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6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입니다, 대학병원은 붕괴 중입니다

[주장] 대규모 의대 증원 발표가 불러온 의료 현장의 위기... 더 커질 후폭풍을 막기 위해선

24.03.14 14:11최종 업데이트 24.03.1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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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고경남씨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소아암을 진료하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정부가 서울대 의대 교수회의 집단사직 결정에 우려를 표명하며 교수들의 진료유지 명령 검토 뜻을 밝힌 12일 서울 시내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의 대규모 의대 증원 발표로 인한 의료계의 혼란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의대 증원의 근거에 대한 논의는 여러 지면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반복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대신,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예측하고 올바른 해결책이 무엇인지 같이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2024년, 상급종합병원의 위기

정부는 사직서를 제출한 7천 명 이상의 전공의들에게 이번 주부터 면허정지 처분을 통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공의들이 3개월 면허정지를 받으면 최소 3개월간은 병원으로 돌아올 길이 막히게 된다. 그러나, 단순히 3개월이 아니다. 전공의들 입장에서는 면허 정지가 해제된 이후에도 당장 병원으로 돌아올 이유가 없어진다. 전공의 수련은 1년 단위로 이루어지므로 3개월 면허정지로 인해 올해 수련 기간을 채울 수 없다. 따라서, 전공의 부재로 인한 상급종합병원의 혼란은 1년 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공의가 1년 동안 없으면, 의사 인력의 40%를 전공의에게 의존하는 상급종합병원의 진료 기능은 심각하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미 대부분 상급병원에서는 수술 건수가 절반 이하로 줄고, 병상 가동률도 크게 감소해서, 병동과 수술장을 축소하고 있다. 간혹, 언론에서 의사들이 중환자실, 응급실을 비웠다는 비난이 있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전공의들이 빠진 자리는 교수와 전문의가 메우면서 중환자실과 응급실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의료진의 역량에 한계가 올 것이 분명하다. 상급병원의 위기가 1년 이상 지속된다면, 암이나 중증 환자 진료 기능이 심각한 타격을 받으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상급병원이 직면할 다른 문제는 심각한 경영 위기다. 상급병원은 인건비가 전체 지출의 5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경영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기 어렵다. 현재 상급병원들은 매일 수십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전공의 공백이 발생한 지 3주 만에 부산대병원이 600억 원, 서울대병원이 1000억 원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많은 상급병원들이 2~3개월 버티기도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1년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우며, 그 사이에 상급병원들이 줄도산할 위험도 있다고 본다. 

국립대 병원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결국 그 돈은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재정 상태가 취약한 지방 사립대 병원부터 국립대 병원, 서울의 대형 병원까지 경영 위기가 번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병원 근로자뿐만 아니라, 관련 업종, 지역 경제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상급병원들이 비상 경영으로 겨우 생존한다 해도, 진료 외의 연구 활동, 미래를 위한 투자 등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결국, 많은 병원이 도산하거나, 향후 수년간의 발전 동력을 모두 소모하게 돼서 우리나라 의료계는 상당한 후퇴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1년 후에는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까? 올해 사직한 일부 전공의들은 군에 입대할 것이고, 일부는 전공의 수련을 완전히 포기하고 일반의의 길을 갈 것이다. 일부는 복귀를 고민하겠지만, 비상 상황이 계속되는 병원에서 적절한 수련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수련을 더 미룰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번 의대 증원 사태로 필수의료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전망하는 전공의들이 많기 때문에, 내과, 외과, 소아청소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등의 지원율이 회복되기는 더욱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결국 내년에도 전공의 충원율은 상당히 낮을 것으로 예상되며, 상급종합병원의 인력 공백과 진료 역량의 약화는 2~3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 상급병원들이 2024년 2월 이전 수준으로 회복이 되려면 몇 년이 걸릴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다. 

