삼청교육대로 몰아넣은 뒤 때리고 고문했다. 이런 단체를 계승한 바르게살기운동이 가짜뉴스 근절을 외치고, 윤석열 대통령이 대구까지 찾아가 응원을 했다.

이 단체의 전신인 사회정화위원회를 앞세워 거짓 정보를 유포함은 물론이고 관권 선거운동에까지 동원한 전두환 정권의 모습이, 다가오는 총선을 계기로 윤석열 정권하에서도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바르게살기운동과 더불어, 과거 보수정권의 여론조작 및 관권선거에 악용된 또 다른 단체가 한국자유총연맹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28일 이 단체 69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현재 우리는 많은 도전과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라며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허위 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가짜뉴스 문제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

6월에는 극우 유튜버들이 자유총연맹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8월에는 바르게살기운동·한국자유총연맹·새마을운동중앙회에 대한 금년도 국가 및 지방 보조금이 작년보다 약 26억 원 오른 231억 8210만 원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윤 정권은 독재정권 시절에 악명을 떨쳤던 보수 관변단체들을 지원하고 응원하고 있다. 이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가짜뉴스 척결, 대통령 부부 관련 가짜뉴스 척결 등의 활동에 나서거나 이를 운운하고 있다. 정권과 관변단체가 지나치게 밀착하는 이 같은 분위기는 한국 민주주의가 1987년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더군다나 총선을 앞둔 시점이다. 이런 시점에 대통령이 이들을 찾아가 독려하며 가짜뉴스 척결을 운운하는 것은 이 단체들의 과거 전력으로 볼 때 관권선거·부정선거 우려까지 갖게 만든다. 이는 6월항쟁과 촛불혁명으로 힘들게 쌓아 올린 한국 민주주의를 허무하게 무너트리는 길이자 한국 사회를 바르지 못한 길로 인도하는 일이다. 바르게 살기가 꼭 필요한 곳은 국민들이 아니라 윤석열 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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