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5

사직 전공의입니다,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주장] 주 80~100시간 근무... '왜곡' 의료시스템 그대로인데, 의사 늘린다고 바뀔까

24.03.24 19:00최종 업데이트 24.03.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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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한 사직 전공의가 의대증원과 전공의 집단 사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사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남거나, 떠나거나'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하는 의대생들의 유효 휴학이 늘어나는 가운데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이 임박한 15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 의료관계자들이 사용할 가운이 깨끗이 세탁돼 있는 한편(위)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휴학한 의대생들이 남긴 가운이 수북이 쌓여 있다(아래). ⓒ 연합뉴스


저는 사직 전공의입니다. 병원을 떠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전공의들을 둘러싼 환경 중 바뀐 건 '의대 정원'뿐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지난 20일, 의대정원 2000명을 각 의과대학에 배분하며 확대를 못 박았습니다. 병원을 지키던 교수, 전문의들의 사직행렬 동참은 자명할 듯합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대화에 나섰던 이들에게 오히려 재를 뿌리는 윤석열 정부 모습에 아연실색 하게 됩니다. 

윤 대통령은 담화문을 발표하고, 관련 이슈에 직접 반응만 할뿐 정작 의료시스템 개선의 핵심 문제에는 접근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전공의들이 수련 받고 있는 환경이 추후 2000명의 예비의사들이 수련 받아야 할 곳인데도 정부는 오로지 의사증원의 낙수효과만을 강조합니다.

대통령은 2000명의 의대생들이 전공의로 진입 하였을 때의 수련환경은 '나중에' 생각할 모양인 것 같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전공의들의 수련환경이 '나중에' 생각해도 될 정도인지 노동자이자 피 교육자적 관점에서 짚어보려 합니다. 

착취적인 전공의 수련환경

전공의 수련환경은 정말 착취적입니다. 노동자로서 감당해야 할 근무시간은 주 80~100시간 내외이며 하루 하고도 12시간 정도(36시간) 쭉 근무하기에, 직장이 아닌 일상으로 복귀했을 땐 거의 잠만 잡니다. 병원에서 추가로 마련하는 예비인력은 없다보니, 아플 때 병가를 내지 못하고, 휴가는 정해진 기간에만 갈 수 있으며, 심할 경우 같은 연차의 남은 전공의들이 모든 일을 떠안아야 합니다.

부당한 근로환경에 대한 병원의 감시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일반적인 고용상황의 경우 노동자가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넣으면 근로감독관이 수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시 감시기구는 존재하지 않기에 전공의협의회 또는 지역의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스스로 전공의 수련을 포기하거나, 홀로 싸워야 합니다. 급여 문제도 있습니다. 2022 대한전공의협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략 한달 평균 397만원 상당의 급여를 받습니다. 연차가 올라가도 급여가 상승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럼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미국에선 전공의 법상 연속근무가 하루정도만 가능하며, 50%의 전공의들은 주 60시간정도 근무를 합니다. 평균 연 6만7400달러(월 750만원 상당, medscape's 2023 resident salary and debt report)를 급여로 지급 받으며, 연차별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놀라운 점은 거의 100%의 전공의들이 미국 의료보험, 미국 제대군인부, 연방정부나 병원내 기금 등을 통하여 지원금을 받는 겁니다. 심지어 의료취약지에서 최소 2년간 근무할 경우 국가보건의료지원단(NHSC)에서 장학금도 지원하며, 학자금 대출이 있을 경우 근무를 지속하면 전체를 상환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엔 전공의 지원률이 저조한 과에 월별로 지급하는 수련보조수당 이외에 전공의를 위한 다양한 지원제도가 없습니다. 

업무량 증가로 교육시간조차 사치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과대학에서 의대증원과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논의하는 긴급 포럼이 열린 가운데 한 의대 교수가 학생회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전공의가 되는 순간 자신이 관리해야할 환자들과 응급실에서 보아야할 환자들이 생깁니다. 저도, 계획대로 됐다면 올해 그랬겠지요. 의사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 개입하며 자연스레 책임감을 갖게 되며 다른 의료진들과 소통, 다양한 학술적 경험이 가미되어야만 자신의 전문적 지식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대학병원 내 전공의수련 과정엔 공식적 교육시간은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환자가 많아 업무량이 증가하면 교육시간조차 사치입니다. 보통 수련제도는 병원별로 전문과의 의국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데, 대부분 도제식으로 이뤄집니다. 그래서인지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에 다양한 업무내림이 용인되는 모습을 많이 목격하였습니다.

교수 및 전문의들의 구두 처방과 담당 병동환자 기록, 담당 수술환자 기록, 외래기록을 시작으로 의국 내 주요 구성원인 교수들의 연구논문작성에 동원되기도 하며, 심한 경우 대학원생들과 마찬가지로 자질구레한 서류정리, 심부름 등의 잡일까지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2022 전공의 실태조사'에서도 확인됩니다. '교육 참여시 일이 바빠 학습에 참여할 시간이 부족했다'(4.07점)는 응답이 가장 높았습니다. 