2025년, 의과대학의 대혼란
 

서울대 의과대 졸업식 정부의 의대증원 방침으로 인해 의사들과 정부 간의 강대강 대치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지난 2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졸업생 가족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정민


많은 의대생이 휴학 또는 수업 거부에 참여함에 따라, 내년에는 신규 졸업생이 기존처럼 배출되지 않을 것이고, 당장 수련 병원에서 인턴 모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수천 명에 이르는 의사 배출이 1년간 중단되므로, 이는 상급종합병원의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올해 신입생들이 단체 유급을 당하거나 집단 휴학을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정부의 의지대로 내년에 의대 정원을 5000여 명으로 증가시킨다면, 2025년에는 기존보다 훨씬 많은 인원(유급 등을 당한 기존 학생+신입생)이 수업을 듣게 된다. 2025년만 문제가 아니다. 이 학년은 이후로도 쭉 증가한 인원으로 올라가게 되고, 교육, 실습의 모든 단계와 졸업 후 수련과 취업까지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따라서, 내년에 정상적으로 의대 신입생을 선발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실제로, 과거 한의대생 집단 유급 시에 신입생을 70%만 뽑은 선례가 있다. 그러나, 교육부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신입생을 예정대로 모두 선발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으므로, 초유의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갑작스러운 대규모의 증원이 의대 교육의 질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일단 학생을 받아 놓으면 어떻게든 가르칠 수 있다는 정부와 대학 본부의 주장 앞에서는 어떤 반론도 무력해진다. 한 번만 더 고민해 보자.

경북대학교는 110명 정원에 140명을 증원하여 250명의 정원을 신청했다. 경북대 홍원화 총장은 이렇게 말한다. "130명이 들어갈 강의실이 없다. 300~400명을 신청하고 싶은데 공간이 안 나온다. 그래서, 250명을 신청해서 두 개 반으로 나눠서 교육할 예정이다. 강의실뿐만 아니라 교육을 담당할 교직원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교수도 강의실도 부족한 상황에서, 학생들을 두 개 반으로 쪼개서 의대 수업을 하겠다는 발상을 참신하다고 해야 할까, 무리수라고 해야 할까. 

교수 부족 문제가 계속 제기되자 복지부는 2027년까지 국립대 병원 교수를 1000명 더 늘리겠다고 한다. 의대 정원이나 교수 충원이나, 정부의 스케일이 일단 천 명 단위인 게 참 놀랍기는 한데, 일단 이게 가능한 숫자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거점 국립대 병원 교수 숫자는 1200~1300명 정도라고 하니, 교수를 단숨에 두 배 가까이 늘리는 셈이다. 갑자기 1000명의 교수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학위와 충분한 연구 업적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교수 요원을 대규모로 양성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정도 규모의 교수 증원에는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고, 이러한 재정 부담은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다. 교수 1명을 채용하면 정년까지 30년 가까이 장기간 고용해야 하므로, 대학에서는 교수 정원을 1명 늘리는 데도 신중을 기한다. 국립대 병원의 교수 확충은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지만, 교수 요원의 양성이나 재정 부담을 면밀히 고려하여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한 과제이다. 

