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0 10:55최종 업데이트 23.12.20 11:40
  • 본문듣기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태열 전 외교부 2차관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외교·안보 라인 수뇌부 인선안 발표 브리핑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와 함께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승무' 시인 조지훈의 아들인 조태열 후보자는 24세 때인 1979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스페인주재 대사, 외교부 제2차관(2013~2016), 유엔주재 대사(2016~2019) 등을 역임했다.

이날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조태열 후보자는 양자와 다자 경험이 풍부하고 특히 경제·통상 분야에 해박"하다며 "통상 전문성과 외교 감각은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현안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들도 대체로 이번 개각을 이런 시각에서 보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최대 외교기조는 통상관계 보호가 아니라 한일관계 및 한미일 삼각체제 강화다. 이는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스스럼없이 손상시킨 데서도 나타난다. 윤 정권하에서는 통상 문제나 수출 기업의 고충을 우선시하는 외교부 장관은 '친중 분자'로 오인되기 쉽다. 통상의 가치를 중시하는 외교부 장관은 경우에 따라 정권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상황에서 외교부 장관으로 발탁되는 인물이 통상관계의 이익을 최우선시하기 힘들다는 점은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직후에 조태열 후보자가 보인 반응에도 묻어 있다고 할 수 있다.

19일 대통령실에서 밝힌 지명 소감에서 그는 "미·중 전략 경쟁과 우크라이나전쟁 등으로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요동치면서 안보와 경제의 벽이 허물어지는 지정학적 대변화 시기에 외교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돼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안보와 경제의 벽이 허물어져 있다고 했다. 안보 논리에 맞서 통상의 이익을 지켜내기 힘들다는 인식이 깔린 발언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조태열 후보자가 통상의 이익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점은 2021년 4월 7일자 <매일경제> 기고문인 '동맹과 파트너 사이의 균형외교?'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 글에서 그는 무역상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안미경중'론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표출했다.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한다'는 논리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발언했다. 그의 말은 이랬다.

"안미경중은 정책이라고도 할 수도 없지만 현실성도 없는 얘기다. 상대국 입장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는 나라를 누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여기겠는가? 지구적 차원에서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양국이 이를 묵인할 리도 없지 않은가?"

조 후보자는 작년 11월 15일자 <매일경제> '가치외교의 함정'에서 중국 신장자치구 인권문제에 대한 압박을 주문하면서 "한반도 안보에 무관하다고 국제 평화에 반하는 행위에 침묵하는 것도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그가 중국과의 통상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점은 이런 데서도 살며시 드러난다.

통상 문제를 가벼이 대하는 장관 후보자

인도는 미국·일본·호주와 함께 쿼드를 결성해 중국 견제에 동참하면서도, 브라질·러시아·중국·남아공과 함께 브릭스를 형성해 결과적으로 중국·러시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또 미국과 서방세계가 러시아를 견제하는 속에서도 러시아산 원유를 값싸게 대량 수입해 자국과 러시아 양쪽에 이익을 주고 있다.

조태열 후보자의 말마따나 "상대국 입장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는" 인도는 자국의 위상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라지나트 싱 인도 국방부장관은 지난 7월 16일 '인도가 말하면 이젠 전 세계가 경청한다'고 발언했다. 지난 11월 말을 기준으로 인도 증권시장이 홍콩 증시를 제치고 세계 7위로 부상했다는 12일 자 보도도 있었다.