그나마 시간이 있다고 해도, 책임 지도 전문의들은 외래와 수술 환자관리 등에 치여 만나기 힘듭니다. 그래서 대다수 바로 윗 선배 전공의가 아래 후배 전공의를 구두로 교육할 때가 많고 개인이 자율로 공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레지던트 수련에는 특정시기별로, 연차별로 취득해야할 의학적 술기와 지식들이 있습니다. 자꾸 미국과 비교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미국 ACGME(Accrediation Council for Postgraduate Medical Education, ACGME)에서는 수련의들의 공통역량 교육을 함과 동시에 전문과 전공의교육에 대해 병원 내에서 자율적으로 평가하도록 합니다. 이후 중앙 평가기관에서 개별적인 피드백을 통해 수련교육의 퀄리티를 보장하려고 합니다. 이렇듯 지속적인 인증 평가 제도를 통해 꼼꼼하게 전공의 교육을 챙기고 있습니다.

주먹구구식 수련이 계속되는 이유

몇 년 전만 해도 '의과대학 졸업 이후 수련을 받긴 해야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 그 지원양상이 확연하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제 주변에도 레지던트 수련과정 중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과로 분류되는 과목을 지원하기 보다는, 인기과 지원을 재수하거나 수련을 포기하고 일반의로서 취업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신규전문의 수(2023년 기준 2807명(정원 3156명))를 통해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사회 변화와 달리 전공의 수련환경의 변화가 매우 더디다 보니 희생과 직업윤리추구가 당연시 되던 과거 시대정신보다는 개인의 입장에서 위험회피와 최대이익 추구를 위한 선택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됩니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의 수련이 특별하게 변화하지 않고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서는 전공의들의 수련환경에 대한 안건들이 논의됩니다. 하지만 고용주에 해당하는 수련병원장 및 대학교수 10인이고, 전공의는 단 2명으로, 당사자성이 현격히 떨어집니다. 게다가 정부는 있는 논의기구마저 소홀하게 대해왔습니다. 매달 1회씩 진행되어왔던 전공의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2023년부터 연 4회로 축소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논의기구의 당사자성 회복과 정상화부터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후, 전공의들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수련시간을 정상화 하여야 합니다. 법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 병원에 대한 관리감독 및 감찰을 강화하고 전공의들에게 무분별하게 전가되는 업무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비효율적인 수련방식을 개선하고 교육시간의 확보와 개인별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왜곡된 의료시스템... 과연 달라지는 게 있을까
 

정부가 서울대 의대 교수회의 집단사직 결정에 우려를 표명하며 교수들의 진료유지 명령 검토 뜻을 밝힌 12일 서울 시내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의료 취약지 내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의사는 의과대학을 막 졸업하여 군 대체복무중인 젊은 공중보건의사들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36개월이라는 긴 복무기간에 대한 거부감으로 신규공보의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추세입니다(2017년 814명에서 2023년도 405명).

젊은 의사들은 공공의료체계, 지방의료체계를 이 공중보건의사제도로 처음 접하게 되는데요. 정부와 지자체는 이 제도로 젊은 의사들을 지역에 유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지방의료는 허약 해 질대로 허약해졌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지금이라도 미국 보건자원서비스 행정국(HRSA)의 의료취약지 지원제도(Rural Residency Planning and Development)를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원래 기존의 공중보건의사들에게 지급하던 예산과 비용을(기본급 및 진료장려금 등) 모아 재원을 마련하고, 의료 취약지 의료기관을 단기간 수련 가능한 기관으로 개선하고, 전공의들이 해당 의료기관 근무 시 수련기간을 인정해주고,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면 소멸하는 지방의료에 대한 최소한의 장치로 작동하지 않을까요.

여기저기서 의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나, 디테일이 없는 것은 왜일까요? 민간의료가 지배적인 미국에서조차 이러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의사들에 대한 공공적 지원과 의료 취약지 인프라 개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장 개선해야 하는 시스템과 인프라를 제쳐두고 '의사개혁'만 내세우며 의사 개인의 희생과 직업윤리만 요구하는데, 이상합니다. 

5%가 채 안 되어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공공의료 인프라, 소멸하는 지방의료기관 대비 증가하는 수도권 대학병원 병상들, 과도한 전공의 의존, 의료 취약지에 유일한 의사인 공중보건의사들을 수도권 민간병원에 파견 보내는 정부의 모습에서 어떠한 것을 읽을 수 있을까요?

의사 인력이 보건의료 증진을 위한 재투자 대상이 아니라 이윤창출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단 것을 사직하고 나서야 크게 체감한 우리들이, 수많은 경증환자와 건강검진센터를 통해 많게는 연 1조 원의 천문학적 외래이익을 창출했던 상급 종합병원이 존재하는 왜곡된 의료시스템에 복귀한들 달라지는 것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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