2031년, 의대 졸업생은 어디로 갈 것인가

5000여 명의 의대생이 졸업하는 2031년에는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의대 졸업은 의사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며, 필수의료나 지역의료 분야에서 역할을 하려면 수련이 필수적이다. 2000명 증원 소식에 당장 떠오른 생각이 '이 많은 졸업생들을 도대체 어떻게 수련시키려는 걸까' 하는 것이었다. 당장의 증원 논란 때문에 이들의 졸업 이후 수련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5000명 이상의 새내기 의사가 배출되는 6년 뒤에는 또다시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학생들이야 등록금을 내면서 대학에 다니므로 대학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많은 학생을 받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수련 병원은 인건비를 지불하고 전공의를 고용해야 하므로, 필요 이상의 전공의를 받을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보자. 충북대학교는 기존 49명의 정원에서 5배 늘어난 250명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대 졸업생들이 주로 수련받게 되는 충북대병원의 전공의 정원은 40명 남짓이다. 충북대 졸업생들을 충북대병원에서 흡수하려면 전공의 정원도 5배 늘려야 하는데, 충북대병원의 규모를 생각할 때 이는 비현실적인 일이다. 결과적으로, 200명의 졸업생이 충북에서 수련받지 못할 것이고, 다른 지역 대학병원 역시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2000명의 증원 규모는 현재 의대 정원의 66%이지만, 정부에서는 이 정원을 대부분 지방에 배정한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지방 의대는 정원이 두 배 이상으로 증가될 것이다. 모교 병원에서 수련받지 못하는 졸업생들은 의사 낭인이 되서 수도권으로 밀려올 가능성이 있다. 이쯤되면, 의대 증원이 지방대학을 위한 것인지, 지역의료를 위한 것인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의사들은 경쟁하면 안 되냐는 얘기를 많이 한다. 아무리 경쟁사회라고 해도, 6년의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 졸업생들이 적절한 수련 기회를 얻지 못해서 전문직의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사회 전체의 손해일 수밖에 없다. 출생율이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전문 인력을 적절하게 양성하고 배치하는 것은 사회를 위한 필수적인 정책이 되어야 한다.

정부의 비상 대책, 실효성 낮다
 

박민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2차관)이 1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의 의료 공백 사태에 대해 정부는 계속해서 비상 대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비상 진료 체계 가동을 위해서 예비비 1200여억 원을 지원하고,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매달 1800여억 원을 추가로 건보재정에서 투입한다고 한다. 1년에 약 2조가 넘는 돈이다. 이런 재정을 미리 필수의료에 투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이 돈은 현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소모적으로 사용되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대학병원의 의사 공백을 메꾸기 위해 군의관, 공보의가 총 130명이 투입됐다. 당연히 이들이 1만여 명의 전공의가 빠진 자리를 메꿀 수는 없다. 게다가, 도서벽지나 군부대는 한 명의 의사가 훨씬 더 소중한 곳인데, 이런 곳의 의사를 차출해서 상급 병원으로 보내는 것은 역설적인 상황이다. 개인적으로는 상급병원은 어떻게든 교수와 전문의들이 지킬 테니, 그냥 원래 복무하던 곳에서 일을 했으면 하는 심정이다. 

대통령실에서는 수련의가 떠났다고 문제가 생기는 의료시스템이라면 개선해야 한다고 한다. 필자도 이에 100%로 동의한다. 그러나, 현재의 의료 공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급 병원을 단숨에 전문의 중심으로 바꿀 수는 없다. 왜냐하면, 충분한 전문의를 단기간에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전공의의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고, 이를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재정 투자가 필요하며, 결국 국민들이 더 큰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료 시스템의 이러한 변화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과제이다.

진료보조 간호사 (PA) 업무 범위 확대는 상급병원을 지키고 있는 전문의들의 탈진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이 될 수는 있으나, 진료 수준을 정상화시킬 수는 없다. 의료 행위의 양이 폭증하는 상황에서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정의하고 확장하려는 노력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다양한 의료 직종과의 협의를 통해 조화롭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 갑작스럽게 제시된 업무 목록에는 법적으로 논란이 되는 항목과 숙련된 전문의가 시행해야 하는 고위험 술기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와 관련된 법적 위험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의사, 간호사, 환자 모두 새로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이번에 비상 대책으로 제시된 전문의 진찰료 수가 보조, 상급병원의 전문의 중심 진료 체계 확립, 경증 환자 응급실 이용 제한, 의료 전달체계 정비, PA 간호사 시범 사업 등은 모두 의료 개혁을 위한 중요 과제들이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과제들이 현재 갑작스러운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땜질식 정책으로 소모되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추진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필수의료의 미래가 시들어 가고 있다

올해 전국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5명 모집에 53명이 지원해서 겨우 25.9%를 기록했다. 필자의 병원에 합격한 소아과 전공의들을 위한 환영식이 2월 초에 열렸다. 소아과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면서도 정부의 대책을 믿어보겠다는 인턴, 수련을 마치고 1년 정도 쉬려다가 우리들의 설득에 마음을 바꾼 인턴, 내과를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사랑스러워서 소아과로 진로를 바꿨다는 인턴, 미용 일반의로 지내다가 회의를 느끼고 필수의료 전문의가 되고 싶다던 인턴까지 무려 12명의 인턴이 필자의 병원에 지원했다.

