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0 15:38최종 업데이트 24.01.10 15:38
  • 본문듣기

지난 8일 당시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지난해 7월 28일에 김영호 통일부 장관, 10월 7일에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임명된 데 이어 10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임명됐다. 지난 8일 당시 조태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치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9일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고, 10일 윤 대통령이 임명안을 재가했다.

박진-이종섭-권영세로 출범한 통일·안보 관계 장관들이 조태열-신원식-김영호로 바뀌었다. 이 분야 장관들의 능력은 대한민국을 얼마나 잘 지켜내고 한반도를 얼마나 평화롭게 만드느냐로 판단된다. 그런데 새로운 장관들이 이전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볼 만한 근거가 별로 없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소지마저 다분하다.


조태열·신원식·김영호에게서 공통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이 있다. '북방한계선'에 과도하게 집중한 나머지 '동방한계선'이나 '남방한계선'에는 주의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조태열 장관은 강제징용 손해배상소송과 관련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혹은 재판거래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2022년 9월 7일 자 <매일경제> 기고문인 '강제징용 갈등, 현실과 인식의 괴리'에서 1965년 한일협정을 '건설적 모호성'으로 긍정 평가하는 한편, 대법원의 2018년 강제징용 손해배상판결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관련기사: 조태열 "강제동원 재판 거래 관여 안해...제3자 변제안, 윤 대통령 용단"https://omn.kr/2703y)

그는 한일 위안부합의 다음날인 2015년 12월 29일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을 방문해 위안부 피해자들 앞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이끌어낸 것은 성과"라며 위안부 합의를 과대 평가했다. 그런 뒤 "코끼리의 다리 하나만을 보지 마시고 전체를 들여다보고 의미를 평가해달라"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훈계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인사청문회가 열린 지난 8일 국회에서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그에 대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시선을 반영한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당사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한국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의 명확한 해결을 희망하기 마련이다. 이 문제가 매듭지어져야 한국인들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본 여론이 '한반도 재침' 쪽으로 쏠리는 것도 견제될 수 있다.

1880년대부터 특히 해군 방면에서 전개된 일본의 군사대국화의 결과로 한국이 식민지로 전락하고 이것이 강제징용·위안부·강제징병 피해로 연결됐기 때문에, 일본 군사대국화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들의 중대성도 함께 인식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으로 보이는 조 장관이 한국 외교가 일본 군사대국화에 대비할 가능성은 작어 보인다.

동맹국이나 우방국에 배신당한 역사적 사례들이 차고 넘치므로, 적대국뿐 아니라 동맹국과 우방국에 대해서도 일단은 선을 유지하는 게 당연하다. 실제적인 장벽을 구축하지는 않더라도 동서남북 모든 방위에 대해 '한계선'을 긋고 거리를 유지하는 게 마땅한 것이다. 조 장관이 그러한 필요성을 느끼게 될지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 장관들, 일본 군사대국화 움직임에도 경각심 없나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대한민국 각료 중에서 독도에 대해 가장 강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직책은 국방부 장관이다. 독도는 역사뿐 아니라 영토 안보와도 직결되므로, 국방부 장관은 독도를 수호하는 일에 그 누구보다도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신원식 장관의 국방부는 '독도는 분쟁 중'이라는 일본 측 주장을 그대로 담은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를 발간했다. '독도는 분쟁 중'이라는 국제여론을 확산시켜 국제사법재판소 등에 이 사안을 가져가려 하는 일본의 전략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었다. 신원식 장관은 독도를 지켜낼 적임자의 자격을 잃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가 지난해 12월 28일에 이번 사태를 사과하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일본 측에 유리한 자료를 대한민국 국방부가 이미 퍼트렸다는 사실이다. 국방부는 교재만 회수했을 뿐이지, 향후 일본이 이 교재를 활용할 가능성까지는 회수하지 못했다.