양상은 다소 다르지만 유럽연합과 아세안 국가들도 미국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듯이 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중국과 마주앉아 공동이익을 모색한다. 통상 전문가라면 이런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균형잡힌 외교의 필요성을 역설해야 마땅하다. '안미경중은 현실성 없다'며 통상 문제를 가벼이 대하는 조태열 후보자의 모습은 통상 전문가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 역시 통상관계의 이익을 지키기보다는 미·일에 경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한일 역사문제에 대한 인식에서도 표출된다. 위 신문의 작년 9월 7일자 기사 '강제징용 갈등, 현실과 인식의 괴리'에서 그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에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시하지 않은 일을 "건설적 모호성"으로 평가했다. '건설적'에서 나타나듯이 그는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통칭 한일협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기사에서 조 후보자는 2018년에 대법원이 강제징용 손해배상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일본의 배상 이행을 촉구하는 한국 여론을 겨냥해 "국내의 담론은 온통 대법원 판결 이행과 피해자 배상 방식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논쟁은 실종 상태다"라며 안타까워 했다. 문제를 근원적으로 종식시키는 길은 일본이 사죄하고 배상하는 것인데도 그는 이를 외면했다.

그는 사법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인식을 드러냈다. "압류자산 현금화 문제와 같은 걸림돌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제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본이 판결 이행을 거부하는 상황에서는, 국내의 일본 자산을 현금화해서라도 고령의 피해자들에게 적으나마 배상금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런데도 법원에 의한 현금화 문제는 걸림돌이므로 제거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가 추천한 해법은 정치적 해결이다. "정치적 해법을 모색한 후 이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최종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 판결만 이행돼도 피해자들의 한이 어느 정도 풀릴 수 있는데도,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결단에 맡기자고 했던 것이다.

조태열 후보자의 극우적 인식
 

2015년 12월 29일 외교부 조태열 2차관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살고 계신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조 후보자는 2015년 12월 28일 발표된 한일 위안부합의 당시의 외교부 차관이다. 합의 결과를 설명하고자 다음날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을 방문한 그는 "정부가 너무하는 것 같다. 우리를 인간 취급 안한다"(유희남 할머니)는 피해자들의 분노에 직면했다.

이 상황에서 그는 아베 신조 총리의 행동을 높이 평가했다. 아베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 일을 "일본 정부와 총리가 우리 정부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공식 사죄한 것"이라고 과대 평가했다. 그런 뒤, 할머니들에게 훈계조 발언을 했다. 그달 29일 자 <뉴스1>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외교부 차관 대화 내용 요약'에 따르면, 이런 말을 했다.

"할머니들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이끌어낸 것은 성과이다. 코끼리의 다리 하나만을 보지 마시고 전체를 들여다보고 의미를 평가해달라."

합의 다음날인 29일에 아베 신조가 측근들에게 "어제 일로 모두 끝이니 더 이상 사죄하지 않는다"며 신경질적 반응을 보인 사실이 30일 자 <산케이신문>에 보도됐다. 이런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아베의 전화통화는 공식 사과로 보기 힘들다. 게다가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을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위안부합의는 사과·배상이 결여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조태열 후보자는 일본 정부의 조치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코끼리 다리만 보지 마시고 전체를 보시라고 할머니들을 '훈계'했다.

위의 '가치외교의 함정' 기고문에서 조 후보자는 가치외교 개념을 두고 "실용외교에 반대되는 개념인 듯하지만"이라고 말했다. 이 글에서 그는 신장자치구 인권문제에 침묵하지 않는 것을 가치외교의 일환으로 이해했다. 이처럼 실용외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중국 소수민족 인권을 지켜야 한다고 역설하는 그가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 둔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역사문제에서 드러난 조태열 후보자의 극우적 인식은 윤 정권이 그를 박진 장관의 후임으로 발탁한 배경 중 하나를 보여준다. 통상 문제에 대한 전문성뿐 아니라 한일 역사문제와 관련해 정권과 코드를 같이하는 점도 비중 있게 고려됐으리라 볼 수 있다.

지난달 23일,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새로운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이 판결을 실현시켜 피해자들이 배상금을 받도록 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했으므로 강제징용 현금화 사건을 빨리 처리하라는 요구도 거세질 것이다.

한일 역사문제가 이처럼 첩첩산중인 상태에서 '구관' 못지않은 '신관'이 내정됐다.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 한국 피해자가 아닌 일본 가해자 편에 서 있는 지금의 모순이 개선될 여지는 여전히 희박해 보인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