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2 16:54최종 업데이트 24.02.2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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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당시 개혁신당 이낙연(왼쪽)·이준석 공동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나란히 참석해 있다. ⓒ 남소연

 
'반윤석열'을 표방한 이준석과 '반이재명'을 표방한 이낙연의 통합은 11일 만인 이달 20일 파탄났다. 근본 원인은 유권자들의 지지세가 확장되지 않은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개혁신당이 순풍을 타고 있었다면, 내부 갈등이 표출되기보다는 잠복됐을 것이다.

통합 선언 일주일 전인 이달 2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①에 따르면, 이준석 개혁신당과 이낙연 신당에 대한 지지율은 각각 3%였다. 통합선언 일주일 뒤인 16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② 결과는 개혁신당 지지율이 4%라고 가리킨다.


19일 발표된 여론조사 꽃의 여론조사③ 결과에 따르면, 개혁신당 지지율(5.5%)은 조국 신당 지지율(10%)보다 낮았다. 이준석·이낙연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미미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제3지대 세력이 아직은 등장하지 않은 것이다.

이준석·이낙연이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데는 이들의 선거전략도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제3지대 세력 혹은 제3정당이 성공을 거둔 역대 사례들을 살펴보면, 이준석·이낙연의 운동 방식이 과거의 성공 사례로부터 빗나가 있다는 판단에 도달하게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역대 총선에서 3위 정당은 항상 있었다. 그중 거대 양당 혹은 주도적 양당이 존재하는 가운데 두 당을 견제할 만한 의석을 가진 정당(들)이, 지금 회자되는 제3정당 혹은 제3지대라고 할 수 있다.

제3당 성공의 전제... 집권당의 실정
 

2016년 4월 14일, 20대 총선이 끝난 다음날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당 마포구 당사에서 선거상황판에 당선된 후보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5월 30일 제2대 총선의 공동 1위는 총 210석 중에서 각각 24석을 차지한 민주국민당과 대한국민당이고, 3위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14석), 4위는 대한청년단(10석)이었다. 요즘 말하는 제3지대는 거대 양당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1위와 2위의 의석 비율이 각각 11.4%였던 제2대 총선에서 3위와 4위를 기록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대한청년단은 지금 언급되는 제3지대라고 보기 힘들다.

유신체제 전년도에 치러진 1971년 제8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113석)과 신민당(89석)에 뒤이은 공동 3위는 각각 1석인 국민당과 민중당이다. 양대 정당에 대해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든 이런 사례 역시 요즘 회자되는 제3정당과 거리가 멀다.

외형상으로는 제3지대가 세력을 확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있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국회의원이 따로 있고,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하는 국회의원이 따로 있었던 유신체제하의 1973년 제9대 총선이 그랬다. 이때 민주공화당과 유정회는 각각 73석, 신민당은 52석, 민주통일당은 2석, 무소속은 19석을 획득했다.

신민당이 제3지대를 형성한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박 정권의 공천을 받아 지역구에서 출마한 여당 의원들은 공화당에, 박정희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의원들은 유정회에 속했다. 그래서 공화당과 유정회는 사실은 한 몸이었고, 신민당은 실질적인 제2당이었다. 이 선거와 관련해서는 제3지대를 운운할 여지가 없었다.

전두환 제5공화국 하의 1981년 제11대 총선은 민주정의당(민정당) 151석, 민주한국당(민한당) 81석, 한국국민당(국민당) 25석 등의 결과를 낳았다. 민한당과 국민당은 민정당 2중대였다. 그래서 이때와 관련해서도 제3지대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이것저것 다 떼어놓으면, 남는 것은 1963년·1988년·1992년·1996년·2016년의 다섯 사례다. 1963년 제6대 때는 총 175석 중에서 민주공화당이 110석, 민정당이 40석을 획득한 가운데, 민주당과 자유민주당이 각각 14석·9석을 차지했다. 1988년 제13대 때는 299석 중에서 민주정의당이 125석, 평화민주당(평민당)이 70석을 갖고,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이 각각 59석 및 35석을 차지했다.

