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4

저는 '사직'하지 않은 전공의입니다, 왜냐하면

[주장] 윤 정부의 의료 개혁에도, 전공의 집단 사직에도 동의 못 해... 더 나은 의료 고민해야

24.03.23 10:47최종 업데이트 24.03.2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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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 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하고 있는 익명의 시민기자가 의료 개혁과 전공의 집단 사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사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병원에 게시된 '전공의 대상 업무개시명령서'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3주 차인 12일 오후 대구 한 상급종합병원 복도에 보건복지부의 전공의 대상 업무개시명령서가 게시돼 있다. 2024.3.12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수많은 논의와 논쟁이 오갔다. 각 의과대학들에서도 증원 수요조사가 실시되었다. 의협, 대전협, 의대협은 강하게 반발하며 전공의들은 집단 사직, 의대생은 동맹 휴학을 했다. 이들의 요구는 증원 전면 백지화였다.

현재 1만 명이 넘는 전공의가 사직하고, 의대생의 유효휴학도 18일 기준 누적 7850건으로 집계되었다. 의대 교수들은 1년 유예 후 결정 등의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숫자에 타협하지 않았다. 의대 교수들은 25일 집단 사직안을 결의했다. 3월 20일 윤석열 정부는 각 의대 정원 증원 수를 발표했다. 82%를 지방 의과대학에 배치했지만, 학습과 실습이 수도권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무늬만' 지역의대의 추가 증원 수가 750명이 넘는다.

윤석열 정부 '의료개혁'은 빈 깡통

나는 현재 병원에 남아 일하는 전공의이다. 전공의 집단사직에 동의하지 않아서 참여하지 않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찬성해서 남은 것도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 및 보건복지부의 제 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는 필수적인 내용이 부족하고, 이를 보아 2000명 증원을 내세워 지지율 증가를 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2000명 정원 증원을 통해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2000명이라는 눈에 띄는 숫자가 아니라 그 의사들이 지역에 분배되는 방식이다. 지역 배치에 대한 고려 없는 증원은 자칫 수도권 피부과/성형외과에서 일하는 의사만 쏟아져 나오게 만들 수 있다.

낙수효과 주장 또한 우려가 있다. 얼마나 많은 의사를 들이부어야 기피되는 소위 필수과나 지역에 의사가 배치될 것인가. 그리고 그 의사들은 과연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것인가? 의문이 든다. 장학금을 주고 지역에서 일하도록 하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지금까지 시행했지만 신청 인원이 한참 미달인 '공중보건장학제도'와 다를 바가 없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은 빈 깡통처럼 소리만 요란하다. 꼭 필요한 내용이 없으며, 오히려 의료 시장화를 내세우는 정책도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개혁 4대과제 발표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첫 번째로, 공공의료에 대한 정책이 부족하다. 윤석열 정부는 이전에 공약으로 내세웠던 울산의료원 설립을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좌초시켰다. '필수의료 강화' 정책에서도 상급 대학병원 위주의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두 번째로, 필수의료의 범위 또한 굉장히 작게 잡았다. 정부가 처음에 제시한 필수의료는 중증 응급/정신/소아/감염병 뿐이었고, 이후 고난도 고위험 수술 및 분만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모든 치료 목적 의료는 필수의료이며, 건강권 보장을 위해 의료는 포괄적으로 그리고 공공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일차의료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WHO 의 "보편적 건강보장"은 일차보건의료 체계 정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일차의료 기반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언급 없이 상급 병원에 대해서만 논의하는 것은 피라미드의 기반에 대한 고민 없이 꼭대기만 이야기하는 꼴이다.

세 번째로, 건강보험의 보장성 및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정책이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보장률이 64.5%(2021년 기준)로 OECD 국가 중 건강보험 보장률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겠다는 이야기가 없고, 각종 의료수가 지원을 한다고 발표하면서 재정충원 계획이 없다. 

덧붙여 보험사 등 기업 측에 개인정보 데이터 제공을 확대하는 내용의 정책, 의료기기 개발에 국민건강보험재정을 투입하는 정책 등 건강 보장에 해로운 조항도 도사리고 있다.  

전공의 사직엔 명분도, 대안도 부족해
 
반면, 의료계의 집단사직 및 동맹휴학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누구나 파업을 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전공의들의 사직에는 명분도, 대안도 부족했다. 앞으로 사회를 위해 어떤 의료가 필요할지,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할지에 대한 논의 없이 증원 전면 백지화만 내세웠고,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또한 비웠다.

한편 사직을 하지 않는 전공의들을 병원마다 조사해 소위 '참의사' 리스트를 만들었고, 휴학에 동참하지 않는 의대생들은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겠다는 서약서를 쓰게 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체주의 아래 의사 집단에서는 점차 강경한 자들의 목소리만 들리고 있다. 의과대학 교수들은 타협안을 냈지만, 윤석열은 이를 거부했고 교수들 또한 집단 사직을 결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자들은 의사 없는 병원에 남겨진, 또는 진료받지 못하는 환자들, 남아 있는 소수의 의사들, 그리고 간호사를 비롯한 병원 내 다른 인력들이다. 지역에서 공보의를 차출해 가버렸기에 진료를 볼 수 없는 의료취약지역 주민들 또한 피해자들이다.

정부와 의사의 강대강 대치에서 필요한 대안 제시나 시민의 목소리가 더 뚜렷이 드러나야 한다. 우리에게는 지역의사제, 즉 처음부터 해당 지역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도록 계약이 된 지역 의사 정원이 필요하다. 또한 공공병원 확충과 그를 담당할 의사를 기를 공공의대가 필요하다. 지역의사제 및 공공의대는 또한 의사의 유입 구성을 다원화할 수 있다. 닫힌 의대 내 사회구조가 권위주의, 전체주의, 엘리트의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또한 진료와 검사마다 수가를 지불하는 행위별수가제를 총액계약제 등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또한 일차의료에서 주치의 제도를 도입해 꼭 필요한 환자들만 제 때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한 의료정책 개혁은 이를 선제적으로 시행할 공공의료기관이 필요하다. 여러 의료 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사흘째인 지난 2월 22일 오전 서울의 한 공공 병원에 설치된 TV에 전공의 이탈 관련 정부의 대응 방안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도 대안에 관한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전공의'라는 그룹은 인스타그램 페이지에 성명문을 통해 윤석열 정부 및 의사집단에 관한 비판, 그리고 공공의료 확충을 주장하고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 좋은공공의료만들기운동본부는 '실패한 정책 재탕인 윤석열 정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폐기하고, 공공의료 강화하라!'라는 성명서를 내고 유사한 내용의 의료정책 요구안을 냈다. 지난 16일에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민주노총/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들이 함께 '의·정 대립 속 사라진 공공의료 찾기 시민행진'을 통해 의료 공공성 강화를 외쳤다.

앞으로 2000명 증원에 대한 찬반을 넘어 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아프고, 의료를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의료는 정치적 또는 이익의 수단이 아닌 우리의 권리이자 복지이다. 정부와 의사의 대치 그 사이에 더 나은 의료, 공공의료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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