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6 20:07최종 업데이트 23.11.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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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6일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탄 시민이 서울 중구 '세종대로 사람숲길' 자전거 전용도로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자료사진. ⓒ 유성호

 
편도 약 11킬로미터. 자전거 출퇴근으로 적당한 거리지만 험준해 보이는 고개를 넘어야 했다. 이리저리 우회 노선을 그려봤지만, 집을 들어 옮기지 않는 한 산만해 보이는 고개를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힘으로 넘는 수밖에! 중간에 내려서 끌고 가도 괜찮다! 위로하고 각오하며 페달을 밟았으나 어느새 홀딱 넘어버렸다. 뭐야! 되는 거였어? 스스로 대견하단 느낌도 잠시. 나를 멈추게 한 건 이젠 그깟이 된 미아리고개가 아니었다.  

자전거를 타려면 자전거도로가 설치된 곳에서는 자전거도로로, 자전거도로가 설치되지 않은 곳에서는 차로 우측 가장자리에 붙어서 통행해야 한다(도로교통법 제13조의1). 보도에서의 자전거 주행은 금지이다. 단, 만 13세 미만 어린이나 만 65세 이상 노인, 신체장애인 그리고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나 도로 파손 등의 장애로 도로 통행이 불가한 경우는 예외다.  


그렇게 서울시의 야심작 따릉이를 타고 자전거 전용도로나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를 이용하며 출퇴근하고자 했던 결기는 덧없이 접어야 했다. 이미 미아사거리부터 (미아리고개도) 성북동 사무실까지의 구간은 그 어떤 유의 자전거도로도 없었다. 결국 차로 오른쪽 가장자리에 붙어서 타야 했는데, 그렇게 자전거를 타 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비자전거 전용' 차도로 인지되고 있는 그 도로에서 자전거로 달린다는 것은 형벌과 같았다고나 할까? 

'비자전거전용' 도로라는 표현을 굳이 가져온 건 우리나라 차도 혹은 차도 이용자(자동차 운전자)는 자전거에 대한 권리를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자동차 운행을 방해하는 수단으로 여긴다고 생각되기 때문인데, 이 점은 자전거 수송분담률이 높은 나라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자전거에 더 많은 공간과 권리를!'
 

대표적인 자전거 도시인 덴마크의 코펜하겐. 자전거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 임성희


독일에서 거주할 당시 자동차가 없었던 난 일 년에 한두 번 차를 빌려 여행을 했다. 독일에서의 첫 운전지는 베를린이었는데, 내비게이션은 가라고 하는데, 좌회전 화살표 신호가 보이지 않았다. 파란불에서 맞은편 차량이 없을 때 좌회전하면 된다지만, 비보호 표지판도 없는데 좌회전하는 게 처음엔 쉽지 않았다.

가슴 졸이며 긴장한 채 눈치를 보다가, 마침 좌회전하는 자전거 꽁무니를 조심조심 따라갔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앞 차량의 깜빡이를 길잡이 삼아 쫓아가듯, 1차선에서 좌회전을 하는 자전거는 구세주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전거로 1차선에서 좌회전을 하면 안 되고, 훅턴(도로의 우측 가장자리로 붙어 서행하면서 교차로 가장자리 부분을 이용해 좌회전)이란 것을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은 한참 뒤에 알았다.

독일에서는 자전거는 차선이 여러 개일 경우 우측 차선으로 운행하고, 편도 1차선일 경우 다른 차량과 마찬가지로 차선을 차지하고 주행할 수 있었다. 누구도 자전거 때문에 빨리 가지 못하고 늦어진다는 것에 대해 신경질을 부리거나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뉴스에서는 자전거 시위, 자전거가 차도를 점유할 당당한 일원임을 주지시키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때마침 발표된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공간정의보고서(2014)"가 산출한, 자전거 운전자보다 자동차 운전자가 도로나 주차 면적에서 19배나 많은 면적을 누리는 것은 공간 정의에 어긋난다는 내용을 밑줄 치며 읽었던 기억도 난다. 
 