1992년 제14대 때는 민주자유당(민자당, 149석)과 민주당(97석)에 이어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이 31석을 차지했고, 1996년 제15대 때는 신한국당(139석)과 새정치국민회의(79석)에 이어 자유민주연합과 민주당이 각각 50석·15석을 확보했다. 2016년 제20대 때는 더불어민주당(123석)과 새누리당(122석)에 이어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38석을 획득했다.

1963년 11·16 총선은 '4대 의혹 사건'이라는 일련의 부정부패로 인해 군사정권 2인자인 김종필이 자의 반 타의 반 외유를 떠나는 등의 정치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거기다가 총선 1개월 전의 10·15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박정희의 남로당 및 친일 이력이 부각돼 정권의 위기가 가중된 뒤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3정당들이 표를 많이 얻었다.

집권세력이 위기를 겪고 제3정당이 부각되는 양상은 6월항쟁 직후인 1988년과 촛불혁명 직전인 2016년은 물론이고, 집권당의 분열이 두드러진 1992년(노태우 정권)과 1996년(김영삼 정권)에도 있었다. 이는 제3지대의 성공이 집권 세력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와 무관치 않음을 시사한다. 여당이 정치를 못 한다는 인식의 확산이 제3정당에 이롭게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윤석열-이재명 동시 비판, 왜 실책이냐면...
 

이낙연 개혁신당 공동대표와 김종민 최고위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새로운미래 당사에서 개혁신당과의 결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집권당이 못하면 제1야당이 반사이익을 얻게 되지만, 제1야당만 수혜를 입는 것은 아니다. 여당이 못하는 것은 제1야당이 견제를 못 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여당에 대한 비판이 양대 정당에 대한 양비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제3당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2019년에 <한국정당학회보> 제18권 제2호에 실린 김소정·윤종빈의 공동논문 '한국 유권자의 제3정당 지지'는 1992년·1996년·2016년 총선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집권당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 상당수가 제3정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 논문은 2016년 사례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업무 수행에 대해 부정적일수록"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양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업무 수행에 대해 부정적인 유권자들은 박근혜 정부를 견제하는 야당의 역할에도 불만을 가질 수 있으며, 그 결과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일련의 흐름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논문은 말한다.

물론 집권 세력의 위기가 고조되고 제1야당에 대한 양비론이 존재한다고 해서 제3정당이 무조건 잘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1963년 당시의 제3지대에는 박순천이 있었고, 1988년의 제3지대에는 김영삼·김종필이 있었다. 1992년 그곳에는 정주영이 있었다. 1996년에는 김종필, 2016년에는 안철수가 있었다. 집권당에 대한 불만이 넘치고 넘쳐 유권자들이 제3지대를 돌아봤을 때 그곳에 유권자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인물이 있어야 제3지대가 성공하리라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언뜻 생각하면 집권당과 제1야당을 함께 비판해야 제3당에 유리할 것 같지만, 제3당이 유력하게 부각된 다섯 사례는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이 가중되는 속에서 생겨났다. 이런 패턴을 감안하면, 이준석은 윤석열 비판을 담당하고 이낙연은 이재명 비판을 담당하는 이준석-이낙연 연대가 이전의 성공 사례와 크게 대비된다는 판단에 도달하게 된다. 분업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업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비판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화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제3정당 성공 사례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는 길이 될 수 있다. 정부수립 이후의 선례들을 감안하면, 윤석열 정권과 여당의 부조리를 제대로 고발하는 데에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 제3세력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①1월 30일~2월 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총 통화 7871명, 응답률 12.7%)에게 무선 100%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3.1%p).
②2월13일~ 2월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총 통화 7298명, 응답률 13.7%)에게 무선 100%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3.1%p).
③2월 16일~ 2월 1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7명(총 통화 7475명, 응답률 13.5%)에게 통신 3사 제공 무선가상번호 활용 CATI 전화면접조사 방식(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3.1%p).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개요와 결과는 한국갤럽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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