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0 13:25최종 업데이트 23.12.2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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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은 2023년을 마무리 하는 기획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도전, 실패,인물 등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우리는 지난 1년간 오마이뉴스에 '싸움의 뒷이야기: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 백브리핑'이라는 연재를 통해 독자들과 다양한 기사로 인사를 나누었다.

국가폭력피해자인 납북귀환어부들의 재심 지원 이야기(10분만에 재판 끝... 피해자 두 번 울린 검찰 https://omn.kr/23cfg)를 시작으로 공익 제보자 이야기, 발달장애인 등 장애인 사건, 군사망 사고 피해자, 세월호 등 사회적 참사 피해자, 비정규직 노동자, 강제징집 녹화사업 피해자, 외국인 노동자 학대 및 임금체불 사건, 각종 성폭력 사건, 전세사기 피해자, 종교의 차별 행위와 관련한 싸움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면을 최대한 쉽게 담으려 노력했다.


파이팅챈스의 지면은 여러 명의 기자가 각자 필요한 기사를 시의성에 맞게 작성하기 때문에 기사의 논조나 문체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원칙은 항상 같았다. '고통의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원고를 쓸 때 항상 고민되는 지점이 있었다. 어떤 사안이 발생하고, 그 사안에 대한 기사를 작성해 송고하려 하면 또 다른 사안이 일어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무엇을 먼저 작성해 송고해야 하나 고민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겐 늘 공론화가 필요한 기사가 우선순위였다. 

생각지도 못한 법원과 검찰의 변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 권우성


납북귀환어부는 올 한 해 연재를 여는 기사 글이었고, 연재 기사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만큼 주목을 많이 받았고, 또 실제 기사를 통해 만들어진 여론은 법원과 검찰의 변화를 끌어내기도 했다.

납북귀환어부 사건에서는 특히 재심 재판에서 보인 검찰의 무성의한 공판 자세를 비판했다. 진실화해위원회 등 과거사 위원회를 통해 납북귀환어부의 전반적인 사건이 국가 폭력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것이 확인, 결정되었는데도 검찰은 재심 개시 결정 이후에도 기존의 기소 입장을 유지하며 유죄 선고를 고수했다(관련기사: 한동훈 장관 말 안 듣는 검사? 납북피해 어부들 분노 https://omn.kr/23hdx).

이런 검찰을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했고, 검찰은 얼마 후 결심 공판에서 울먹이며 무죄 의견을 제시하고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기도 했다(검사마저 울먹이자 법정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https://omn.kr/23x0c). 참고로 4·3 수형인 재심 법정에서도 검사가 목메어 울먹이면서 무죄를 구형한 적이 있다("검사가 울먹이며 '무죄' 구형..." 이 놀라운 광경이 제주에 남긴 것 https://omn.kr/26e3c).  

이후 속초·강릉·춘천지방검찰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가 승선했던 동일한 선박의 선원을 찾아내 직권으로 재심을 신청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또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 무리한 항소를 하지 않아 피해자의 아픔을 덜어주는 모습도 보였다.

이러한 검찰과 법원의 모습은 불과 2년 전 납북귀환어부 피해자의 진상 규명을 요구할 당시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변화였기에 피해자들은 이러한 국가의 모습에 크게 위로받은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아쉬운 점

이러한 검찰과 법원의 변화된 모습에도 여전히 피해자는 목마른 것이 사실이다. 

동해와 남해, 서해에서 이미 수백 명의 납북귀환어부 피해자가 국가 폭력에 의해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자로 조작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그로 인해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면서 일선 검찰의 담당 검사들이 사과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와 70년대를 걸쳐 수천 명의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를 만들어 기소해 유죄 의견을 냈던 검찰의 최고 책임자인 검찰총장과 법무부는 아직도 아무런 사과를 하지 않았다. 검찰은 처벌 이전에 사법 오류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는지 주의하고 또 주의하며 수사 및 기소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당시에도 불법 감금과 가혹 행위가 만연하고, 월선 여부가 불분명하며, 피해 선원들이 범행 사실 자체를 부인했는데도 마구잡이 식으로 기소하고 처벌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렇게 해서 추락한 사법에 대한 신뢰는 법무부와 검찰의 대표자가 직접 피해자의 손을 어루만지며 위로할 때만이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아쉬운 점은 모든 납북귀환어부의 재심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과 몇 개월전까지만 해도 납북귀환어부들은 스스로 자료를 모으고,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여 진실규명 결정을 받아야 했으며 스스로 재심을 신청해야 했다. 입증할 자료를 찾지 못한 피해자들은 여전히 자료를 찾을 때까지 재심이라는 문턱을 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원회는 납북귀환어부 사건과 관련해 여러 차례 진실규명 결정을 하면서 당시 어부들이 고의 월선한 증거를 찾기 어렵고, 납북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더욱이 귀환 후 수사기관에 의해 불법으로 수사·기소되었다는 점을 들어 납북귀환어부에 대한 직권 재심을 여러 차례 권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재심을 신청하는 것은 피해자의 몫이며, 재심을 입증해야 하는 것 역시 피해자의 몫인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과 대전, 성남에 있는 국가 기록과 검찰청에 남아있는 공판 기록을 일일이 확인하고 제출해야 하는 것이 피해자들에게는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검찰은 5·18 특별법이나 4·3 특별법과 같이 직권재심을 위한 방안을 논의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회에서 납북귀환어부와 관련한 특별법 등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납북귀환어부의 피해 구제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납북귀환어부의 피해 구제는 법원에서 재판을 통해 확정 판결 받은 피해자들이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확정 판결을 받은 납북귀환어부 이외에 더 많은 기소 유예, 벌금형 등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기소유예, 벌금형을 받았는데도 다른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과 동일하게 수사기관으로부터 연좌제 피해, 감시와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국가는 이러한 피해자들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규모를 파악해 '선제적'으로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를 위해 내년에도 계속 활동할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움직이고 소리친 만큼만 움직인다
 

납북귀환어부 재심 재판에서 검찰의 직무유기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들 ⓒ 변상철


올 한해 파이팅챈스 활동을 통해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세상은 우리가 움직이고 소리친 만큼만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누리기 위해 거저 얻는 것은 없다는, 누군가의 노력에 기대거나 요행을 바란다면 권력은 우리의 권리를 다시 빼앗아 간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달은 한해였다. 

기사 말미에 가장 많이 달리는 댓글이 있다. '아직도 과거사 타령이냐'는 댓글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부끄러운 과거사를 정리하지 못했느냐'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아픈 과거, 부끄러운 과거를 정리하지 못하고 이러한 과거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화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서울의 봄'은 어떤 권력기관에 의해서든 재현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재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암울한 시간이 지속되지 않기 위해 '파이팅챈스'는 내년에도 우리 사회에서 '고통의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오마이뉴스> 지면을 통해 계속 낼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소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그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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