독일 도시 내 이동 수단별 평균 소요 시간 그래프. y축:시간(분), x축:거리(킬로미터). 파랑:도보, 연두:자전거, 초록:전기자전거, 주황:버스와 전철, 보라: 자동차. ⓒ 독일연방환경청


독일 도시 내 이동 수단별 평균 소요 시간을 나타낸 그래프는 거리가 짧을수록 자전거가 가장 빠른 이동 수단임을 보여준다. 독일의 도시 뮌스터는 자전거 수송분담률이 39%로, 자가용 분담률 MIV(개인승용차) 29%를 능가하고 있다. 

우리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독일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도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의 공간 독점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다. 독일 자전거 클럽(Allgemeiner Deutscher Fahrrad-Club, 회원 23만 명)은 '자전거 혁명!' (RADVOLUTION! RAD는 Fahrrad 자전거의 약칭이다)이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자전거에 더 많은 공간과 권리를!'이 슬로건이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생각하면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이동으로 자전거 타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과 달리, 100년 전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도로법에 근거해 여전히 자동차가 최우선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으니, 이제 자동차가 우대되는 시대를 마감하고 이동 수단의 동등한 권리를 획득하자고 주장한다.

자전거 활성화에 필요한 것은 주행이 보장되는 '길'
     

2050 서울시 기후행동계획. 친환경 이동 수단을 위한 도로 공간 전면 재구조화를 밝히고 있다. ⓒ 서울시

 
서울시는 2050 기후행동계획을 발표하며 친환경 이동 수단을 위한 도로 공간을 전면 재구조화한다고 밝히고 있다. 먼저 도로 공간 재편을 통해 차도를 줄이고 보행 및 녹색교통공간을 확보한다. 2025년까지 28.62km 길이의 22개 도로를 정비한다. 승용차 차로를 4차로 이하로 축소하고, 대중교통 및 보행자를 위한 공간을 확대한다.

또한, 서울 전역 핵심 지역에 자전거전용도로(Cycle Rapid Transit)를 구축하고, 서울시 공공자전거인 '따릉이'를 확대한다. 2021년까지 따릉이 약 4만 대를 보급하고 대여소를 3040개소로 확충하여 도보 5분 거리 내에 따릉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자전거 통행량을 일 230만 통행을 달성하고, 자전거간선도로를 623km까지 확대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계획은 자전거 수송 분담률에 어떤 기여를 하는 것일까?

서울시 수단별 분담률(2021년)을 보면, 전체 통행량 2387만 중 버스 24.9%, 지하철 28%, 승용차 38.0%, 택시 3.7%, 기타 5.5%이다. 기타는 도보 및 자전거를 제외한 오토바이, 화물차, 특수차를 말한다. 자전거는 아예 분담률 산출조차 되지 않고 있는데 산출의 의미가 거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전거는 여가수단을 넘어 교통수단으로, 수송분담률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목표가 설정되고 그에 맞는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하는데, 정책의 목표는 무엇인지, 과연 도로 공간은 전면 재구조화될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서울시는 2023년도 에너지 기부·라이딩을 상반기와 하반기에 진행했다. 자전거를 활용해 저탄소 생활문화를 정착시키고 자전거 출퇴근을 활성화하고자 함이었단다. 출퇴근을 가장 많이 한 10명에게 최다 참여상을 주는 등 여러 증정 행사를 비롯해 참가를 독려했다.

그러나 자전거로 출퇴근할 길이 제대로, 아니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본 행사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자전거 출퇴근 활성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경품이 아니라,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여건임은 자전거를 한 번이라도 타 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아닐는지. 

주행 중 대기오염물질과 온실가스 배출 없이 쾌적한 환경에 삶의 질도 향상시킬 수 있는, 소음도 없고 비용도 저렴하며 건강에도 좋은, 주차공간(자동차 1대당 8대의 자전거 주차공간이 확보된다)도 주행공간도 절약되는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주행이 보장되는 '길'이다.

5분 안에 따릉이를 탈 수 있는 것을 넘어 따릉이를 타고 원하는 곳까지 자전거 이동이 가능하도록 도로를 확충하는 일. 그래서 자전거 수송 분담률을 높일 수 있는 도로의 전면 재구조화가 시급하다. 이는 공간의 정의로운 재편과 함께 도로의 지속가능성,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열어가는 해법 중 하나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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