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2 15:56최종 업데이트 24.03.2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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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는 '기후국회'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보낸 유권자의 DM. ⓒ 박종현

 
선거를 앞두고 사과가 화두다. 사과 한 알 값이 1만 원이네, 금사과네 한다. 야당은 이것이 집권여당의 실정을 보여주는 증표라는 듯 목소리를 높인다. 서민이 사과 하나 마음 편히 못 사먹을 만큼 민생이 도탄에 빠졌으니, 이를 심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코웃음이 나온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던데, 바꿔야 한다. "바보야, 문제는 기후야".

2024년 총선은 '기후국회'가 의제

대구경북에서 독립언론 기자로서 네 번째 국회의원 총선거를 맞는다. 매번 선거를 맞을 때마다 뭘 취재하고 보도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지역 특성상 큰 이변이 없는 한, 결과는 후보자가 결정되는 순간 결론 나기 때문이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르고, 시민의 축제이며, 국가 미래를 고민하는 시간이라고 하는데, 우리 지역에선 고민을 하거나 축제를 즐길 겨를도 없이 꽃이 피는 셈이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조금이나 '개화 시기'를 늦추려 고민을 했다. 2016년까진 유력 후보자를 조금이나 더 검증하려 했고, 탄핵 후 치러쳤던 2020년 총선 때에는 거리에서 촛불시민을 만나 시대정신을 물었다. 그리고 2024년, 이젠 진짜 꽃의 '개화시기'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이르러, <뉴스민>은 노골적으로 선언하기로 했다. 22대 국회는 기후국회가 돼야 한다고.

지난 3월, 그 일환으로 경북 청송을 찾아가 농민들을 만났다. 마침 청송 지역 농협 행사가 있어 아침부터 많은 농민이 읍내로 나왔다. 작정을 한 것도 아닌데, 사과 농사를 짓는 농민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청송이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사과 주산지인 탓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지난해 30~40%가량 사과 생산이 줄었다고 했다. 여느 농작물이 그렇듯 사과도 봄이 중요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 안정적으로 꽃을 피워야 그해 사과 수확도 꽃을 피운다. 그런데 봄이 이르게 왔다. 꽃도 이르게 폈다. 다시 찾아온 한파에 꽃이 얼어 죽었다. 그나마 살아 남은 꽃이 열매는 맺었지만 이마저도 온전히 빛을 보지 못했다. 여름엔 비가 많이 내렸다. 탄저병, 과수화수병 같은 병해도 겪었다.
 

버려진 사과. ⓒ 이상원/뉴스민

 
50년을 청송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최일식(74)씨는 "10년 전부터 기후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해마다 수확량이 줄어드는 추세"라면서 "예전엔 삼한사온이 뚜렷했지만 요즘은 봄이 일찍 오니까 작물이 적응을 못하는 것 같다. 작년엔 봄이 일찍 왔다. 그대로 온도가 높아져주면 좋을 텐데, 기온이 올라가다가 영하로 뚝 떨어져서 냉해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백보흠(70)씨도 마찬가지다. 백씨는 "사과는 냉해를 입어서 손해가 많았고, 그뒤에 우박도 맞았다. 계속 비도 오고 그러니까, 방제도 못하니까 병해도 많이 왔다. 상품도 제대로 안 나왔다"며 "농사 짓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농사는 사람이 반 짓고, 하늘이 반 지어준다고, 대책이 없다. 하늘이 그러는데"고 허탈해했다. 비슷비슷한 증언이 뒤를 이었다. 

'종말로 가는 대한민국' 방치한 국회? 
 

동대구역 기후시계. ⓒ 이상원/뉴스민

 
평범한 농민은 이렇게 하늘을 쳐다보며 허탈해하는 사이 정치권은 네 탓 내 탓을 한다. 이들이 정말 사과 한 알이 1만 원까지 치솟는 게 왜 문제인지 알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더구나 여야를 떠나 21대 국회는 기후위기 대응에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계는 있지만, 1992년 한국이 유엔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하고 30년 만에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하긴 했다. 

하지만,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 상승하는데 5년 가량의 시간이 남았다고 하는 현 시점에서 냉정하게 다시 평가하면 21대 국회의 노력이란 것은 한가롭게만 보인다. 탄소중립기본법만 뜯어봐도, 여전히 '성장'을 버리지 못한 탄소중립에 그쳤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량도 획기적으로 담아내지 못했다.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도 통과는 시켰지만, 2030년 목표를 명시하는 문제로 설왕설래하다 결국 이를 명시하지 않기로 했다. 결의안에 따라 구성된 기후위기특별위원회도 큰 성과 없이 종료한다. 

이쯤되면, 사과 한 알 값이 만 원이 된 데에 21대 국회 책임이 없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두 거대 양당이 21대 국회의원 중 40% 안팎만 물갈이를 했다고 하니, 못해도 50%가량이 다시 22대 국회의원으로서 일하게 될지 모른다. 1.5℃까지 5년 남짓 남은 시간의 대부분을 22대 국회가 허투루 써버린다면, 먼 미래에 22대 국회는 아마 '종말로 가는 대한민국을 방치한 국회'로 기록될지 모른다.

한숨과 비극, 당신 일이 될 수 있다
 

2023년 경북 예천 산사태 현장. ⓒ 이상원/뉴스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지난해 내놓은 6차 종합보고서에 근거해보면, 1.5℃가 상승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에서 폭우와 홍수가 심화되고, 그로 인해 일부 산간 지역은 산사태가 더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식량 안보에도 타격이 올 전망이다. 아시아·아프리카뿐 아니라 중남미 등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식량 불안정에 노출될 수 있다.

보고서에서 글로 설명되는 변화는 막연하긴 하지만 위기는 이미 현실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전년보다 30~40% 사과 수확량이 감소해도 하늘 밖에 쳐다볼 길이 없는 경북 청송의 농민의 사연도 그 하나고, 지난해 경북 예천에서 장기간 이어진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많은 이가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그 현장에서 수색 활동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생때같은 목숨을 잃은 젊은 해병은 여전히 그 죽음의 배경을 명확히 밝히는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 2022년에는 태풍 힌남노가 강타하고 지나간 경북 포항에서 작은 천이 범람해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덮쳤다. 모자가 함께 주차장으로 갔다가 홀로 살아남은 어머니의 절규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시계를 돌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2020년대에 태어난 인류는 최대 4.4℃까지 높아진 미래에 직면하게 된다. 이대로 두면, 청송 농민의 한숨이 바로 내 한숨이 되고, 경북 예천과 포항의 비극이 바로 우리집 뒷산이나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의미다.

5년 남은 시간을 늘리거나, 시간이 가는 걸 늦추기 위해선 에너지·산업·교통·도시 등 모든 부분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전 부분에서의 탄소배출 감축은 개인 노력만으로 한계가 있다. 22대 국회가 기후국회가 돼야 하는 명확한 이유는 여기에 있고, <뉴스민>이 노골적으로 기후국회여야 함을 선언한 이유다.
 

<뉴스민> 총선 기획보도 메인 이미지 . ⓒ 이상원/뉴스민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상원씨는 대구경북 독립언론 <뉴스민>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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