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5 15:54최종 업데이트 24.02.1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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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3년 6월 1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콜로라도스프링스의 미 공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졸업식 행사에서 연설 후 자리로 돌아가다 넘어져 사관학교 관계자의 부축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나이 많은 운전자들이 도로에서 제한 없이 주행해도 될까? 지난 2011년 1월 '매리스트'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6%의 미국인들은 65세 이상 운전자들이 운전면허를 발급받을 때 재시험을 거쳐야 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30세 이하 젊은 응답자의 84%는 고령의 운전자들이 재시험을 봐야 한다고 응답했다. 천천히 가고 아무 데서나 서는 등 위험하게 운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운전자들의 주행거리 대비 사고율은 70세를 전후로 급격하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미국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가 지난해 6월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85세 이상 운전자층에서 사고율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부터 캘리포니아주에서는 70세 넘는 운전자의 경우 온라인이나 우편으로 운전면허 갱신을 하지 못한다. 필기시험과 시력검사를 통과해야 하며 무조건 대면 방문을 통한 면허갱신만을 허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나이 문제가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1942년생 조 바이든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80대의 나이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고 재선을 노리고 있다. 나이 탓에 건강 문제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고령 리스크'다. 

실제로 지난해 6월 미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 후 넘어진 사건과 같은 달 수면 무호흡증 때문에 양압기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공개된 이후 백악관은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 공세를 받아야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미스터 문"이라 부르고 중국국가주석인 시진핑의 이름을 덩샤오핑과 혼동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8일 CNN은 바이든 대통령의 기밀문서 반출 의혹을 수사하던 로버트 허 특별검사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바이든의 기억력은 더 악화되어 자신의 아들이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백악관은 즉각 반박했지만 대통령의 잦은 말실수와 공식적인 자리에서 종종 넘어지는 것을 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이 고울 리는 없다.

여론조사는 바이든의 고령을 더 우려
 

2023년 2월 16일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 상태 주치의 진단서(왼쪽)와 같은 해 1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개한 건강진단서(오른쪽) ⓒ 백악관/도널드트럼프

 
지난해 2월 16일,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현재 건강 상태라는 제목으로 대통령 주치의 진단서를 발표했다. 3시간 동안 이루어진 총 10개 항목의 종합적인 검진을 바탕으로 주치의는 "바이든 대통령이 직무수행에 적합한 상태이며 대통령으로서 모든 책임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81세에 다시 한번 대선에 도전하는 노령의 대통령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유권자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에 맞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자신의 건강진단서를 공개하며 맞불 작전을 폈다. 트럼프는 아예 바이든의 81세 생일인 11월 20일을 자신의 건강진단발표일로 삼아 바이든의 건강문제설을 간접적으로 부각시켰다. 이 진단서에 따르면 트럼프의 주치의는 트럼프의 체중이 감소하는 등 건강이 "전반적으로 우수하고 신체검사는 정상범위에 있으며 인지력 테스트는 특출났다"고 썼다.

그렇지만 로이터와 입소스가 같은 해 2월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75%의 미국인들은 바이든이 정부에서 일하기에는 너무 노쇠했다고 보고 있다. 많은 민주당 응답자들도 바이든이 정신적으로는 예리하더라도 신체적으로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가 재선에 성공해 퇴임할 때면 이미 미국 남성의 평균수명보다 13세나 더 많은 86세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도 같은 해 5월, 바이든의 총명함과 신체 건강이 의심을 사고 있다는 여론조사(POST-ABC)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으로서 정신적으로 예리함을 가졌다고 보는가'란 항목에서 54%를 얻은 트럼프는 32%를 얻는 데 그친 바이든을 크게 앞섰다. 신체 건강에서도 바이든은 트럼프의 절반 정도의 수치를 얻는 데 그쳤다. 두 명 모두 재선에 도전하기에는 고령이지만 바이든이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응답은 26%, 트럼프는 1%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말실수'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역시 사람의 이름을 혼동하거나 타국 총리의 국적을 바꿔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트럼프 정부에서 한때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윌리엄 바는 지난해 10월 시카고 대학의 한 행사에서 트럼프의 "화술에 제약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 바이든 정부를 이전 오바마 정부로 바꿔 부르는 일도 많았고, 2016년 선거에서 오바마에게 이겼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당시 트럼프의 대선 상대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미국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9/11테러의 날짜를 7/11로 혼동한 것이다. CNN은 2016년 트럼프가 대선출마 연설에서 자신의 출마에 큰 영향을 준 9/11테러를 회고하면서 날짜를 7/11로 혼동했다고 보도하고 "이 사업가는 실수를 정정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치의가 발표한 건강진단결과서에서 "체중감소 수치가 없고 혈압이나 콜레스테롤 수치 등 기본적인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고 의미를 축소하며 트럼프 역시 건강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지적했다.

