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06 11:18최종 업데이트 24.02.0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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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통일부 장관 - 4대 연구원장 신년 특별좌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승만 동상이 세워지고 이승만기념관 건립이 추진되더니 이제는 대북정책에서도 이승만의 냄새가 나고 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통일부장관 - 4대 연구원장 신년 특별좌담회'에서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 정책을 연상시키는 "자유의 북진정책"을 표명했다.

통일부와 통일연구원·국립외교원·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및 국방대 국가안전보장문제연구소 기관장들이 함께한 이 자리에서 김영호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의 핵심은 자유"라며 "네 가지 자유의 관점에서 대북정책과 대외정책을 수립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네 가지 자유는 '핵전쟁 공포로부터의 자유', '연대의 자유',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적 자유', '평화통일을 통한 자유의 실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4월 5일 제2차 국정과제 점검회의 때 대북 심리전을 통일부에 주문한 일을 감안하면, 이런 선전전을 통해 반공이념의 동의어나 다름없는 자유이념을 북한에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통일의 기반을 만든다는 생각이 김영호 장관의 발언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유' 명분 삼은 이승만의 북진통일 정책

'북진'을 말하면서 그 명분을 '자유'에서 찾는 모습은 4·19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 정권 시절에 흔했다. 1955년 3월 27일 자 <경향신문> 1면 중간에 따르면, 이승만은 80회 생일을 하루 앞두고 보도된 25일 자 미국 <INS통신> 인터뷰에서 "북진통일이 대한민국의 변함없는 지상명령이며 정의와 자유의 대의에 입각한 민족적 숙원은 마침내 승리를 거두고 말 것"이라는 말로써 북진통일과 자유를 연결시켰다.

이승만은 "한국 통일의 전망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가 보는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적 생활양식의 대의이다"라는 말로 통일의 비전을 제시한 뒤 이런 대의가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북진으로 얻게 될 통일의 비전을 자유와 연관 지어 설명했던 것이다.

이승만은 북진통일의 명분을 북한 주민들의 자유에서도 찾았다. 그들을 '속박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UPI통신 보도를 옮겨놓은 1959년 6월 9일자 <조선일보> 톱기사에 따르면, <호놀룰루 스타 불레틴>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에게 북한으로부터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라"고 미국과 국제연합(유엔) 회원국들에 촉구한 뒤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동포는 원칙적으로 반공산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오직 그들의 속박을 끊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도래하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 대한 이승만의 입김이 강해진 것은 집권당인 자유당이 전체 의석 203석의 과반수인 114석을 차지한 1954년 5월 20일 제3대 총선이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자기 자신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안을 그해 11월 29일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처럼 국회에 대한 영향력이 높았을 때인 그해 7월 15일에 국회가 의결하고 이승만 최측근인 이기붕 국회의장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발송한 메시지가 있다. 7월 26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과 관련된 이 메시지에서는 북진통일과 자유의 연관성이 인상적으로 표현됐다. 그달 22일 자 <경향신문> 1면 우하단에 해당 부분이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중략"이라 적힌 부분은 이 신문에 표기된 그대로다.

"대한민국 국회는 미합중국 대통령 아이젠하워 각하에게 경의를 표하며 각하가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각하를 귀국에 초청하여 주심에 대하여 한국민의 심심한 감사를 표하나이다. (중략) 각하도 강조하신 바와 같이 우리 삼천만 국민이 멸망하지 않고 살기 위하여서는 한국은 자유로워야 하며 하루바삐 통일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유로워야 하기에 북진 통일해야 한다는 이승만 정권의 정책은 실제로는 통일정책이기보다는 반공정책 혹은 냉전정책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것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통일의 가능성을 떨어트리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김일성 정권이나 북쪽 동포들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은 쪽은 남한 국민들이다. 자유 이념을 앞세운 통일정책은 반공과 공안 분위기를 확산시켜 남한 국민들을 옥죄고 장기독재를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심상치 않은 윤석열 정권의 '통일정책 건드리기'
 

건군 75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이 열린 지난해 9월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 관람무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시가행진하는 장병들에게 두손으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권은 군대가 아닌 자유를 북진시키는 통일정책을 선언했다. 무력 공격보다는 대북 선전전에 치중하는 정책이지만, 본질에서는 이승만의 북진통일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 평화적이거나 순리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북한을 압박해 붕괴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한반도 불안정을 고조시키는 정책이다.

요즘 김정은 정권은 통일도 필요 없다며 노골적으로 핵전쟁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런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선전전을 전개한다면 북한을 교란하기보다는 자극하는 우를 자초하기 쉽다. 김정은 정권이 아닌 윤석열 정권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더 불안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통일정책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한반도 안정을 위협할 소지가 농후하다. 김영호 통일부장관이 지난 2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와 <조선일보> 통화에서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수정을 시사한 것은 안 그래도 불안한 한반도 정세를 더욱 동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날 김영호 장관은 '자유'를 반영하는 쪽으로 통일 방안을 수정하겠다고 피력했다. 윤석열 정권이 말하는 '자유'의 동의어인 '반공'을 통일정책에 더 많이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4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발표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노태우 대통령이 5년 전 9월 11일 발표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승한 것이다. 이 방안은 남북한이 상대방의 실체를 상호 인정하고 화해협력을 해나가면서 남북연합이라는 과도 체제를 거쳐 통일국가로 나아간다는 비전을 담고 있다.

2체제·2정부의 남북연합을 형성한 뒤 통일국가로 간다는 발상은 현실성이 다소 떨어진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례를 찾을 길이 없다. 그렇지만 이 방안이 한국 사회에 끼친 현실적 기여도를 무시할 수 없다.

베를린장벽 붕괴(1989.11.9) 두 달 전에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발표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방안은 탈냉전 무드로 인해 세계질서가 동요하던 상황에서 나왔다. 김영삼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1993년 3월 12일 발생한 제1차 북핵위기(북·미 핵위기)가 수습 국면에 접어들 때 발표됐다. 한반도를 포함한 기존 세계질서가 동요하고 안정 국면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시점에서 두 통일 방안이 나왔던 것이다.

그런 정세 속에서 상호 연속성을 갖는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보수정권에서 나왔다. 이 방안들은 남북 간의 이질성을 인정하고 북한과의 대결을 지양하며 화해·협력을 도모하는 쪽으로 여론을 이끄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 보수 정권에서 나온 이 흐름은 보수세력이 종전의 반공 이념에 매몰돼 대결적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화해·협력에 관심을 갖도록 촉구하는 의미가 있었다.

이 방안은 통일운동권이나 진보세력보다는 중도층이나 보수세력의 인식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극우세력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을지라도 중도층·보수층이 화해·협력에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데는 효험이 있었다. 통일을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화해·협력론을 확산시켜 한반도를 어느 정도 안정시킨 점을 감안하면, 이 방안은 엄밀히 말해 통일정책이기보다는 평화 혹은 안정 정책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그런 방안을 윤석열 정권이 수정하려 하고 있다. 반공 색채가 물씬한 '자유'를 반영하는 쪽으로 바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화해·협력의 가치를 떨어트릴 수밖에 없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새로 내놓을 통일정책은 보수층에 더 많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자유'의 가치를 강조해 화해·협력을 약화시키는 새로운 정책이 나온다면, 북한에 대한 보수층의 태도는 한층 강경해지기 쉽다. 불안해질 대로 불안해진 한반도 정세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윤석열 정권이 준비한다는 통일정책은 통일을 부르기보다는 한반도 냉전을 강화하는 것이 될 공산이 크다. 동시에, 신냉전을 빌미로 한국인들의 자유와 인권을 제한하는 도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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