항일투사 홍범도에 대한 비판을 윤석열 정권 내에서 확산시킨 신원식 장관이 독도와 관련해서도 일본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이런 인물이 국방을 책임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동쪽 안보가 얼마나 안전할지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사무처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9.19 군사합의 관련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북한 문제에 일차적으로 집중하는 듯 보이지만, 그의 활동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선을 허무는 작용도 함께하고 있다. 통일부 장관답지 않게 일본과 연대해 북한을 압박하는 듯한 그의 언행은 한국 국민들의 시선을 북쪽으로 돌리는 한편,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경각심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외교·국방·통일 장관들이 이처럼 한결같이 북쪽의 위험성에만 과도하게 집중하고 동쪽과 남쪽의 위험성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니, 한국 안보는 이전보다 퇴보했다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정권은 일본 군사대국화가 동아시아의 균형을 깨트리면서 한국 안보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경계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내각 2인자의 위험한 발언... 한국은 괜찮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아소 다로 일본 자민당 부총재와 만찬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여, 경계심을 풀지 말라'는 메시지가 월요일인 8일 오전 일본에서 역설적 방식으로 나왔다. 이날 일본 후쿠오카현 내의 북부 지역인 노가타시에서 열린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의 국정보고회(의정보고회)는 일본군이 상대방의 동의 없이도 우방국에 얼마든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8일 오후에 발행된 인터넷판 <아사히신문> 기사 <"'대만에서 싸우지 않는 한, 국민 구출은 어렵다' 자민 아소 부총재">에 실린 아소 다로 발언록에 따르면, 14선 중의원 의원인 그는 국정보고회에서 "지금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며 일본군이 대만에 가야 할 이유를 이렇게 제시했다.
  
"대만에는 일본인이 정식으로 등록된 사람만 해도 2만 400명이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체류하고 있다. 무언가가 대만에서 일어나고 그것이 전쟁이 될 경우, 우리는 대만에 있는 일본인을 구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연히 해상자위대, 그런 조직이 구출한다. (중략) 대만에서 싸우지 않는 한, 우리는 국민을 무사히 구출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제까지와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는 대만해협에서 싸운다."

대만은 일본의 우방국이다. 아소 다로는 그런 대만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해상자위대가 일본인 보호를 위해 투입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만에서", "대만해협에서" 싸워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해상자위대가 대만에 체류 중인 일본인들을 구출하려면, 상륙이나 그에 준하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생긴다. 일본군이 대만 해역에 머무는 선에 그치지 않고 대만 본토에까지 들어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자민당 정권 2인자가 유사시 일본군의 대만 진출을 공개 석상에서 언급했다. 일본군이 대만에 가야 하는 것은 그곳에 일본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인이 있는 곳이므로 자위대가 파견될 수 있다고 했으니,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에서 항상 선을 유지할 필요성을 재차 일깨워준다. 일본이 적대국이냐 우방국이냐 동맹국이냐에 관계없이 동쪽 안보를 튼튼히 하고 독도를 지키자면 그 선을 당연히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모든 나라가 그 정도의 선은 다 지키고 있다.

구한말에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한국의 자주독립을 지지했다. 1875년에 강화도에서 군사 도발을 일으킨 뒤에 체결한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제1조에 "조선국은 자주국"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다. 일본은 1896년 이후의 독립협회 활동에도 우호적 태도를 취했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본에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그런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점을 미완의 원고인 <동양평화론>에서 밝혔다. 일본이 러시아의 침략을 막아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랬노라고 그는 회고했다.

1904년 러일전쟁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그는 "일본과 러시아가 개전할 때, 일본 천황이 선전포고하는 글에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대한 독립을 공고히 한다'라고 했다"라며 "이와 같은 대의가 청천백일의 빛보다 더 밝았"다고 기술했다. 그렇게 오해했던 그가 일본제국주의의 본질을 명확히 직시한 뒤에 총을 들고 하얼빈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안중근의 예에서도 나타나듯이 구한말의 한국 사회에는 일본이 러시아의 남진을 막아주고 한국의 안보를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분적으로 존재했다. 이는 당시의 한국인들이 동방한계선이나 남방한계선에 대한 경계심을 낮추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역사가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

윤석열 정권의 새로운 장관들은 일본에 대해 지나치게 호의적일 뿐 아니라 안보의 적을 북쪽에서만 찾는 불균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대문 중에서 대문 2개를 활짝 열어놓는 셈이다. 안보에 구멍 난 정권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