조심조심 '완충제' 전략? 바이든 캠프의 고심
 

지난해 9월 <이코노미스트>와 유고브의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은 대통령이나 상원의원, 하원의원에 연령제한을 두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각각 76%(대통령), 73%(상원의원), 72%(하원의원)의 높은 지지를 보였다. ⓒ 유고브

 
지난해 9월 미국인 1500명을 대상으로 <이코노미스트>와 유고브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선을 묻기 전, "75세가 넘은 정치인들이 의무적으로 정신감정을 받아야 하며 그 결과를 대중에 공개해야 한다고 보느냐?"란 항목을 넣은 것이다. 이에 '강한 지지를 표한다(52%)'와 '다소 지지한다(24%)'라는 결과가 나와 무려 76%의 응답자들이 노령 정치인들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나 상원의원, 하원의원과 같은 고위공직자에 연령제한을 두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각각 76%(대통령), 73%(상원의원), 72%(하원의원)의 높은 지지 의사를 확인한 것이다. 만약 이런 여론이 법률에 반영된다면 81세의 바이든과 77세의 트럼프 모두 연령제한에 걸리게 된다. 바이든이냐 트럼프냐를 떠나 두 항목 모두 대다수의 미국인이 고령의 정치인을 호의적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해 생일에 바이든은 이전 대통령들과는 다르게 생일 축하행사를 따로 열지 않고 가족들과 조용히 보냈다. 이날 브리핑에서 백악관 공보국장 벤 라볼트는 대통령의 나이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피하며 '연륜'과 '지혜'를 부각하려 애를 썼다. 그는 "1400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회복 법안 통과"라는 바이든의 업적을 강조했다. 

바이든의 재선캠프에서도 건강 문제가 나오지 않도록 예방에 힘쓰고 있다. 정치매체인 <폴리티코>는 이전처럼 대통령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백악관이 대통령 전용기의 탑승 계단을 외부 계단이 아니라 동체의 낮은 계단을 이용하도록 바꿨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은 대통령이 계단에서 넘어진 것은 강풍 때문이며, 말실수도 기억력 저하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시력이 감퇴되어 그저 안경을 쓰지 않아 연설문 프롬프트를 놓쳤을 뿐이라고 옹호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6월 4일 바이든의 공개 일정 대부분이 정오에서 오후 4시까지로 제한되어 있고 대통령을 주중에 최대한 혼자 있도록 스케줄을 잡고 있다고 보도했고, 11월 19일 자 보도에서는 이러한 바이든의 일정을 두고 상당한 의견차가 있다고 밝혔다. 

몇몇 전현직 정부 관료들이 바이든에게 조금 더 휴식 시간을 갖게 하고 많은 해외순방을 자제시켜야 한다며 꽁꽁 싸맨 '완충제' 전략을 펴고 있는 반면, 다른 이들은 더 이상 공화당에서 나이 문제를 걸고 넘어지지 않도록 대통령을 신뢰할 수 없는 늙은이로 취급하지 말고 대중이나 언론과 더 소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둔 바이든 캠프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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