그날 우리는 전공의들에게 지금이 최악의 시기이니 앞으로는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얘기하며, 우리 병원이 이 나라 소아청소년과의 기둥이 되자고 격려했다. 그렇게 신입 전공의들이 들어오는 3월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달 만에 대부분의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고 모든 게 악몽으로 변했다. 모두가 문제라고 말하던 미용, 비급여 개원가는 여전히 성황 중인데, 정작 필수의료의 명맥을 이으려고 들어왔던 전공의들은 떠나버렸다. 

나는 소아 뇌종양 환자를 전문으로 진료한다. 의대 졸업 후 소아청소년과 수련을 마치고 소아 신경학과 소아 혈액종양학 세부 전공 수련까지 총 14년을 공부한 후에야 소아 뇌종양 환자를 진료할 수 있었다. 교수가 된 후에도 10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 있게 환자를 진료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보니 이런 지식과 경험을 가르쳐줄 후배 의사가 없다. 이게 바로 2024년 3월, 대한민국의 대학병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파국을 막기 위한 대화가 간절하다
 

의대증원 맞서 의협-전공의 집단행동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맞서 의협과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지난 2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한 보호자가 환자를 기다리고 있다. ⓒ 이정민


지난 3주 동안,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잃었다. 정부는 불필요한 재정을 계속 소모하고 있고, 전공의들은 수련의 기회를 잃었으며, 무엇보다 필수의료를 전공하려는 의지를 상실하고 있다. 교수들은 자발성을 잃고 무기력해지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 국민들 사이의 신뢰도 모두 무너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은 국민들이다. 모두가 매일매일 패배하는 싸움이다. 

최근 영국에서 소아 천식 환자가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 4개월을 기다리다 사망한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어느 지역에 있더라도 1주일 정도면 소아 호흡기 전문 교수의 진료를 예약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가 실현되지 않으면 대한민국 의료가 곧 붕괴할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비록, K 의료가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최소한 지난 2월까지는 낮은 비용으로 수준 높은 의료를 빠르게 제공해 주는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대규모의 증원 발표 후, 대한민국 의료가 갑자기 눈앞에서 붕괴되고 있다. 

무너지는 의료 시스템 앞에서, 정부와 의료계의 논쟁은 계속해서 원점으로 돌아간다. 협의와 공론화를 통해 해결할 문제가 서로 숫자를 뺏기 위한 싸움으로 변질된 형국이다. 의대 증원의 규모와 속도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이 이루어져야 할 자리를 인터넷 댓글 싸움과 유튜브 논객들의 설전, 싸움을 부추기는 듯한 일부 언론의 보도가 차지하고 있다. 일단, 모두가 거친 말싸움과 날 선 감정들을 내려 놓고, 지금 직면하고 있는 의료현장의 붕괴를 직시했으면 한다. 어느 쪽의 주장이 관철되든지 간에, 이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환자들이다. 

여론의 매서운 눈초리를 의식하면서도 이 글을 쓰는 목적은 특정 입장을 옹호하거나 논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다가온 의료 현장의 심각한 위기를 알리기 위한 것이다. 파국을 막을 시간이 많지 않다. 각자의 조건을 고집하는 상태에서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하지 말고, 아무런 소득이 없더라도 모든 조건을 제거한 백지상태에서 일단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로 여전히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면, 환자들의 불안한 눈빛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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